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개발도상국은 경제 회복에서 매번 취약함을 보였다. 아직 코로나19로 인한 여파가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글로벌 경제를 거의 산산조각내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의 즉각적인 결과는 이제부터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다. 강대국의 분쟁으로 재정의되는 세계에서 각국은 (경제) 개발에 대한 접근법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개발경제학자들이 오롯이 경제 성장에만 집중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들은 급속한 경제 팽창이 번영으로 향하는 핵심이라 믿었다. 하지만 1980년대 접어들어 사회 포용정책과 환경이 정책 의제에 포함되기 시작했고, 이러한 정책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중요해지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 심지어는 팬데믹이 발생하기도 훨씬 이전부터 신흥시장과 개발도상국은 이미 모든 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2020년 3월 세계은행은 신흥시장 내 불평등 및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사이의 불평등이 10년 전 수준으로 후퇴했다고 분석했다. 극심한 빈곤과 자연재해, 사회적 갈등이 심화하는 현 상황에서 개발도상국 정책입안자들이 국제사회의 의무 사항을 준수하기 위해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다.
하지만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1월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7.5%를 찍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본격적인 양적 긴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3월 16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연준은 올해 7번의 금리 인상 계획 중 첫 번째로 0.00~0.25%였던 연방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인플레이션이 계속 현 상태로 유지된다면 0.25%포인트 이상 금리 인상이 필요할 것이라고 시사했다. 연준의 금리 인상은 유동성 감소, 달러화 강세 및 신흥시장에서의 급속한 자본 유출로 이어져 신흥시장 및 개발도상국의 정책 결정을 어렵게 할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사태를 더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올해 전 세계 GDP 성장률은 낮아도 1%포인트 하락할 것이고, 러시아 경제는 깊은 침체기에 빠질 것이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5%포인트 확대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것은 중국을 제외한 신흥시장 및 개발도상국의 올해 성장률이 3.2% 미만일 것임을 시사한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전의 연간 평균 성장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하지만 성장률 저하는 문제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① 국제연합무역개발협의회(UNCTAD)는 금융 변동성 증가와 식량·연료 및 무역 비용 상승이 자산 급매, 환율 하락, 부채 위기의 악순환을 발생시킬 것이라고 예상했다. 신흥시장 및 개발도상국은 그들이 처한 위험을 완화할 수 있는 조치가 거의 없다. 부채 수준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반면, 경제를 서포트하기 위한 재정 여력은 이미 부족하다. 준비통화를 발행할 수 있는 국가들과는 달리, 신흥시장 및 개발도상국은 ② 양적 완화가 불가능하다. 특히 유럽 같은 선진국이 안보 위험이 커지고, 국방비 지출 필요성이 증대되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난민 위기에 처해있는 상황에서 신흥시장 및 개발도상국이 채무 불이행이나 금융 및 정책 위기 등의 문제로 그들에게 도움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이로 인한 복잡한 상황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강도와 지속 시간, 서방의 경제 제재 그리고 그에 따른 공급망 장애물을 더 예측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다시 말해 (전쟁의) 리스크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세계 각국이 국가 안보를 경제 개발 어젠다보다 우선시할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각국은 국방비 증액의 부담을 받는 한편, 에너지와 식량 자원을 다양화하고, 세계 경제가 파편화되는 데 대비해야 한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자유민주적인 세계화(liberal globalization)’는 신흥시장 및 개발도상국을 글로벌 경제로 통합시켰다. 하지만 대니 로드릭 하버드 케네디스쿨 국제정치경제학 포드 재단 교수가 설명하듯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초(超)세계화를 포함한 1989년 이후의 자유민주적 국제 질서의 종말을 선언했다.
③ 은행 간 국제 결제망(SWIFT⋅스위프트) 퇴출뿐만 아니라 러시아가 직면한 서방의 경제 제재는 러시아가 다른 경제 대책을 찾도록 부추길 것이다. OECD는 이것이 금융시장 및 국가 간 결제망에서 미국 달러화의 지배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신흥시장 및 개발도상국들은 외환보유고의 통화 구성을 변화해야 할 필요가 있을 수 있다. 그들은 전문화, 규모의 경제, 정보와 노하우의 보급이 훨씬 더 어려운 세상에 적응해야 할 것이다.
신흥시장 및 개발도상국은 금융, 산업 발전, 국제무역 및 디지털 경제를 포함한 여러 분야에서 실용적이고, 포괄적이며, 응집력 있는 정책 전략을 도입하는 데 성공한 중국에서 교훈을 얻을 수도 있다. UNCTAD는 최근 보고서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다뤘다. 중국이 자신들의 실수를 통해 배우고,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한 역사는 개발도상국이 (경제) 성장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탄력성을 배우는 데 있어서도 필수적이다.
서방의 ‘현실주의자’는 중국의 거버넌스 모델이 다른 나라에서 재현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각자 새로운 문제 해결에 골몰한 서방 선진국들은 신흥시장 및 개발도상국에 경제 발전에 필요한 원조를 지원해줄 것 같지 않다. 따라서 경제 발전을 위한 새로운 접근법은 신흥시장 및 개발도상국의 손에 달려있다. 어쩌면 (경제 발전 과정에서 축적한) 중국의 경험이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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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1964년 설립된 유엔의 정부간 협의체다. 개발도상국의 경제 개발 촉진과 남북 문제의 경제 격차 시정을 위해 유엔이 마련한 회의에서 설립한 유엔 보조 기관이다. 사무국은 스위스의 제네바에 있으며 4년에 한 번 개최된다.
② 양적 완화(QE·quantitative easing)는 ‘중앙은행의 정책으로 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부양 효과가 한계에 봉착했을 때 중앙은행이 국채 매입 등을 통해 유동성을 시중에 직접 푸는 정책’을 뜻한다
③ 은행 간 국제 결제망(SWIFT·스위프트)은 전 세계 은행 간 송금 시스템으로, 1만1000개 이상의 전 세계 금융기관이 안전한 결제 및 주문을 하기 위해 이용하고 해당 전산망을 이용 중이다. 스위프트에서 퇴출당하는 국가는 외국으로부터 달러화나 유로화로 수출 대금을 받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