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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원  세종대 경영경제대학장 전 대성합동지주 사장,  전 디큐브시티 대표, 전 CJ 그룹 전략총괄기획 부사장, 전 삼성경제연구소 전무,  전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
김경원 세종대 경영경제대학장 전 대성합동지주 사장, 전 디큐브시티 대표, 전 CJ 그룹 전략총괄기획 부사장, 전 삼성경제연구소 전무, 전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

1│‘전거복철 후차지계’의 교훈

“옛말에 ‘전거복철 후차지계(前車覆轍 後車之戒)’라는 말이 있습니다. 진나라가 일찍 망한 이유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진나라가 범한 과오를 피하지 않는다면 그 전철을 밟게 될 뿐입니다.” 

이는 한나라 5대 황제인 문제(文帝) 때 가의(賈誼)라는 충신이 올린 상소문 내용이다. 이에 문제는 여러 개혁을 실시하여 나라의 큰 번영을 이뤄냈다.

전거복철 후차지계는 ‘앞 수레가 엎어진 바퀴 자국’이라는 뜻으로, 자신이나 다른 이의 실패를 거울 삼아 경계하라는 말이다.


2│‘이론쟁이’의 위험성

중국 전국시대 때 일이다. 전쟁 중이던 진나라와 조나라가 장평이라는 곳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조나라의 염파(廉頗)라는 장수가 진나라의 공격을 잘 방어하고 있었는데. 이 교착상태를 못마땅하게 여긴 조나라 왕은 조괄(趙括)이라는 장수로 염파를 교체했다. 조괄은 어릴 때부터 병법에 소질을 보여 병법에 관한 한 천하에 자기를 당할 자가 없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그는 ‘이론쟁이’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실전 경험은 하나도 없이 막상 대장군이 돼 출병한 그는 ‘병법’대로 염파의 작전 계획을 모두 고치고 나섰으나, 곧바로 적의 기만전술에 말려들어 포위당했다. 식량도 없이 40여 일간 버티다가 마지막 돌격에 나섰지만, 조괄은 전사하고 그의 40만 병사는 항복했다. 진나라 군대는 후환을 두려워해 포로들을 모두 생매장해 죽였다. 

이런 이론쟁이들의 폐해는 근현대 전쟁에서도 자주 보인다. 러·일전쟁 중 러시아군의 여순 요새를 공격하던 일본군의 작전 수립은 독일 유학을 다녀와서 당시 엘리트 군인으로 대접받던 이지지(伊地知) 소장이란 자였다. 그는 판단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사령부를 전선에서 아주 먼 거리에 차렸으며 전선 방문도 아예 하지 않았다. 그는 여순 요새에 무모한 정면 돌격만을 고집해 6만여 명의 병사를 적의 포화에 희생시킨 후에야, 실무형 장군으로 교체됐다. 현재 벌어지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러시아가 예상 밖의 고전을 보이는 여러 이유 중의 하나로 군 수뇌부의 경험 부족과 무능이 거론된다. 일각에서는 1980년대 말 아프가니스탄 패전 이후 큰 전면전 경험이 없었던 상태에서 군 내부 부패와 정실인사(情實人事)로 정치적으로만 ‘영리한’ 군인들이 러시아군을 장악한 결과라고 한다. 


3│‘우보천리’와 ‘우직지계’의 자세

1970년대 수산업을 하던 필자의 당숙은 큰맘 먹고 조선소에 배를 여러 척 주문했다. 그 당시 마침 국내의 한 업체가 선박용 디젤 엔진을 국산화해서 새 배에 써 보라고 권유했다. 그 업체는 두 종류의 엔진을 제시했는데 ‘고속 엔진’과 ‘저속 엔진’이었다. 고속 엔진은 평상시에는 배의 속도가 빠른 대신 파고가 높은 바다를 헤쳐 나가는 데 불리했고 저속 엔진은 그 반대였다. 결국 당숙은 고심 끝에 일부 배는 고속 엔진을, 나머지 배들에는 저속 엔진을 달았다. 완성된 이 배들이 실제 바다에 나가 조업한 결과 저속 엔진이 훨씬 좋았다. 어선의 조업 상황은 잔잔한 바다보다 거친 바다가 더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우보천리(牛步千里)’, 즉 소의 걸음으로 천 리를 간다는 말을 연상시킨다. ‘손자병법’의 군쟁(軍爭) 편에 나오는 ‘우직지계(迂直之計)’, 즉 돌아가는 것이 가장 빨리 가는 계책’이라는 말과 서양의 “슬로 앤드 스테디(Slow and Steady), 즉 느림과 꾸준함이 경기를 이기게 한다”는 속담도 이와 일맥상통할 것이다. 


