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여진연세대 경영학, 신영증권 제약·바이오 애널리스트
엄여진
연세대 경영학, 신영증권 제약·바이오 애널리스트

새해가 밝았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세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미국·영국 등 다른 나라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건 다행이다. 한국도 상반기 중 백신 접종에 나설 것이라고 한다. 백신 보급과 함께 2021년에는 위축된 경기가 살아날 것이라는 희망을 조심스레 가져본다.

경기가 회복 국면에 접어들면 투자 환경도 개선될 것이다. 우리는 어떤 업종과 종목에서 기회를 찾아야 할까. 새해 증시를 맞이하는 많은 투자자가 ‘과연 2020년에 좋았던 업종이 2021년에도 순항을 이어갈까’를 고민할 것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2020년 주식시장을 이끈 바이오·반도체·전기차 등 세 가지 업종을 중심으로 올해 금융투자 환경을 조망해보자.


1│바이오

코로나19가 창궐한 2020년에는 코로나19 진단키트 개발사와 치료제, 백신 연구·개발(R&D) 기업이 주목받았다. 2021년에는 바이오 의약품 위탁생산(CMO) 업체의 성장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여전히 꺾이지 않는 코로나19 확산세로 인해 치료제와 백신 수요가 꾸준히 증가할 텐데, 생산 능력은 현저히 부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치료제·백신 개발에 뛰어든 많은 기업이 생산기지를 확보하기 위해 CMO 업체와 접촉할 것이다. CMO 설비를 건설하거나 증설하는 데에만 약 2~3년이 소요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 그렇다.

한국에서는 삼성그룹과 SK그룹이 세계적인 반도체 제조사로 발돋움한 경험과 공정 관리 노하우를 기반으로 제약·바이오 분야에서도 대형 CMO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과 비어 바이오테크놀로지(Vir Biotechnology)의 코로나19 항체 치료제 위탁생산을 맡았고, SK케미칼의 자회사인 SK바이오사이언스는 아스트라제네카·노바백스와 코로나19 백신 CMO 계약을 체결했다. 또 녹십자는 전염병예방혁신연합(CEPI)과 코로나19 백신 CMO 계약을 맺었다.

이 기업들의 2020년 대규모 수주 효과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날 전망이다. 통상 바이오 의약품 CMO는 계약 이후 실제 생산에 돌입하기까지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를 감안할 때 국내 CMO 업체들의 경영 지표는 2021년부터 개선세가 두드러질 것이다.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수요를 빼놓고 보더라도 면역항암제와의 병용요법 승인 의약품 증가, 신규 바이오 의약품 출시 증가 등도 CMO 업체에는 수혜로 작용할 것이다. 제약·바이오 업종 투자자라면 CMO 업체 실적 고성장을 지속 가능한 흐름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겠다.

바이오 의약품 CMO 업체들의 코로나19 특수가 해당 기업뿐 아니라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 전반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 최근 우리는 각국의 백신 확보 경쟁을 보면서 제약·바이오 산업이 미래의 국가 기간산업임을 확인했다. 그리고 제2, 제3의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은 언제든지 또 발생할 수 있다. 기술 수출형 신약 R&D 기업은 물론 해외에 각종 의약품을 수출해 실적을 올리는 제약사에 대한 시장의 관심은 2021년에도 식지 않을 것이다. 시장의 자잘한 흔들림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자.


2│반도체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 두기의 일상화는 반도체 산업과 관련된 언택트(비대면) 기술의 수요를 크게 늘렸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가 재택근무·원격교육·무인배달 등의 서비스에 새롭게 도약할 기회를 제공했다면, 코로나19 백신·치료제 보급과 함께 세계 경제가 제자리를 찾을 2021년은 이 서비스들의 성장세를 더욱 가속할 것이다.

사회 전반의 언택트 기술 확산은 반도체 시장의 성장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 비대면 사회에서 기업은 특정 지역에만 생산 인프라를 구축했던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 스마트팩토리처럼 정보통신기술(ICT)을 결합한 생산 방식을 추구하게 된다. 인터넷 서버에 데이터를 저장해 언제 어디서든 이용할 수 있는 클라우드 컴퓨팅 수요 역시 급격히 늘어날 텐데, 모두 반도체 산업에는 긍정적인 소식이다.

또 2021년에는 5세대 이동통신(5G)과 인공지능(AI) 시장의 성장에 힘입어 글로벌 반도체 업황 전반이 ‘업사이클’에 접어들 전망이다. 5G 스마트폰 출시 확대는 모바일 D램 수요의 회복세를 불러왔고, 구글·아마존 등 정보기술(IT) 공룡의 서버 D램 구매도 재개됐다. 팹리스(생산 시설이 없는 반도체 설계 업체)에는 5G 통신용 칩과 그래픽처리장치에 관한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 올해 말까지의 주문이 이미 다 찼다는 추정마저 나오는 수준이다.

메모리와 시스템 반도체 업황이 동시에 개선되는 분위기를 말해주듯 유가증권시장 대장주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2020년 12월 24일 500조원을 돌파했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 중 시총 1위였던 TSMC를 제친 것이다. 삼성전자는 5㎚(나노미터)에 이르는 초미세 공정 기술력을 기반으로 퀄컴의 수탁생산 계약을 따냈고,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 물량도 가져오는 등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산업 내에서도 돋보이는 실적을 내고 있다. 성장성이 가장 높은 분야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즉 가장 주목받는 분야에서 시장 기대치를 가장 크게 뛰어넘는 기업은 언제나 투자자에게 옳은 선택지다.


3│전기차

2021년은 ‘전기차의 원년’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종종 접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겪으며 환경 문제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이 커졌고, 각종 친환경 정책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주요 경제 어젠다로 자리 잡았다. 유럽연합(EU)의 경우 2021년부터 판매하는 모든 차량의 탄소 배출량을 일괄 규제하는데, 배출량이 1㎞당 95g을 넘으면, 1g당 95유로씩 차량 대수만큼 판매 제조사가 벌금을 내야 한다. 미국에서는 전기차 충전소 확대, 보조금 제도 강화 등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친환경차 우대 정책이 완성차 업계와 IT 업계에 강력한 시그널이 될 것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친환경 자동차에 대한 수요가 보조금과 쿼터제라는 정책적 지원 단계를 넘어 전기차 전용 플랫폼 등 민간 공급이 확대되는 수준으로 진화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친환경차의 상품성과 원가 경쟁력이 개선되면서 정책적 지원 없이도 성장성이 확보되고 있다는 의미다. 투자자라면 글로벌 전기차 밸류체인(가치사슬) 전반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가져볼 만하다.

테슬라로 대표되는 IT 기반 전기차 회사가 자동차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아이폰을 만들던 애플도 2024년을 목표로 자체 자율주행차 출시 계획을 발표했다. 이런 가운데 기존 내연기관 기반의 완성차 업체들도 전기차 전용 플랫폼 개발과 신모델 출시 등을 통해 시장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전기차 시장의 성장 속도는 이미 높아진 기대치를 뛰어넘고도 남을 만큼 충분히 빠를 것이다. 밸류체인 전반의 밸류에이션(기업 가치) 상승에 베팅해볼 만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