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설명 최근 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과 다양한 학문 간의 결합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이 움직임의 배경은 인공지능이 기술 분야에만 국한할 게 아니라 모든 학문을 연구하기 위한 일종의 언어와 도구가 되리라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광범위한 거시 경제 자료를 결합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주 단위로 예측한다. 201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사전트 교수는 이번 칼럼에서 경제학에서 AI가 활용될 수 있는 다양한 사례를 물리학과 비교를 통해 설명한다. 그는 정부 지출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세금 감축, 단기적인 금리 인상 등 정부 정책이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공로를 인정받아 크리스토퍼 심스 프린스턴대 교수와 함께 201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1970년대 이후부터 ‘합리적 기대가설’을 거시경제학의 주요 이론으로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는 2012년 서울대가 추진한 ‘노벨상 수상자급 석학 유치 사업’을 통해 파격적인 조건으로 서울대에 초빙됐으나 1년 계약 기간을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토머스 사전트(Thomas J. Sargent)뉴욕대 경제학과 교수, 후버인스티튜트 시니어 펠로, 201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
토머스 사전트(Thomas J. Sargent)
뉴욕대 경제학과 교수, 후버인스티튜트 시니어 펠로, 201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

경제학자들은 19세기 초부터 수학자와 통계학자들이 개발해온 방법을 활용해 세상을 연구하고 있다. 노이즈(noise·불필요한 데이터)가 많은 데이터에서 패턴을 인식하고 이를 해석하는 것이다. 최근까지 이 연구 방법에는 두 가지 큰 장애가 있었다. 데이터세트(데이터의 집합) 자체가 작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 컴퓨터가 느리고 비싸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기술 발달로 컴퓨터 능력치가 올라가면서 이 장애물이 자연스레 급감하고 있다. 최근 경제학자들이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에 몰려드는 이유다.

물리학에서도 데이터 요약과 패턴 인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세계적인 물리학자 ① 리처드 파인만 박사는 자연을 신이 하는 게임에 비유한 적이 있다. “당신은 경기 규칙은 모른다. 그래도 중간중간, 어쩌면 약간씩 게임이 벌어지는 판을 볼 기회가 주어진다. 이런 식의 관찰을 통해 당신은 규칙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다.”

파인만의 은유는 많은 경제학자가 하는 일과 정확히 일치한다. 경제학자는 천체물리학자처럼 우리가 이해하려 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비실험적인 데이터를 얻어 이를 분석한다. 수학자 ② 존 폰 노이만은 게임을 △게이머 목록 △각 게이머가 할 수 있는 행동 목록 △각 게이머에게 발생하는 보상이 모든 게이머의 행동에 어떻게 의존하는지에 대한 목록 △누가, 언제, 무엇을 선택하는지를 알려주는 타이밍 협약으로 이뤄진다고 정의했다. 이 우아한 정의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구조’ 혹은 ‘경제 시스템’ 개념을 포함한다. 이것은 누가, 언제,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대한 사회적 이해다.

파인만이 말한 것처럼 경제학자 앞에 놓인 과제는 관찰된 데이터를 통해 ‘게임’을 추론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게임이란 경제학의 ‘시장 구조’나 ‘시장 시스템’을 말한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물리학과 경제학의 차이가 드러난다. 경제학자들은 물리학자들이 ‘안 하는’ 것을 하려고 한다. 바로 ‘다른’ 게임이 어떻게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결국 경제학에서는 게임 규칙이나 관찰된 행동 패턴의 변화가 있을 때 다른 게이머의 행동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연구하는 실험을 한다. 그리고 이 변화는 정부 규제 기관이나 중앙은행 같은 일부 게이머가 일으킨다.

그러므로 경제학자가 ‘구조적 모델’에서 하려는 것은 역사적 행동 패턴에서 정부나 규제 기관이 새로운 규칙을 따르는 가정적(역사적으로 전례가 없는) 상황에서 변하지 않는 매개 변수를 추론하는 것이다. 중국 속담에 ‘정부가 정책이 있으면 국민은 대책이 있다’는 말이 있다. ‘구조적 모델’을 통해 추론한 불변의 매개 변수는 정부나 규제 당국이 역사적으로 일어난 적 없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시장을 이해하고 해야 할 일을 유추할 수 있게 돕는다.

