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설명 1월 15일 미국과 중국이 1단계 무역 합의안에 서명했다. 약 2년간 끌어오던 양측의 무역 분쟁이 해결의 물꼬를 텄다.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 워싱턴DC에서 류허 중국 부총리와 무역 합의안에 서명한 후 “2단계 협상을 곧 시작하겠다”면서 “2단계 타결 시 관세를 제거하겠다”고 했다. 공개된 1단계 합의문에는 중국이 2021년까지 미국의 제조, 에너지, 농업 분야 상품과 서비스를 2000억달러 이상 더 구매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중국이 지식재산권(IP) 보호를 강화하고 자율적인 기술 이전을 약속하는 내용도 담겼다. 다만 화웨이 제재, 사이버 보안 등 민감한 사안은 2단계 협상 테이블로 넘어갔다. 전문가들은 갈등의 불씨가 여전하다고 지적한다. 재닛 옐린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한 포럼에서 국영 기업 보조금 문제와 최신 기술을 둘러싼 갈등이 관세 문제보다 타협점을 찾기 힘들다고 하기도 했다. 라구람 라잔 교수는 신흥국과 선진국의 간극이 좁혀지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라구람 라잔(Raghuram G. Rajan)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 인도중앙은행 총재,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
라구람 라잔(Raghuram G. Rajan)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 인도중앙은행 총재,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

지난 10년, 특히 최근 들어 세계화가 심각한 압박을 받고 있다. 여기에서 ‘세계화(globalization)’란 국경을 넘어 거래되는 상품과 서비스, 투자, 정보의 장벽을 낮추려는 움직임이다.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은 다양한 경제적 실책을 들어 무역협정을 재조정하도록 밀어붙였다. 사실 개발도상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국제 무역을 지배하는 규칙이 불공평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지금 불만이 나오는 곳은 대부분 그 규칙을 제정했던 선진국 측이다. 왜일까.

불충분하지만 간단한 설명은 ‘경쟁력’이다. 1960~70년대에는 산업화한 국가 대부분이 자국 상품을 해외 시장에 개방하는 데 초점을 맞춰 규칙을 정했다. 그러나 이후 형세가 역전됐다. 신흥 경제국, 특히 중국이 이전의 산업화한 국가보다 훨씬 더 물건을 잘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오래된 규칙에 따르면 선진국이 ‘지금 더 생산적인’ 다른 나라에 시장을 개방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냉소적인 관찰자의 시각에서 보면 선진국의 이런 움직임은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경쟁을 방해하려는 시도다. 신흥국 생산자는 낮은 임금 덕분에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그리고 보통 이들은 생산성이 낮다). 따라서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USMCA·NAFTA 개정 협정안)대로라면 멕시코의 경쟁 우위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① 개정된 무역협정안에 따르면 제조업체의 경우 시간당 최저임금이 최소 16달러인 근로자가 생산한 비중이 40~45% 수준이어야 한다(2023년 기준). 또 노동법 적용 범위도 까다로워졌다. 노동조합 대표성도 강화해야 하는데, 이는 미국의 감독을 받아야 한다. 마치 동정심 많은 미국 협상가가 멕시코 노동자를 위해 만든 법 같다. 그러나 이는 미국이 멕시코의 제조업 일자리를 제한하려는 움직임이기도 하다.

제조업 일자리가 수십 년째 신흥국으로 옮겨가고 있는데, 왜 지금에서야 이런 우려가 고조되고 있는 것일까. 선진국은 잃어버린 제조업 일자리를 대체하기 위해 서비스 분야에서 다양한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기술 수준이 높지 않은 배송 분야에서부터 첨단 기술을 필요로 하는 연구·개발(R&D) 분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동안 세계 무역 시장을 지배해온 암묵적인 법칙은 제조업이 발달한 개도국에 선진 시장을 개방하고, 개도국은 선진국의 서비스 수출을 받아들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모든 선진국 국민이 좋은 서비스업 직장에 일자리를 가질 수 없다. 최고의 직장은 대부분 대도시에 있는데, 이 도시에 사는 고학력 전문직만 이 기업에서 일할 수 있다. 반면 작은 도시, 예컨대 미국 중부와 영국 북부 지방은 대형 제조 기지가 이주한 이후 경제적으로 회복하지 못했다. 이 지역의 황폐화 그리고 거주민의 좌절은 결국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고,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하는 정치 운동에 기름을 부었다. 좌파에 가까운 과거 제조업 커뮤니티는 지금 도심 지역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제조업의 재도약을 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설명 역시 불완전하다. 예컨대 미국이 중국과 벌이고 있는 수많은 분쟁 대부분은 제조업이 원인이 아니라 서비스업 때문이다(실제로 중국은 제조업 일자리를 베트남에 빼앗기고 있다). 서비스 수출 상위 10개국 중 8개국은 선진국이지만, 신흥국 간 경쟁이 격화하고 있다. 또 이런 경쟁은 선진 기업의 서비스 관련 무역법 제정을 촉진하고 있다. 외관상 이 움직임은 서비스 국경의 개방을 보장한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지배력 있는 선진국 생산자의 이익을 보호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예를 들어 USMCA는 음악이나 전자책같이 전자적으로 구매한 제품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지 않도록 보장하고, 인터넷 기업도 사용자들이 생산하는 콘텐츠에 대해 어떤 책임도 지지 않도록 보장한다. 또 일부 약물의 특허 보호 기간 연장을 시도하기도 했다(다만 이는 이후 민주당의 반대로 삭제됐다).

