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부영 브랜다임앤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전 넷밸류 코리아 한국지사장, ‘마케터의 생각법’ ‘레인메이커’ 저자
황부영
브랜다임앤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전 넷밸류 코리아 한국지사장, ‘마케터의 생각법’ ‘레인메이커’ 저자

인지부조화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태도 ‘좋아한다, 싫어한다’와 행동 ‘산다, 안 산다’가 일치하지 않으면 심리적으로 매우 불편해진다는 것이다. 태도와 행동, 신념과 결과의 불일치 때문에 불편해진 마음 상태를 ‘인지부조화 상태’라고 한다. 마음이 불편하지 않으려면 태도와 행동의 일관성을 유지하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도 태도/신념과 행동의 일관성을 유지하려고 한다. 안 그러면 너무 마음이 불편해질 것을 아니까.

A를 제일 좋아하는데 결혼은 덜 좋아하는 C하고 했다고 치자. 태도(A가 제일 좋다)/신념(A와의 결혼이 가장 좋은 대안이란 믿음)과 행동(C와 결혼)이 배치된다. 마음이 불편해 죽을 지경이 된다. 이처럼 태도와 다른 행동을 이미 저질렀을 때엔 어쩔 수 없이 ‘합리화’를 통해 마음의 짐을 덜어내게 된다.

그럼 애초부터 태도와 행동이 배치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태도, 신념을 공공연히 선언하면 된다. 선언하면 태도에 맞는 행동을 실천하게 되어 있다. 태도를 공표했기 때문에 인지부조화에 빠지지 않기 위해 공표한 태도에 맞춰 행동을 하게 된다. 그래서 가볍지 않게 엄숙하게 선언할수록 효과는 커지기 마련이다. “그거 장난이었어”라고 눙치고 넘어가기 어렵게 만들면 된다.

브랜드가 어떤 역할을 하고 왜 존재하는가를 밝히는 것이 미션이다. 우리는 ‘이런 일을 하기에 존재의 이유가 충분하다’고 스스로 다짐하는 것이 미션이다. 그리고 그 일을 항시적으로 하고 있는지를 자문하게 만드는 것이 미션의 역할이다.

행동이 핵심이다. 실천이 관건이다. 그래서 미션은 널리 알려야 한다. 우리는 ‘이런 의미 있는 일을 하는 브랜드다’라고 널리 알려야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이 우리의 존재 이유인데, 어떤 일을 한다고 선언만 하고 행하지 않는다면 미션이 무슨 소용이랴?

그래서 미션은 조금 엄숙할 필요가 있다. 좀 비장해도 된다. 기업의 태도/신념을 먼저 공표하면 그렇게 공표한 태도/신념에 맞춰 행동하려는 압력은 거세진다. 공표한 태도/신념이 진지하고 비장할수록 실천의 압박은 더 커지게 된다. 미션이 실천이 되려면 엄숙한 내용을 진지하게 공표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행동으로 옮기려는 심리적 압력이 모두에게 작용하게 된다. 이처럼 미션을 널리 알려 실천에 대한 압박을 내외부로부터 받으면 받을수록 오히려 달성하기가 쉬워진다.


더이누스는 ‘사람들이 다시 힘을 내어 세상에 나설 수 있도록 만든다’를 미션으로 삼고 있다. 사진 더이누스
더이누스는 ‘사람들이 다시 힘을 내어 세상에 나설 수 있도록 만든다’를 미션으로 삼고 있다. 사진 더이누스

우주로 가는 길부터 세상을 위한 일까지

‘간결하고 온화한 라이프스타일을 향유하게 만든다.’ 이것은 무인양품(無印良品)의 미션이다. 무인양품은 ‘단순한 디자인에 양질의 품질과 실용성을 추구하는 일본의 대표적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라고 소개된다. 이들의 미션은 ‘질 좋은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소비자에게 제공한다’ 정도를 한참 넘어서는 엄숙함이 있다. 이 미션으로 그들은 호텔까지 지었다. 말 그대로 간결하고 온화한 스타일이 적용된 호텔을. 그리고 이를 미션의 실천이라고 자랑한다.

