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계획 수립에서 아날로그 시대에는 거시적 전망 수치를 중요시했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기업 현장에서 느껴지는 체감경기와 이와 결부된 산업 질서 격변의 역동성 반영이 핵심이다.
사업계획 수립에서 아날로그 시대에는 거시적 전망 수치를 중요시했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기업 현장에서 느껴지는 체감경기와 이와 결부된 산업 질서 격변의 역동성 반영이 핵심이다.

기상학자와 경제학자의 주요 업무는 예측이다. 기상학자는 날씨 변화, 경제학자는 경기변동이 대상이다. ‘두 직업은 대개 예측이 틀린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하지만 기상학자는 최소한 현재의 날씨는 정확하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경제학자는 지금의 경기가 어떤지도 정확하게 이야기 못 한다’는 촌철살인의 풍자가 있다.

이러한 차이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날씨는 인간행동과 독립적인 자연과학이지만, 경제는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사회과학의 영역이다. 일기예보는 데이터가 축적되고 분석기법이 발전하면 정확도가 높아지지만, 경기 예측은 기술발전에 따라 인간의 행동이라는 불확실성이 오히려 증폭되기 때문이다. 21세기 들어 경제학은 기존 방법론에 근거한 현상 설명력과 미래 예측력이 떨어지면서 ‘경제학 교과서를 바꾸어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나아가 경기 전망이 정치적 이해관계와 결부되면서 전문가의 객관적 시각이 관철되지 않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미래의 전망은 현재 상황의 해석과 동전의 양면이기에 이해득실에 따라 각자의 생각을 반영하려는 시도는 자연스럽다. 10여 년 전에는 연말연시에 각종 국내외 경제연구기관의 새해 경기 전망이 언론 지면을 장식했지만, 최근에는 그다지 시선을 끌지 못한다. 디지털 기술 확산에 따라 경제산업 변화가 가속화하면서 거시적 경기 전망의 정확성과 중요도가 퇴색한 데다, 공공기관 등의 경기 전망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11월 말이면 기업의 기획 담당 부서는 새해 사업계획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다. 사업계획 수립은 거시경제적 변수와 산업적 전망을 토대로 경영진이 구상하는 방향성과 주요한 과제, 매출과 이익 등 구체적 목표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사업계획 수립에서 아날로그 시대에는 거시적 전망 수치를 중요시했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기업이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경기와 이와 결부된 산업 질서 격변의 역동성 반영이 핵심이다. 최근 미디어, 도소매, 음식·숙박업 등 전통적 업종의 질서 변화에서 확인하듯이 디지털 기술 확산이라는 변수는 막연한 거시경제 변수보다 훨씬 강력하고 직접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의 근본적인 이유는 디지털 기술을 매개체로 기업환경이 액체적 연속성에서 기체적 변동성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산업 시대 기업환경도 끊임없이 변화했지만, 근본적으로 양적 확대과정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기업환경은 디지털 혁명에 기인한 질적 변환이 진행되고 있다. 마치 물의 온도가 올라가도 100℃까지는 액체의 성질이 변하지 않지만, 끓기 시작하면 기체로 질적 변화를 이루는 것과 유사하다.

신년 사업계획 수립은 군대의 작전계획 수립에 비유할 수 있다. 군대라면 누구나 작전계획을 수립하고 전투에 나서지만, 사전에 수립된 작전계획대로 진행되는 전투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수하고 치밀한 작전계획이 있다고 승리를 보장하지는 않지만, 엉성하고 부실한 작전계획으로는 패배할 확률이 커짐은 분명하다. 그리고 우수한 작전계획은 예기치 않은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능력도 높인다. 작전계획 수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전장 상황 판단이고 이는 승패에 영향을 주는 핵심요소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기업의 2020년 사업계획에서 거시경제적 변수는 디지털 시대에 예측의 신뢰도도 떨어지지만, 그 자체로서도 부차적이기에 전반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참고 수치 정도로 충분하다. 중심에 둬야 할 변수는 디지털 격변에 따른 시장구조 변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