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서울대 법학,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로스쿨, 사법시험 47회, 사법연수원 37기
박재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서울대 법학,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로스쿨, 사법시험 47회, 사법연수원 37기

물품 거래에서 일반적인 유통업체는 도매상과 소매상이 대표적이기는 하나, 복잡∙다양한 형태로 이뤄지는 실제 상거래에서는 일반적인 도매상과 소매상 외에도 여러 이유로 중간 유통업체들을 필요로 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업체가 유리한 결제조건으로 거래하기 위해 신용도가 높고 자금력이 풍부한 중간업체를 포함시켜 거래하는 경우 △협력업체로 등록되지 않은 업체들과 거래를 하기 위해 중간에 협력업체를 포함시키는 경우 △수많은 거래처를 하나로 묶어서 관리하기 위해 중간 관리업체를 포함시키는 경우 등을 들 수 있다. 이처럼 거래당사자들은 저마다의 고유한 경제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여러 단계의 유통 거래를 한다.

그러나 세무조사 과정에서 중간 유통업체들의 거래에서의 역할이 미미했다는 이유로 중간 유통업체가 주고받은 세금계산서가 허위라고 봐 과세처분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이러한 과세처분을 예방하기 위해 거래당사자들이 유의해야 할 점을 소개한다.


비슷한 사례에 전혀 다른 결론

A회사는 구리 선을 만드는 재료를 B회사로부터 현금결제로 구매해오고 있었는데(B→ A), A사의 자금 사정이 악화해 B사에 현금결제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금융기관에서 A와 B 간의 거래가 특수관계자 간 거래라는 이유로 구매자금 대출을 해주지 않자, A사는 대출을 받기 위해 C사를 설립해 B→C→A의 구조로 거래 하게 됐다. 구리 선 재료는 B사에서 A사로 직접 배송됐다. 과세관청은 C사가 B사로부터 발급받은 세금계산서와 A사에 발급한 세금계산서를 허위 세금계산서로 봐 과세했다.

또 D회사는 원래 E회사로부터 원재료를 구매해 왔는데(E→D), D사의 대표이사가 자신이 운영하는 F사를 중간에 끼워 넣어 마진을 착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E→F→D구조로 거래구조를 변경했다. 과세관청은 F사가 E사로부터 발급받은 세금계산서와 D사에 발급한 세금계산서를 허위 세금계산서로 보고 D사의 대표이사를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런 두 사례에서 완전히 상반된 결론을 내렸다. 첫 번째 사례에 대해 법원은 해당 거래의 실질적인 당사자는 B사와 A사이고, C사는 명목상 법률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자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C사가 주고받은 세금계산서는 허위라고 판단했다. 반면, 두 번째 사례에 대해서는 F사가 실제로 설립돼 운영되는 독립된 경제주체로서 별도의 계좌로 D사로부터 매매대금을 지급받은 점 등을 논거로 들어, F사가 주고받은 세금계산서는 허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앞의 두 사례 간에 본질적인 차이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두 번째 사례의 거래가 허위로 볼 여지가 더 많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도 정반대의 판단이 내려진 이유는 적용한 판단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사례에서는 재화의 공급에 필수적인 요소를 기준으로 판단한 반면, 첫 번째 사례에서는 여기에 ‘거래의 실질적인 당사자일 것’이라는 기준을 추가해 해당 세금계산서가 허위라고 판단한 것이다.


유통업체가 세금계산서에 기재된 공급가액 전액을 실제로 주고받았다는 건 그 거래의 실제 당사자라는 점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가 될 수 있으므로, 대금결제는 은행 계좌이체, 카드 결제 등 증빙이 확실하게 남는 방법으로 하는 것이 좋다. 사진은 한 여성 의류 온라인 사업자가 제품을 포장하는 모습.
유통업체가 세금계산서에 기재된 공급가액 전액을 실제로 주고받았다는 건 그 거래의 실제 당사자라는 점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가 될 수 있으므로, 대금결제는 은행 계좌이체, 카드 결제 등 증빙이 확실하게 남는 방법으로 하는 것이 좋다. 사진은 한 여성 의류 온라인 사업자가 제품을 포장하는 모습.