블루오리진(Blue Origin)은 일반인의 우주여행을 추구하는 민간 우주개발업체다. 아마존의 최고경영자(CEO) 제프 베이조스(Jeff Bezos)가 사실상 이끄는 기업이다. ‘Building a Road.’, 블루오리진의 미션이다. 블루오리진은 ‘우리는 우리 아이들이 미래를 건설할 수 있도록 우주로 가는 길을 먼저 만드는 것에 전념합니다’라고 그들의 미션을 엄숙히 선언한다.

더이누스는 1975년부터 사업을 시작한, 업력이 짧지 않은 국내 기업이다. 이 회사는 얼마 전까지 ‘IS동서’라는 회사였다. 타일, 위생도기, 비데, 욕실 리모델링 패키지 등을 생산, 판매하는 이 회사는 최근 기업의 가치체계를 재정립했다. 자신들이 보유한 ‘이누스’라는 브랜드를 중심으로 다시 도약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기업명을 ‘더이누스’로 정하고 새로이 미션을 수립했다. 상투적이지 않은 것은 물론 기대를 뛰어넘는 작품 같은 미션이 나와 눈길을 사로잡는다.

더이누스의 미션은 ‘사람들이 다시 힘을 내어 세상에 나설 수 있도록 만든다’이다. ‘언제든 다시 힘을 내어 세상에 나설 수 있게 하는 것’이 자신들의 존재 이유라고 천명했다. 엄숙하고 또 거창하다. 더이누스는 자신들의 ‘존재 이유’와 ‘세상을 위해 하는 일’을 ‘반복되는 일상 속, 공간이 주는 유쾌한 경험을 통해 사람들이 다시 힘을 내어 세상에 나설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더이누스의 미션은 도기, 타일, 비데 등을 잘 생산하는 기업에 그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힘들 때나 좋을 때나 어떤 경우에도 사람들은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욕실이나 화장실에 가야만 한다. 바깥세상과는 일시적으로 단절된 그런 공간에서 사람들이 거기에서나마 유쾌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서 ‘다시 힘을 내어 바깥세상에 나설 수 있게 돕는다’는 것이다. 얼마나 멋진가? ‘보기 좋고 쓰기 편한 도기, 수전, 비데를 제조, 생산한다’ 따위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리 엄숙하게 선언했기에 실천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실천하지 않을 때 오는 인지부조화 상태를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실천할 수밖에! 이 미션에는 많은 사람에게 일상에서의 ‘유쾌함’을 경험하게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다시 힘을 내어 바깥세상으로 힘차게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든다’라니. 미션이 이렇게 정리되니까 욕실이나 화장실에 국한되지 않고 일상의 여러 다른 공간까지도 자신들의 사업 범위 안에 담을 수 있게 된다. 공간의 제약을 넘어서는 비즈니스를 추구해도 존재 이유인 미션 ‘공간에서의 유쾌한 경험으로 다시 힘을 내어 세상에 나가게 한다’ 를 배반하지는 않게 된다. 엄숙한 선언이면서 큰 그림이 담겨있는 미션이다.

‘一生懸命 營業中(일생현명 영업중)’, 잇쇼켄메이(一生懸命)! 평생 한 가지에 목숨을 걸 정도로 열심히 한다. 무엇이든 어설프게는 하지 않겠다는 각오, 힘들고 어렵다고 중도에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결의를 나타내는 말이다.

몇 년 전 일본의 작은 도시를 여행할 때, 골목의 작은 술집 앞에 놓인 간판에 적혔던 말이다. 작은 술집 하나에도 이런 비장함이라니? 일을 대하는 술집 주인의 결의라고 생각했다.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그리고 손님들에게 공표하는 술집 주인의 미션이라고 봤다. 술집도 이 정도 결의를 다지는데 기업의 미션에도 이런 정도의 각오와 엄숙함은 당연히 필요한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