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여진 연세대 경영학, 전 신영증권 제약·바이오 애널리스트
엄여진
연세대 경영학, 전 신영증권 제약·바이오 애널리스트

주식 투자가 이토록 전 국민의 희망으로 떠오른 적이 있었던가. 직장인은 회사 다녀서는 평생 집 한 채 살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 대학생은 취업해도 잘 먹고 잘살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 중년층은 안락한 노후의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 너도나도 주식 투자에 뛰어들었다. 관심이 워낙 뜨겁다 보니 정치권과 금융 당국은 공매도 재개를 앞두고 개미 투자자의 눈치만 보고 있다.

TV뿐 아니라 팟캐스트와 유튜브 등에도 온갖 주식 정보와 강의가 넘쳐난다. 이는 남보다 정보를 더 빨리 더 많이 얻어서 좋은 종목을 골라내겠다는 시장 참여자의 욕구를 대변한다. 투자자 간 정보의 비대칭은 시장의 비효율성과 편견을 심화시켜 종종 가격을 왜곡하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알파 창출의 기회를 얻고, 다른 누군가는 기회를 상실한다.

제약·바이오 업종 내 상장 주식은 미공개 정보와 관련한 컴플라이언스가 엄격해 소수 관계자를 제외한 일반 투자자 간 정보 격차가 다른 산업과 비교해 크지 않은 편이다. 이런 특징의 제약·바이오 분야에서는 공개된 정보를 바탕으로 정확하게 분석하는 훈련을 열심히 해야 시장의 비효율성을 이겨낼 수 있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종은 2015년 한미약품의 대규모 기술 수출 이후 크고 작은 변동기를 거쳐서 이제는 증시(코스피+코스닥)를 통틀어 시가 총액의 13% 이상을 차지할 만큼 성장했다. 업종의 부침 속에서도 극적인 주가 상승세를 보인 종목의 공통점을 꼽아보면, 꾸준한 검증 작업으로 시장 편견을 이겨냈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바이오시밀러(바이오 복제약) 산업을 살펴보자.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상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바이오시밀러 산업은 너무 먼 미래처럼 느껴졌다. 셀트리온 제품이 유럽에서 시장 점유율 30%를 차지한다는 소식이 들려와도 냉담한 시각이 있었다. 이는 10년 넘게 논란이 이어진 셀트리온그룹의 회계 처리 방법 때문이었다. 2017년에는 셀트리온 주가가 1년 새 5배 가까이 상승했는데도 한 외국계 증권사가 ‘매도’ 의견의 리포트를 계속 발간해 지탄받는 일도 있다.

보통의 안정 지향적 투자자라면 기업의 회계 처리가 비정상적이라고 판단하거나 어떤 부정적인 소문을 들었다면 투자하지 않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제약·바이오 업종에서 알파를 찾고 싶은 투자자라면 이런 사례에서 역으로 투자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 당시 회계 지식이 없더라도 셀트리온의 회계 방식 자체가 불법인지 합법인지를 확인하는 건 간단했다. 또 셀트리온이 신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매출이 급격히 상승하는 걸 확인하기도 쉬웠다. 나중에 셀트리온 주가가 크게 상승했다는 건 당시 셀트리온의 성장성이 간과되고 회계 이슈 리스크가 주가에 과도하게 반영됐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다.


셀트리온 연구원이 바이오 의약품 실험을 하고 있다. 사진 셀트리온
셀트리온 연구원이 바이오 의약품 실험을 하고 있다. 사진 셀트리온

이처럼 시장의 소문에 휩쓸리지 않고 객관적으로 종목을 선정하기 위한 판단의 기본은 밸류에이션(기업 가치 평가)이다. 밸류에이션에서 핵심적으로 쓰이는 DCF(Discounted Cash Flow)는 기업 가치를 미래 매출과 이익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미래 매출은 미충족 수요(unmet needs)를 얼마나 충족시킬 수 있는가로 가늠할 수 있다. 미충족 수요는 환자에게 적합한 치료제가 없는 시장을 의미하는데, 이는 밸류에이션에서 가장 중요하다. 밸류에이션의 타 조건이나 가정을 아무리 정교하게 추가하고 다듬어도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별로 없는데, 미충족 수요는 절대적 영향력을 갖는다.