제대로 된 판단 기준은

물품 공급 거래에서 허위 세금계산서는 재화의 공급 없이 주고받는 세금계산서를 말한다. 이에 따라 ‘재화의 공급’이 무엇인지 규정하고 있는 부가가치세법의 내용을 보면 그 판단 기준은 의외로 단순하고 명쾌하게 제시될 수 있다. 부가가치세법 제9조 제1항은 재화의 공급을 ‘계약상 또는 법률상의 모든 원인에 따라 재화를 인도하거나 양도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상거래에서 통상적으로 이뤄지는 물품 공급 거래의 예를 보면 ①‘계약상 또는 법률상 원인’은 매매계약을 의미하고 ②‘재화를 인도하거나 양도하는 것’은 물품 배송을 의미한다. 이에 덧붙여 ③유상으로 이뤄지는 상거래이므로 거래당사자는 당연히 서로 대금을 주고받는다.

이 중 물품 배송에 관해 좀 더 설명하면, 유통거래에서 물품을 반드시 모든 거래당사자를 거쳐서 순차로 배송할 필요는 없다. 중간에 유통업체들을 건너뛰고 곧바로 수요자에게 배송하더라도, 순차로 물품을 배송한 것과 동일한 법적 효과가 인정된다.

정리하면, 거래당사자들이 ①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②그에 따라 물품을 배송하고 ③매매대금을 지급했다면, 다른 사정들과 무관하게 이들이 주고받은 세금계산서는 허위로 볼 수 없다.

세법상 예외적으로 당사자 간의 거래를 허위라고 봐 과세하기 위해서는 계약 체결이 가장행위이거나 세금을 탈루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뤄진 거래여야 한다. 그런데 실제 물품이 배송되고 대금을 지급받은 이상 계약 체결을 가장행위라고 볼 수는 없고, 중간 유통업체가 끼어든다고 해서 부가가치세나 법인세가 탈루되는 바도 없다.

그런데도 앞서 본 첫 번째 사례처럼 ‘거래의 실질적인 당사자일 것’이라는 기준을 추가로 적용해 허위 세금계산서라는 판단을 받는 사례들이 있다. 이는 허위 세금계산서의 판단 기준에 관한 법리가 정착돼 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봐야 한다.

결국 ①계약 체결 ②물품 배송 ③대금 지급이라는 재화 공급의 3요소를 모두 갖췄다면, 거래당사자들이 주고받은 세금계산서는 허위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의할 점은

그렇다면 기업이 유의할 점은 무엇일까. 우선 계약 체결의 측면이다. 계약서를 문서로 작성하고 상호 날인한 후 보관해, 실제 계약을 체결했다는 근거를 분명하게 남겨 둬야 한다.

계약서에는 거래조건인 품목, 수량, 단가에 관해 구체적으로 기재해 두는 것이 계약이 명목에 불과하다는 오해의 소지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빈번히 이뤄지는 계속적 거래의 경우에는 우선 기본 계약을 체결해두고, 거래할 때마다 품목, 수량, 단가 등 구체적 거래조건이 기재된 발주서 등을 작성하는 방법을 활용할 수 있다.

다음으로, 물품 배송의 측면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물품이 중간 유통업체들을 거치지 않고 수요자에게 곧바로 배송되더라도 중간 유통업체들이 물품을 순차로 직접 배송한 것과 동일한 법적 효과가 있으므로, 이 부분은 원칙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세무조사 과정에서 중간 유통업체의 실제 역할이 미미한 점을 문제 삼는 경우가 적지 않으므로, 중간 유통업체들로서는 물품이 제대로 배송됐는지 확인하는 업무를 직접 수행했음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남겨 두는 것이 도움이 된다. 운송확인서, 반입확인서 등이 대표적인 예다.

세 번째로, 대금 지급의 측면이다. 세금계산서에 기재된 공급가액을 실제 지급하고 지급받았음을 보여주는 증빙을 남겨두는 것이 중요하다. 물품이 중간 유통업체를 거치지 않고 수요자에게 곧바로 배송되는 경우, 중간 유통업체에 남아 있는 거래의 확실한 흔적은 바로 ‘돈’이다.

유통업체가 세금계산서에 기재된 공급가액 전액을 실제로 주고받았다는 점은 그 거래의 실제 당사자라는 점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대금결제는 은행 계좌이체, 카드 결제 등 그 증빙이 확실하게 남는 방법으로 하는 것이 좋다.

중간 유통업체들이 실제 거래당사자로서 의사 결정에 관여했음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들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다. 중간 유통업체가 거래 구조를 형성하는 초기부터 협상의 당사자로 관여했다는 점, 그리고 품목, 수량, 단가, 공급 시기와 같은 주요한 거래조건을 결정함에 있어서 직접 참여했다는 점 등은 해당 업체가 실제 거래당사자임을 보여 주는 좋은 근거가 된다.

이에 따라 거래 협상 과정에서 거래 상대방과 사이에 주고받은 이메일과 메시지, 통화 메모를 항상 보관해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