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은 도시 이름의 영어 철자인 ‘Copenhagen’에 포함된 ‘오픈(open)’을 활용해 도시 개방성을 나타냈다. 사진 언더컨시더레이션 홈페이지
코펜하겐은 도시 이름의 영어 철자인 ‘Copenhagen’에 포함된 ‘오픈(open)’을 활용해 도시 개방성을 나타냈다. 사진 언더컨시더레이션 홈페이지
황부영 브랜다임앤 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아시아 브랜드 프라이즈(ABP) 심사위원,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황부영 브랜다임앤 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아시아 브랜드 프라이즈(ABP) 심사위원,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디트로이트 출신의 미국 싱어송라이터 ‘식스토 로드리게스’는 1970년과 1971년 앨범 두 장을 발표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하지만 뜻밖의 국가에서 이 앨범들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미국인 여성이 로드리게스의 1집 앨범 ‘콜드 팩트(Cold Fact)’를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에 가지고 갔는데, 남아공에서 ‘대박’을 친 것이다. 당시 남아공은 아파르트헤이트(남아공의 인종차별 정책)로 인해 전 세계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던 폐쇄적인 검열 국가였다. 이런 암울한 남아공에서 로드리게스의 노래는 저항운동과 결합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그의 앨범은 불법 복사본 형식으로 남아공에서 많이 팔렸지만, 가수가 누군지는 아무도 몰랐다고 한다. 

죽었다고 여겨졌던 로드리게스의 행방을 수소문하고 그를 찾아내 아파르트헤이트가 종식된 1998년 남아공에서 공연하게 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2011년에 나온 영화 ‘슈가맨을 찾아서(Searching for Sugar Man·2011)’다. 슈가맨은 로드리게스의 앨범에 실린 노래 제목이자, 누군지 모르는 로드리게스를 부르는 남아공 국민의 애칭이기도 했다. 

도시 브랜딩에도 슈가맨 같은 사례가 있다. 많은 자료에서 성공적인 도시 브랜드 캠페인의 사례로 언급되는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이 그것이다. 홀연히 나타나 엄청난 히트곡을 내고는 이제는 사라져 소식조차 알 수 없는 슈가맨의 로드리게스처럼 코펜하겐의 도시 브랜딩도 모범사례로 자료에만 존재할 뿐 언제 사라졌고 현재는 어떠한지 쉽게 알 수가 없다. 


코펜하겐의 ‘오픈 포 유’ 캠페인

1980년대까지 코펜하겐은 몰락하던 도시였다. 도심 공동화가 계속 일어났고 1970년대에는 매년 1만2000명이 도시를 떠났다. 재정상황도 매우 허약했다. 그때 대대적인 기반시설(인프라) 보강 없이도 사람이 살 만한 공간을 만들겠다는 간절함이 낳은 아이디어가 보행자 전용 도로였다. 작은 규모로 도입했던 보행자 전용 도로를 시내 번화가인 스트뢰에(Strøget)에 확대 적용했다. 코펜하겐은 시민과 상인의 반발을 무마하며 도시를 보행자와 자전거 친화적으로 개선해 ‘부랑자나 사는 도시’라는 오명을 지워갔다. 도심 공동화로 비워진 공간은 이주노동자들이 채웠다. 뇌레브로(Nørrebro) 지역이 대표적인 곳이다. 코펜하겐은 자칫 슬럼화될 수 있는 이민자 공간도 다채로운 문화를 경험하는 곳으로 만들어 갔다. 지역에 방치된 공공부지를 공원으로 정비하고 거주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코펜하겐은 도시 자생력 확보를 위해 오랜 시간 노력을 기울였다. 마침내 1989년에 도시 이미지를 개선하는 프로젝트에 나서게 된다. 탄탄해진 실체를 바탕으로 이미지를 개선하겠다는 의도다. 이 프로젝트는 코펜하겐의 개방성을 강조해 관광과 투자 분야에서 성과를 내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편안하고 환경친화적인 코펜하겐을 관광·투자·혁신 면에서도 개방적인 도시로 인식시키겠다는 것이 도시의 지향점이었다.

코펜하겐 도시 브랜드의 에센스는 ‘개방성(openness)’이다. 20년이 지난 2009년 코펜하겐은 새로운 도시 브랜드 ‘cOPENhagen-Open for You(코펜하겐-오픈 포 유)’를 도입했다. 코펜하겐의 영어 철자인 ‘Copen-hagen’에 포함된 ‘오픈(open)’을 활용해 도시 개방성을 나타냈다. 이런 표현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코펜하겐을 강렬하게 각인시켰다. ‘들으면 알던 도시’에서 ‘머리에서 떠오르는 도시’로 인식이 바뀌어 갔다.