이 ‘구조적 모델’을 만드는 것은 힘든 도전 과제이지만, 동시에 인공지능의 급격한 발전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훌륭한 사례가 알파고다. ‘바둑’을 하기 위해 알고리즘을 만든 컴퓨터 과학자 팀은 통계, 시뮬레이션, 의사 결정 이론, 게임 이론 커뮤니티 전문가들이 개발한 도구를 영리하게 결합했다. 뛰어난 인공지능 바둑 선수를 만들기 위해 적절한 비율로 조합한 이 도구는 경제학자들이 구조적 모델을 구축할 수 있는 기본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


바둑을 하기 위해 알고리즘을 만든 컴퓨터 과학자 팀은 통계, 시뮬레이션, 의사 결정 이론, 게임 이론 커뮤니티 전문가들이 개발한 도구를 영리하게 결합했다. 2016년 이세돌 9단과 구글 인공지능 알파고의 첫 번째 대국 모습. 사진 조선일보 DB
바둑을 하기 위해 알고리즘을 만든 컴퓨터 과학자 팀은 통계, 시뮬레이션, 의사 결정 이론, 게임 이론 커뮤니티 전문가들이 개발한 도구를 영리하게 결합했다. 2016년 이세돌 9단과 구글 인공지능 알파고의 첫 번째 대국 모습. 사진 조선일보 DB

미래가 현재에 영향을 미친다

물론 경제학은 결정적인 측면에서 물리학과 다르다. 천문학자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는 “우주의 현재는 과거의 결과이자 미래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는데, 경제학에서는 그 반대의 일도 사실로 간주된다. 경제학에서는 다른 사람이 했으면 하는 일이 지금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때로 ‘합리적 기대’라고도 불리는 이 추론은 경제 시스템에서 ‘미래는 현재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과도 연결된다. 그리고 이것은 구조적 모델의 핵심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보자. 만약 다른 사람이 은행으로 달려가 예금을 인출할 것으로 예상한다면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할 것이다. 예금 보험은 은행 고객이 예금 인출에 취약한 은행을 피할 수 있도록 하는 주요 기준이 된다. 만약 예금 보험이 있다면 은행 고객들은 금융이나 경제, 은행 상황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고, 예금도 인출하지 않을 것이다. 또 정부가 예금을 보장한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은행 주주들은 은행 자산이 가능한 한 크고 위험해지기를 바랄 것이고, 은행 고객들은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다. 이는 실업, 장애 보험과 유사성이 있다. 사람들이 불운에 대비해 보험에 가입하는 것은 자기 자신과 정부, 기업의 공식적인 구제 금융에 대한 동기를 약화시킬 수 있다.

더 넓게 말하면, 내 평판은 다른 사람이 내게 기대하는 것을 반영한다. 나는 그 기대를 충족시킬지, 혹은 실망시킬지, 선택에 직면해 있다. 이 선택은 다른 사람이 미래에 어떻게 행동할지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래서 각국 중앙은행은 이 부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물리학자들처럼, 우리 경제학자들은 모델과 자료를 배움에 활용하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오래된 모델이 새로운 데이터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기 전까지는 새로운 것을 배우지 않는다. 이 데이터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 우리는 과거 모델이 어떻게 실패했는지를 고려해 새로운 모델을 구축한다. 우리가 과거 경기 침체와 재정 위기로부터 무엇을 어떻게 배웠는지를 설명해준다. 이제 빅데이터, 더 빠른 컴퓨터, 더 나은 알고리즘을 사용하면, 그동안 노이즈라고 치부했던 데이터 속에서 패턴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Tip

미국의 이론물리학자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다. 미국 칼텍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그는 수업 시간에 종종 우주 진행 방식을 체스 게임에 비교하곤 했다. 규칙은 신이 정한 것이며, 인간은 이 게임을 관람하는 관객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수학자로 컴퓨터 기본 구조를 설계하고 게임이론·뇌공학에서도 업적을 남겼다. 그는 1955년 오스카 모르겐슈테른과 함께 ‘게임의 이론과 경제행동’이라는 책을 냈다. 게임 이론은 한 사람의 행위가 다른 사람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상호 의존적, 전략적 상황에서 의사 결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연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