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글로벌 자동차 생산기업 폴크스바겐이 자동차 배터리의 독자 생산을 선언했다. 유럽 내에 6개 배터리 생산 공장을 설립해 향후 배터리 자급을 실현한다는 계획이다. 자체 생산으로 가격을 낮추고 전기차 보급을 더 적극적으로 확대하려는 것이 배경으로 알려졌다. 폴크스바겐만이 아니다. 전기차의 대명사가 되다시피 한 미국의 테슬라도 폴크스바겐보다 먼저 배터리의 독자 생산 계획을 내놓았다. 심지어 국내 자동차 생산기업들도 배터리의 독자 생산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배터리 직접 생산을 추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전기차 가격의 40%가량을 차지하는 배터리 비용의 인하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게다가 전기차의 성능이 배터리에 의해서 좌우되기 때문에 완성차 업체로서는 독자적인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완성차 업체의 배터리 독립 추진에 대해 경제 안보적 측면을 그 배경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최근 들어 무역이 국제 정치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추세가 증가하고 있어서 주요 산업의 부품이나 소재를 전적으로 외국 생산자에게 의존하는 것을 피하려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중 간 무역갈등은 무역의 무기화 경향을 보이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우리나라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에 관련한 중국의 경제보복, 강제징용자 배상 판결 관련 일본의 수출 제재 등을 겪었다. 이후 여러 한국 기업이 중국과의 사업내용을 축소하거나 조정했고 일본에서 수입하던 부품과 소재의 상당 부분은 국산화하는 정책이 추진됐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무역에 제동이 걸린 것도 주요 부품 소재를 적어도 일정 수준 국내 생산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글로벌 밸류체인(GVC)을 국내 생산으로 전환해야 하는 경제 안보적 요인들이 증가하고 있다.

글로벌 밸류체인을 재구성하게 하는 정치적 요인도 강화되고 있다. 특히 미·중 간 갈등이 이러한 변화를 이끄는 배경이 되고 있다. 대표적 사례는 반(反)화웨이 움직임이다. 미국이 사이버 보안을 이유로 중국의 화웨이를 제재하고 유럽 국가들이 이에 동참하면서 서방 국가들이 반화웨이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은 주목해야 할 글로벌 밸류체인의 새로운 변화 경향이다. 무역이 정치적 동맹 중심으로 재편되는 조짐을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조 바이든 정부는 3월 발표한 잠정적 안보 전략 지침(Interim National Security Guidance)에서 중국을 경쟁국으로 특정하고 미국의 가치와 이익을 증진하는 새로운 글로벌 규범과 합의를 형성하기 위해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과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바이든 정부는 동맹국들과 대화를 강화하고 있고 반중 전선 참여를 독려하고 있어서 무역 및 경제 관계의 정치화를 더 가속할 전망이다.


한·미 경제 장관 전략대화 추진해야

한국도 이러한 국제 환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미국은 2016년 이후 중단됐던 외교 및 국방장관들 간 ‘2+2’ 한·미전략대화를 5년 만에 복원했다. 한·미동맹을 다시 강화하려는 미국의 포석이다. 또한 미국은 2019년 미국, 일본, 인도, 호주가 참여해 출범시킨 아시아·태평양 지역 각료급 비공식 안보회의체인 쿼드(The Quad)를 정상회의로 격상시켜서 3월에 개최했다.

2020년 미국 국무부의 비건 차관은 한국, 뉴질랜드, 베트남을 포함한 ‘쿼드 플러스’로 확대하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한국이 미국 중심의 동맹대열에서 더 분명한 입장을 보여야 하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다행히 아직은 미국의 동맹 강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경제 분야로까지 확대되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전략적으로 중요한 상품이나 하이테크 산업에서 글로벌 벨류체인의 동맹국 중심 재편 압력이 발생할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이 경우 정치가 경제를 압도하지 않도록 경제 관련 장관 간 전략대화를 추가하는 등 우리나라의 전략적 고민과 사전적 대비가 무엇보다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