4│차기 정부를 향한 세 가지 제언

영어의 플러스와 마이너스는 각각 ‘조금 더’와 ‘조금 덜’을 뜻하는 라틴어 플루스와 미누스를 그대로 받아쓴 것이다. 이에 상응하는 ‘플러스(+)’와 ‘마이너스(-)’ 기호는 요하네스 비드만(Johannes Widmann)이라는 독일 수학자가 15세기 말쯤에 처음 사용했다. 그런데 요즘은 ‘더하기’보다 ‘빼기’가 더 중요해진 세상 같다. 여러 나라에서는 영양 과잉으로 인한 성인병이 가장 큰 사망원인으로 지목되고 있고, 강이나 바닷물의 오염도 화학물질보다 분뇨 등에 의한 ‘부영양화’가 주된 원인이라 한다. 부영양화가 심한 물에서는 물고기도 살지 못한다. 하지만 이를 제거하면 물고기 등 건강한 생태계가 바로 회복된다고 한다. 기업 경영도 마찬가지다. 1980년대 이후 많은 사업에서 ‘더하기 경영’보다 경쟁력 회복의 목적으로 슬림화, 다운사이징(downsizing) 같은 ‘빼기 경영’이 더 큰 화두가 된 듯하다. 경영 환경이 어려워질 때는 더욱 그렇다.

얼마 전 대선에서 야당 후보가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오는 5월 5년의 임기를 마감하는 현 정부는 적어도 경제에 관해서는 결코 성공한 정부가 아니라는 것에는 대부분의 이코노미스트들이 동의할 것이다. 현 정부가 출범 시에는 민간 소비도 좋았고 세계 경제의 회복세도 뚜렷한 환경이었던 것을 고려한다면 더욱 그렇다. ‘소득주도성장’ ‘국민성장’ ‘혁신성장’ ‘포용성장’ 등의 구호는 역대 정부 중 아마 가장 화려하고 많았지 싶다. 그러나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상황을 감안해도 구호의 요란함에 비해 결과는 참 초라해 보인다. 지난 기고에서 필자는 여야 중 누가 이기더라도 따라야 할 몇 가지를 제언했다. 이제 향후 5년간 누가 이 나라 경제를 이끌지가 확실해진 지금 ‘사족(蛇足)’ 같은 제언을 덧붙이고자 한다. 새 정부는 ‘전거복철’의 고사대로 현 정부나 그전 정부의 사례를 타산지석 삼아 달라는 것이다. 

첫째, 경제 분야의 수장들은 교수 등 학자들보다는 ‘정치색이 옅은 정통’ 관료나 기업인 출신을 쓰라고 권하고 싶다. 청와대 등 현 정부의 경제 관련 부서의 수장들은 대부분 현장과 실무경험이 전무하거나 빈약한 ‘엘리트’ ‘이론쟁이’들이었다. 이들이 책상에서 현장을 모르고 ‘그려낸 작전계획’의 결과는 집값 폭등, 고용참사, 세금폭탄이었다. 더구나 이들은 “이념이 시장을 이길 수 있다”는 신념으로 가득 찬 인사들이어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면이 크다. 이와 반대로 “이념은 시장을 이길 수 없다”라는 사고를 할 수 있는 실무형 인물들을 기용하면 현 정부의 ‘과오’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주택 관련 세금 동결 등 ‘누가 보아도’ 시급한 일부 정책 이외의 어떤 정책 추진도 서두르지 말기를 바란다. 현 정부에서 경제정책 대부분의 추진은 ‘졸속’이란 말이 연상된다. 이명박 정부도 초기에 충분한 검토 없이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덜컥 허용했다가 소위 ‘진보’ 진영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이후 국정 주도권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고 경제뿐만 아니라 모든 정책이 ‘좌측’으로 흐르고 ‘포퓰리즘’의 성향을 가지게 된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이번 선거에서 여야의 표 차이가 근소했음도 유념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특히 경제 관련 정책은 거친 바다를 만난 것처럼 우보천리, 우직지계의 자세로 서두르지 않되 임기 말까지 꾸준하고 끈기 있게 조용히 밀어붙인다면 큰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더하기’형 정책보다 ‘빼기’형 정책 실행을 권한다. 현 정부는 ‘정부만능론’을 너무 믿어서인지 필자의 기억으로는 역대 정권 중 경제에 가장 많은 ‘손질’을 했다. 서른 번 가까운 집값 안정책을 내놓았던 것은 한 예에 불과하다. 새 정부는 이런 정책의 ‘부영양화’를 빼기만 해도 큰 효과를 볼 것이다. 기업, 자영업 등 경제생태계가 바로 회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뭘 더하려고 욕심부리기보다는 현 정부의 ‘손질’이 가해진 곳에서 ‘빼기’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나으리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차기 정부는 현 정부와 달리 매우 안 좋은 경제환경하에 출범하고 있다. 세계적인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의 귀환, 이에 따른 각국 금융당국의 가파른 금리인상과 금융시장 혼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인 주요 원자잿값 폭등, 언제 터질지도 모르는 집값 버블과 가계부채 문제 등을 안고 출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경영과 마찬가지로 ‘빼기’형 국가 경제 경영이 더 필요할 것이다. 새 정부는 ‘전거복철 후차지계’의 고사대로 선행 정부들, 특히 현 정부의 사례를 타산지석 삼아 달라는 것이다. 모쪼록 새 정부의 성공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