장지훈 가젯서울 미디어 대표 한국외국어대, 전 한화 갤러리아 상품총괄본부 기획팀
장지훈
가젯서울 미디어 대표 한국외국어대, 전 한화 갤러리아 상품총괄본부 기획팀

메타버스(Metaverse)라는 신조어가 어느샌가 많은 사람의 입에서 회자되고 있다. 그 정의를 설명하기 위한 부연이 꼬리에 꼬리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메타버스가 무엇인지 점점 더 어렵게 느껴진다. 메타버스는 초월을 뜻하는 메타(meta)와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다. 용어가 생경한 이들은 메타버스를 가상현실(VR)이란 단어로 바꿔 이해하면 쉽다. 물론 누군가는 가상현실과 메타버스는 완벽히 다른 개념이라 주장할지 모르지만, 사실 메타버스의 이야기를 하나씩 따져보면 메타버스가 이전에 없던 특별한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메타버스 이름표 단 것들을 주의해야

최근 메타버스를 설명하는 소식에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는 메타버스 대장주, 로블록스를 통해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로블록스는 월 1억6400만 명의 활성 사용자를 보유한 온라인 게임이다. 기성 콘텐츠보다 훨씬 더 정교하게 현실 세계를 모사해 놓았다.

특히 로블록스표 메타버스의 경제 시스템이 주목된다. 로블록스에는 로벅스라는 화폐가 있다. 이용자들은 이 로벅스를 기반으로 재화를 구매·교환하는 등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용자들은 로블록스 안에서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배포하면서도 로벅스를 획득할 수 있는데,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획득한 로벅스를 달러로 교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로블록스 내에서 DevEx(Developer Exchange)라 일컬어지는 교환 시스템을 통해 로블록스상의 10만로벅스를 현실 세계 화폐 350달러로 교환받을 수 있다.

하지만 엄밀히 이야기하면 이 같은 로블록스의 경제 시스템을 비롯해 메타버스의 차별성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하는 대부분의 기능은 메타버스란 단어가 등장하기 전부터 이미 구현되어 왔다.

1998년에 출시된 엔씨소프트의 온라인게임 리니지가 대표적이다. 무려 20여 년 전에 출시된 리니지에도 아데나라는 화폐가 있고, 성, 영지 같은 토지 소유 개념도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리니지에는 영토를 소유한 사용자들이 세금을 걷기도 한다. 행정 시스템과 경주장 같은 사행 시설에 대한 모사도 있다.

게임상 화폐를 현실 세계 화폐로 바꿀 수 있다는 점과 게임 안에서 또 다른 세계를 끝없이 창출할 수 있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인기 게임들의 아이템·화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하경제를 통해 현실 세계 화폐로 거래됐으며, 몇 년 전부터는 아이템 마니아같이 안전하게 거래를 주선하는 제도권 플랫폼도 등장했다. 사용자 스스로 새로운 메타버스를 만들어내는 기능 역시, 거의 모든 게임에 있는 맵 에디터나 커스터마이징 기능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카운터스트라이크라는 역사적인 게임을 탄생시킨 하프라이프의 유저제작콘텐츠(MOD) 기능이 대표적인 예다.

이처럼 메타버스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학창 시절 한두 번쯤 하던 게임은 물론이고 싸이월드 속의 마이룸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수많은 소셜미디어(SNS)도 모두 작은 메타버스다.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발전하며, 그것을 구현하는 방법, 그렇게 구현된 세계의 정교함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문제는 많은 이가 메타버스를 이전과 다른 새로운 개념으로 이해하고, 시장에는 벌써 맹목적인 기대감이 팽배해 있다는 점이다.

로블록스의 성공을 이야기하며 깊은 고민 없이 메타버스 때문이라 미리 결론을 내고, 거꾸로 이유를 하나씩 만들어나가는 접근은 로블록스는 물론이고 메타버스에 대한 관점까지 왜곡하고 있다.

지금 등장한 이들은 주인공이 될 수 없다


페이스북의 자회사 오큘러스에서 출시한 오큘러스 퀘스트2. 4K 기기임에도 299달러에 불과하다. 사진 오큘러스
페이스북의 자회사 오큘러스에서 출시한 오큘러스 퀘스트2. 4K 기기임에도 299달러에 불과하다. 사진 오큘러스

그렇다면 로블록스의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우선 메타버스보다 더 근원적인 요인 중 하나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다. 코로나19로 오프라인 수업이 온라인으로 대체되면서 청소년층에 추가적인 기기 보급이 이뤄졌다.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생활양식이 보편화되며 이들은 온종일 휴대전화와 PC를 앞에 두고 온라인상에 상주하게 됐다. 그렇게 로블록스가 있는 청소년 콘텐츠 시장으로 유저가 유입됐던 것이다.

하지만 로블록스의 성장을 메타버스라는 단어로 설명하려는 순간, 다른 콘텐츠와 로블록스를 억지로 구분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그 작은 차이로 로블록스의 성공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메타버스라는 단어에 대한 부풀려진 환상이 생기고 있다.

로블록스처럼 콘텐츠 기업들이 메타버스의 상승 모멘텀을 누리고 있다. 이들은 이전 콘텐츠와 사실 크게 다르지 않은 콘텐츠를 어떻게든 부각시켜야 하는 탓에 그들의 콘텐츠가 메타버스라는 단어를 얼마나 충실히 구현했는가를 설명한다. 이후에는 메타버스라는 단어가 그려 갈 미래 모습을 그리는 데 힘을 쏟는다

결국 이들이 그리는 메타버스 시대가 도래했을 때 이들의 콘텐츠는 더 정교하게 메타버스를 구현하는 다른 콘텐츠로 대체될 운명에 놓여 있다. 스마트폰 시대가 스마트폰이라는 기기가 보급된 후 열렸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콘텐츠 시장에도 VR·증강현실(AR) 디바이스 도입 이후 다시 새로운 주인공이 등장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디바이스 보급기는 언제쯤 찾아오게 될까?

현재 초창기 디바이스들의 치명적인 단점으로 지적된 낮은 주사율(화면 재생률)과 PPI(화면의 인치당 픽셀 수) 등에 대한 기술적 토대가 완성되어 가고 있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의 VR 헤드셋 기기 오큘러스를 필두로, 충분한 성능을 갖춘 300달러 이하의 기기들이 등장하고 있다. 애플의 VR 개발 소식이 들려오는 것도 주목해 볼 만하다. 제반 조건이 충족되고, 개화의 열매가 무르익을 때쯤 제품을 선보이는 애플의 특성을 염두에 두면, 조만간 VR·AR 디바이스 보급기가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기술이 완성되고 유력 진영이 움직이는 최근 상황을 감안하면 기기들의 본격적인 보급이 이뤄지는 첫 번째 개화 시기는 늦어도 3년 내 찾아올 것으로 개인적으로 예상한다.

기기 보급 이후 콘텐츠 시장은 다시 새로운 출발점에서 경쟁을 시작한다. 현세대 메타버스류 콘텐츠는 새 시대의 콘텐츠에 자리를 내어주게 될 것이다. 벌써부터 메타버스란 이름표를 달고 등장한 것들, 그들을 설명하는 전부가 메타버스뿐인 것들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지금 메타버스류 콘텐츠가 시장의 기대를 받고 있지만, 이들은 조만간 대체될 운명에 놓여 있다. 지금은 콘텐츠보다 먼저 디바이스에 주목할 시기다.

장지훈 가젯서울 미디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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