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진 IGM세계경영연구원 기업가치혁신본부장 서강대 기계공학 석사, 전 네모파트너즈 수석컨설턴트
김광진 IGM세계경영연구원 기업가치혁신본부장 서강대 기계공학 석사, 전 네모파트너즈 수석컨설턴트

요즘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기업들의 경영 화두로 뜨겁다. 사실 지속 가능 경영은 오래전부터 논의돼 온 주제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기업이 막연한 느낌과 구체적이지 않은 상황에 답답해한다. 생존을 위한 경영의 패러다임이라고 평가받는 ESG의 핵심은 뭘까. ESG를 추구한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세 가지 맥락을 짚어보고자 한다.


1│모든 사회 구성원 중시하는 가치 기준이 변하고 있다

이 가치에는 진심과 양심 그리고 신뢰라는 키워드가 자리 잡고 있다. 하나의 가치 기준이 변한다는 건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수많은 영역에서 생각과 판단, 행동의 변화를 가져온다. 우리가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부르는 이유다.

‘미닝아웃(meaning out·가치관이나 신념을 기준으로 제품을 선택하는 행위)’은 이런 가치의 변화를 보여주는 최근 신조어 중 하나다. 글로벌 커머스 마케팅 기업인 크리테오의 조사를 보면, 미래 사회의 주역이 될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04년생)의 52%가 자신의 신념과 가치에 맞는 소비를 한다. 자신이 지향하거나 사회적 가치에 부합하는 소비를 중시함을 보여준다. 가깝게는 환경에서부터 멀게는 인류의 번영을 위한 목적이라면 얼마든지 지불할 용의가 있고, 실행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진심이라는 사회적 가치가 힘을 발휘한 또 하나의 사례는 ‘돈쭐 내주러 갑시다’다. ‘돈쭐’은 ‘돈’과 ‘혼쭐’을 결합한 신조어로, ‘착한 기업 제품을 많이 팔아주자’는 의미다.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경영학의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참 재미있는 현상이다. 돈쭐 앞에서는 투자자의 마음과 소비자의 지갑이 너무 쉽게 열린다. 전혀 상관없는 이들이 존경을 표하면서 아름다운 가치 스토리와 고객 경험을 직접 만들고, 적극적으로 공유한다. 전략적 치밀함으로 이윤 창출을 추구하는 성장 방식보다 진심 어린 사회적 가치를 추구함으로써 따라오는 성장의 힘이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도 사회적 존경과 신뢰를 한 몸에 받으면서 말이다.

기업 중에서는 친환경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가 좋은 사례다. 기업의 철학과 선한 가치를 공유하고 실천하는 대표적 기업이다. 환경을 중시하고 그 정신을 모든 제품과 솔루션에 관한 의사 결정에 담는다. 이를 바라보는 투자자와 고객이 매기는 진심의 가치가 높을 수밖에 없다. 파타고니아코리아의 2020년도 매출은 480억원 정도, 최근 3년 동안 매년 30% 이상의 증가세를 보여주고 있다.

롯데칠성음료의 무라벨 생수 페트병도 좋은 예다. 올해 초 업계 최초로 출시한 생수 ‘아이시스 8.0 ECO’는 페트병에서 라벨을 없애 분리배출의 편리함을 추구하고, 재활용 효율을 높인 무라벨 생수다. 올해 1분기 기준으로 판매량이 500%나 급증했다고 한다.


지난해 스타벅스가 음료 17잔을 마시면 증정했던 ‘서머레디백’. 당시 서울 여의도의 한 스타벅스에서는 이 백을 받기 위해 299잔의 커피가 버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사진 스타벅스커피코리아
지난해 스타벅스가 음료 17잔을 마시면 증정했던 ‘서머레디백’. 당시 서울 여의도의 한 스타벅스에서는 이 백을 받기 위해 299잔의 커피가 버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사진 스타벅스커피코리아

2│흉내만 내면 다 안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포인트가 있다. 선한 영향력과 진심이라는 가치가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내재적으로 중심을 잡아주는 철학과 미션 그 자체여야 한다는 점이다. 선한 영향력을 흉내만 내다가 기업 가치를 떨어뜨리는 경우는 의외로 많다. 이른바 ‘그린워싱(Green Washing·실제로는 친환경과 무관하면서 친환경임을 표방하는 행위)’이라 불리는 사례다.