밸류에이션에는 미충족 수요를 추정하는 것 외에도 임상 성공 확률과 기술 수출 확률을 가정하고, 재무적으로는 연구개발 비용과 이익률, 파트너와 수익 배분 비율 등을 적용해 미래 현금 흐름을 구하고, 할인율과 잔존 가치 등을 구해야 하는 과정이 있다. 그러나 약학 지식이나 재무 지식이 없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약물 후보(파이프라인)의 가치를 추정하는 데 미충족 수요가 미치는 영향이 워낙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다른 가정이 다소 틀린다고 해도 살 만한 주식이 사면 안 되는 주식이 되고, 사면 안 될 주식이 살 만한 주식이 되지는 않는다. 투자자는 미충족 수요 추정에 공을 많이 들이는 게 중요하다.

신약을 예로 들면, 유병률과 발생률로 환자 수를 추론하고 기존 치료제와 경쟁 파이프라인과 비교를 통해 미충족 수요를 추정할 수 있다. 물론 정확한 가정을 적용해 추정하는 건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경쟁 상황을 파악하고 시장 규모를 추정하는 것만 해도 경쟁 약물의 임상 데이터, 기존의 글로벌 거래 내역과 규모, 복제약 출시 가능성, 임상 단계 일정, 특허 만료 일정 등을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부해야 할 양이 급격하게 많아진다.

그렇지만 여기에 상장 주식 투자의 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비(非)상장 주식 투자 시에는 모든 약물을 초기 연구 단계부터 검증하고, 최종 허가 단계까지를 예상해야 하며, 예상과 다르게 진행될 때는 연구개발에 개입하는 등의 관리도 필요하다.

상장 주식은 이와는 다르다. 상장 주식은 공시와 IR(투자자 관리)의 의무가 있고, 상장할 때는 기술성 평가와 거래소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최소한의 검증 절차를 거쳐 상장하므로 이를 활용하면 공신력 있는 정보를 가려내기 용이하다. 심지어 위에서 언급한 밸류에이션 관련 자료는 모두 사업보고서에 상세하게 나온다. 신뢰가 담보되지 않은 채널을 통해서 정보를 모으기보다는 공개된 정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추천한다.

물론 미국 식품의약국(FDA) 임상 결과를 허위 공시하는 등 일부 기업의 비양심적 행태가 문제 되고 있고, 가끔 상장 자료 조작 사례가 발생한다는 걸 잘 안다. 이는 과도기적인 문제로, 금융 당국이 책임지고 바로 잡아야 한다. 우리 자본시장이 성숙해짐에 따라 개선될 것이다.

DCF 외에도 ‘피어 밸류에이션(peer valuation)’ 즉 유사 기업을 통해 적정 가치를 추정하는 방법도 있으나, 이를 제대로 하려면 결국 DCF와 동일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유사 기업을 골라냈는데 약물 타깃과 임상 진행 단계 등이 비슷하다면, 비슷한 주가 수준으로 추정한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만큼 할인하거나 할증한다. 비슷한 개발 단계를 거쳐온 기업이 있다면 그 기업의 당시 주가로 추정할 수도 있다. 유사 기업을 잘 찾아내고 비교하려면 해당 약물 개발과 관련된 산업 동향을 이해해야 한다.

최근 금융 당국이 사모펀드 가입 금액을 1억원에서 3억원으로 올리며 규제를 강화했다.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고수익의 사모펀드에 가입하는 부담이 커졌다. 이에 따라 직접 주식에 투자하는 쪽으로 눈을 돌리는 투자자가 늘어나고 있다. 혼란의 시기일수록 개인 투자자도 열심히 공부한다면 제약·바이오 상장 주식이 알파 창출의 최고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