최근 신흥국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인도 정부는 최근 자국 재벌 기업인 릴라이언스가 새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내놓기 직전, 아마존이나 월마트 같은 외국 플랫폼을 제한하는 ② 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1월 15일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류허 중국 부총리가 미국 워싱턴DC에서 만나 1단계 무역 합의안에 서명했다. 사진 블룸버그
1월 15일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류허 중국 부총리가 미국 워싱턴DC에서 만나 1단계 무역 합의안에 서명했다. 사진 블룸버그

선진 제조 커뮤니티와 신흥 엘리트 충돌

정리하자면 국제 무역과 투자 협정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된 데는 두 가지 요소가 영향을 미쳤다. 선진국의 경우 좌파 커뮤니티에 속한 일반인은 더는 기존 협정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듣고 싶어 하고, 그들의 이익이 보호되길 원한다.

과거 선진국 엘리트는 서비스 시장이 확대되는 한 제조업의 해외 이전을 외면했다. 그러나 이런 구시대적인 현상은 이제 더는 지지받을 수 없게 됐다. 동시에 신흥국 엘리트는 세계 서비스 시장에서의 점유율 확대를 원한다. 그리고 이들은 양보하려 하지 않는다. 그 결과, 이제 쉬운 무역 거래는 존재하지 않게 됐다. 무역 협상은 설득이 아니라 정치권의 파워 게임이 됐다. 하늘 높이 관세를 쌓아 올리고, 약자에게 ‘더 공평한’ 규칙을 강요하기 위한 타격전이 벌어진다. 무역 협상의 베테랑들은 이런 방식이 당연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근의 방법이 과거와 다른 부분은 신흥국 대중이 과거보다 더 민주화됐다는 점이다. 멕시코 상공회의소 회장이 USMCA의 노동·감시 규정을 1848년 멕시코·미국 전쟁과 비교할 때 멕시코 유권자들이 귀를 기울인다.

선진국이 신흥국에 부담스러운 규칙으로 성공을 얻었다면, 이는 곧 ③ ‘피로스의 승리’인 것이 드러날 것이다. 우선 선진국 간에 이 규칙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지조차 불분명한 것이 사실이다. 예컨대 미국에서는 플랫폼 기업이 콘텐츠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압력이 있다. 그러나 무역협정에 이 규칙을 도입하는 것은 협정을 더 취약하게 만들 뿐이다. 게다가 이런 합의는 나쁜 선례를 남긴다. 미래에 세계 소비 시장을 주도하는 사람은 더 부유하고, 더 젊고, 인구가 더 많은 신흥국 국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불리한 조항에 가로막히고 약소국 처지에 놓인 사람은 언젠가 전세가 역전될 때 놀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선진국은 무역 조항을 공평하게 바꿔야 한다는 자국 내 압력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우선 국제적으로 용인되는 수준까지 관세를 꾸준히 낮추도록 요구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리고 생산자에게 지나치게 유리한 차별적인 비관세 장벽이나 보조금은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해 막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조치를 뛰어넘는 수준의 조항들, 즉 조합이나 온라인 플랫폼 규제, 특허 기간을 자신의 선호도에 따라 강요하려는 시도 등은 무역에 대한 합의를 저해할 것이다. 오늘날 침해가 덜한 무역협정은 미래 무역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


Tip

2018년 11월 30일 미국과 캐나다·멕시코 정상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을 대체할 새 무역협정,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에 서명했다. 새 협의안에서 미국과 멕시코는 자동차 부품의 역내 생산 비율을 기존 62.5%에서 75%로 상향하기로 했다. 또 시간당 최저임금이 최소 16달러인 근로자 생산 비중이 40~45%에 이르도록 했다.

1월 14일 인도 정부는 아마존과 플립카트(월마트가 모회사)에 대한 반(反)독점 조사에 착수했다. 인도에서는 외국 대형 유통 기업에 대한 반감이 심하다. 독점 판매, 할인 정책으로 소상공인이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아시아 최고 갑부인 무케시 암바니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 회장이 이에 대항하기 위해 ‘지오마트’를 설립했다.

피로스(Pyrrhus)는 기원전 3세기 북부 그리스 지방에 있던 에페이로스의 왕이다. 병법(兵法)의 대가였던 그는 신생 강국 로마와 싸워 두 번 이겼다. 그러나 두 번째 전투에서는 아군의 피해가 너무 컸다. 피로스는 “이런 승리를 다시 거두었다가는 우리도 망한다”고 말했다. 이후 ‘실속 없는 승리’ 또는 ‘엄청난 비용을 치르고 간신히 얻은 승리’를 ‘피로스의 승리’라고 부른다. 실제로 로마와의 세 번째 전투에서 대패(大敗)한 피로스는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