화장품 브랜드 이니스프리는 플라스틱병을 종이로 감싼 용기를 출시하며 ‘페이퍼 보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를 사용한 소비자로부터 기만행위라는 지적을 받았고, 브랜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스타벅스도 선도적으로 종이 빨대를 사용하는 등 친환경에 앞장서는 모습에서 호응을 얻었으나, 다양한 굿즈를 출시하는 과정에서 소비를 부추긴다는 인식을 하게 했다. 상업적인 목적으로 친환경을 활용했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기업 가치가 손상됐다. 인위적이거나 흉내만 내는 사회적 가치는 통하지 않는다.

이런 변화는 기업에 위기가 아닌 성장의 기회를 가져올 수 있다. 돈이 기업 성장을 견인하는 과거 패턴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돈이 성장의 키워드만은 아닐 수 있다.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어떤 철학으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가치를 만들어낼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3│판단 주체가 달라지고 있으며, 그 상황도 예측할 수 없다

한 기업이 영위하는 비즈니스를 위한 이해관계자가 다양해지고 있다. 심지어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참여해 큰 영향력을 만들어내는 예측 불가능의 흐름까지 생긴다. 이들의 참여와 구체적인 요구는 더 강해지고 있으며, 기업의 경영 방향에 직접적인 변화를 끌어내기도 한다.

CJ제일제당을 상대로 지난해 벌어진 ‘스팸 뚜껑 반납하기 운동’이 대표적이다. 소비자들은 스팸의 플라스틱 뚜껑이 불필요하다며 뚜껑 반납하기 운동을 일으켰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 추석 뚜껑 없는 스팸 선물세트를 선보이며 소비자 운동에 반응했다. 긍정적인 사회적 가치로의 소통과 실천이 이뤄진 셈이다.

나만 잘하는 성장이 아닌, 함께 성장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ESG를 중시하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지속 가능 성장을 위한 새로운 밸류체인과 에코 시스템이 형성되고 있다. 앞으로는 이 플랫폼에 참여하지 못하면 비즈니스 자체가 힘들어질 수 있다. 즉 기업을 성장시키는 과정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며, 이 큰 변화를 느끼고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핵심은 과거 경험과 노하우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사고와 시각을 바탕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다. 과거 패턴과 데이터로 꽉 찬 지속 가능 보고서는 점점 쓸모없어질 확률이 높다. 소비자를 포함해 기업이 대해야 하는 모든 이해관계자의 관심과 눈높이는 이미 미래로 이동했으며, 이들은 ESG 에코 시스템을 이끌어 가는 주축이 될 것이다.

“평판을 쌓는 데 20년, 무너지는 데 단 5분”이라는 말이 있다. 기업 가치를 누구보다 냉철하게 평가하는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한 말이다. 사회적 가치와 지속 성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야기하는 지금, ESG를 바라보는 시각이 더 진솔하고 진지해져야 함을 일깨우는 조언이다.

끝으로 ESG를 잘하기 위한 방법 두 가지를 첨언한다. ESG는 착하면서 똑똑해야 한다. 이익을 추구하는 것과 착해지는 것을 흑백 논리로 보면 안 된다. 기업이 영리를 추구하는 과정에 관한 변화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또 다른 기업이 하는 모든 걸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기업이 가진 핵심 이슈와 해야 하는 것을 지속 가능성 프로젝트로 선정하고, 조직 구성원 모두가 모든 현장에서 함께해야 한다. 몇 명이 모여 총대 메는 식의 노력으로는 이 패러다임의 변화에 올라탈 수 없다.

경영학 구루 마이클 포터의 연구에 따르면, 지속 가능성 프로그램이 강력한 회사의 동기 부여가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55% 높았고, 직원 충성도는 40% 높았다. 구성원이 갖는 심리적 자부심과 자존감은 덤이다. ESG와 지속 가능 성장은 100% 신뢰와 실천의 함수다. 이 신뢰의 게임에서 우리 조직과 우리 비즈니스는 과연 돈쭐이 날까, 혼쭐이 날까. 냉철하고 솔직하게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