브랜드 에센스인 개방성은 브랜드 활용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됐다. 대담한 발상이었다. 로고 가운데 녹색 원은 주제나 행사에 따라 다양한 색상으로 바꾸었다. 포르투갈의 항구도시 포르투가 브랜드 로고를 도시 전체에 활용한 것처럼 코펜하겐도 이 브랜드 로고를 건물 벽, 자전거, 버스, 의류, 공원 잔디 등 도시 곳곳에 입혔다. 오픈 포 유라는 문구 역시 ‘오픈 포 인스피레이션(Open for Inspiration)’ ‘오픈 포 쇼핑(Open for Shopping)’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했다. 

캠페인은 효과적이었고 결과 또한 즉각적이었다. 2010년 코펜하겐은 자전거 타는 사람에게 최고의 도시이자 방문객이 안전한 도시로 인정받았다. 같은 해 미 경제 전문지 ‘포브스’에 의해 세계 최고의 비즈니스 도시로 선정됐다. 2012년 코펜하겐은 뉴욕, 프라하, 스톡홀름을 제치고 도시 브랜드 순위에서 12위를 차지했다.


1 COP15는 기존 코펜하겐 도시 브랜드와는 다른 자체 브랜딩을 하겠다고 나섰고,‘호펜하겐(HOPEnhagen)’ 캠페인을도입했다. 사진 캠페인아시아 2 ‘서칭 포 슈가맨’ 영화 포스터. 사진 판씨네마
1 COP15는 기존 코펜하겐 도시 브랜드와는 다른 자체 브랜딩을 하겠다고 나섰고,‘호펜하겐(HOPEnhagen)’ 캠페인을도입했다. 사진 캠페인아시아
2 ‘서칭 포 슈가맨’ 영화 포스터. 사진 판씨네마

코펜하겐과 ‘호펜하겐’

코펜하겐의 오픈 포 유 캠페인은 2012년에 작은 흔적을 남기고 이후 조용히 사라졌다. 불과 3년이 안 된 일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2009년 12월 코펜하겐에서 열린 COP15(코펜하겐 유엔기후변화회의)가 불행의 씨앗이었다. 덴마크에서 개최되는 세계적인 행사를 잘 알리고 싶은 의욕 때문에 코펜하겐은 무리수를 뒀다. COP15는 기존 코펜하겐 도시 브랜드와는 다른 자체 브랜딩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도입한 것이 ‘호펜하겐(HOPEnhagen)’ 캠페인이었다. 탄소배출을 줄이고 온난화를 막아 인류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겠다는 기후협약 본래의 의지인 ‘희망(hope)’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었다. 예산도 많이 투입됐고 코카콜라와 지멘스 등 거대 기업이 후원사로 참여했다. 오픈 포 유 캠페인보다 훨씬 거대해 보였다. 

하지만 독립적인 브랜딩을 한다면서도 창의적이지는 않았다. 코펜하겐의 오픈 포 유 캠페인이나 COP15의 호펜하겐 캠페인의 피할 수 없는 유사점은 단어 ‘코펜하겐’을 변형한 ‘워드 플레이(wordplay)’를 활용한 캠페인이란 것이었다. 

실제로 cOPENhagen팀은 ‘cOPENhagen–Open for Hope(코펜하겐-오픈 포 호프)’로 캠페인을 통합하려 했다. cOPENhagen을 HOPEnhagen의 하위 브랜드로 사용하겠다고까지 하면서 심지어 ‘오픈 포 클라이메이트 체인지스(Open for Climate Changes)’를 슬로건으로 쓰자고 했다. 그러나 행사를 돋보이게 하려는 의욕에 사로잡혔던 COP15는 이런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

행사가 성공리에 끝났다면 상황은 달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COP15는 미국과 중국의 반대로 협약체결에 실패했다. 코펜하겐이 기후변화를 막는 희망(hope)을 주는 도시라는 의미로 ‘HOPEnhagen’을 브랜드로 도입했지만 이런 워드 플레이는 COP15가 기후에 대한 의미 있는 국제적 합의 없이 끝났을 때 말장난의 대상이 돼버렸다. 사람들은 ‘깨지다, 고장 났다(broken)’는 의미의 ‘브로켄하겐(BROKENhagen)’과 ‘없다(NO)’는 뜻의 ‘노펜하겐(NOpenhagen)’이라고 비아냥댔다. 워드 플레이가 말장난으로 전락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아무리 큰 국제행사라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일회성에 그치는 것임을 고려했다면 연속성이 중요한 도시 브랜딩과 통합해서 캠페인을 벌이는 게 옳았다. 오픈 포 유 캠페인은 호펜하겐 캠페인 때문에 신선함(워드 플레이를 통한 각인효과)을 잃었고 지속적인 캠페인 동력까지도 상실했다. 그러고는 흐지부지 사라졌다. 현재 코펜하겐은 대대적이지는 않지만 ‘코펜하겐 프라이드’를 도시 브랜딩에 활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