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적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은 잠재적 피해가 예상되는데 확정적인 과학적 증거가 없으면 그 피해를 예방하는 쪽으로 조치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주로 환경과학과 관련해 사용돼 왔고 농업이나 보건·의학 등에서 특정 조치를 하거나 법적 논쟁이 있을 때 적용되고 있다. 이 원칙은 피해가 없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충분히 입증되기 전까지 적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무역과 관련해서 시장 보호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시도 때문에 세계무역기구(WTO)는 잘 수용하지 않는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대유행 사태로 거의 모든 나라가 국제 간 이동을 중단하고 자국 내에서도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시행하고 있다. 질병의 대유행 현상이 발생할 경우 누가 감염됐는지 아닌지 알 수도 없고 자신도 스스로의 상태를 알 수 없으니 이러한 예방적 조치를 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러한 조치를 도입하고 성실하게 따르는 것이 자신을 보호하고 타인을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역사상 피해가 가장 컸던 질병의 대유행은 14세기 유럽에서 창궐했던 페스트(흑사병)다. 페스트는 중앙아시아에서 발생했고 주로 쥐벼룩에 의해 옮겨지는 질병인데 몽골군의 유럽 침공 혹은 비단길을 통한 무역상들에 의해 유럽에 전파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당시만 해도 감염원을 알 수가 없어서 하루에도 수백 명씩 사망자가 발생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두려움 때문에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도시들이 고립되면서 점차 질병이 잦아들기는 했지만,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에 가까운 1억여 명이 사망하는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유럽인들이 세상의 종말이 온 것과 같다고 느꼈던 당시에도 비교적 큰 희생자 없이 멀쩡했던 민족이 있다. 유대인이다. 유대인을 살린 것은 그들의 정결법이었다. ‘구약성경’ 레위기를 배경으로 한 유대인의 정결법에는 음식에 관한 규정, 질병에 관한 규정, 개인의 위생에 관한 규정 등이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정결 방식의 기본은 물에 씻는 것이다.  병증이 의심되는 일부 현상에 대해서는 흐르는 물에 씻어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불에 그을리거나 태워야 하는 경우도 규정돼 있다.

외출에서 돌아오면 당연히 손과 발을 씻어야 한다. 부정한 것으로 규정된 질병에 걸린 사람은 공동체의 거주지로부터 일정 기간 격리했다. 정해진 격리 기간이 지나면 정결하게 됐는지의 여부를 공동체 대표가 확인한 후에야 돌아올 수 있었다. 이 법은 3500여 년 전으로 알려진 유대 민족의 출애굽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이집트를 탈출해 지금의 이스라엘 지역에 정착하기까지 40여 년을 광야에서 떠돌면서 자신들을 감염병에서 지켜야 했던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이 섬기는 신이 내린 법으로 규정돼 있지만 ‘예방적 원칙’으로 만들어진 보호 조치의 성격이 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이후 우리 사회에서 취하고 있는 조치와 거의 같다.


정결법으로 페스트 피한 유대인

정결법에 따른 생활 덕분에 14세기 유럽에서 횡행한 페스트에도 유대인의 희생은 크지 않았다. 페스트의 대유행에서 유대인만 멀쩡하자 이 질병을 퍼뜨린 것이 유대인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이로 인해 유대인이 중세 시대 마녀사냥의 주된 희생자가 되는 다른 피해를 보게 된 것은 웃지 못할 아이러니다.

사소해 보이는 손 씻기와 사회적 거리 두기나 격리 조치는 한 민족의 생사를 좌우할 정도로 전혀 사소하지 않다. 유대인이 신의 명령으로 율법화해 지금까지 지키고 있을 만큼 충분히 중요한 사안이다. 코로나19로 이동의 자유가 구속당하고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권도 제약받는 상황이 됐다. 맨눈으로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상대로 하는 싸움이기 때문에 잠재적 위험을 낮추려면 달리 도리가 없다. 코로나19를 물리치는 최선의 방법은 예방적 조치에 충실하게 따르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할 수 있다.

윤덕룡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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