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흥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서울대 사법학 학사, 법학 석사, 사법시험 37회, 사법연수원 27기, 전 대법원 재판연구관(조세조 총괄연구관), 전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
하태흥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서울대 사법학 학사, 법학 석사, 사법시험 37회, 사법연수원 27기, 전 대법원 재판연구관(조세조 총괄연구관), 전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

최근 모 대기업 사주 일가의 상속세가 역대 최대 규모인 12조원에 이른다는 기사가 화제가 됐다. 우리나라 상속세의 최고 세율은 30억원 초과 시 50%로, 상속 재산의 절반을 상속세로 내야 한다.

자녀에게 기업을 물려줄 때는 최대주주 주식 할증평가(20%)가 적용돼 실제 세율은 60%에 가깝다.

그러나 세계 모든 나라에 상속세 제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캐나다·호주·뉴질랜드·홍콩·싱가포르 등은 이른바 ‘사망세’로 불리는 상속세를 폐지했다. 

미국의 경우 자녀에 대한 증여공제 한도가 부모 각각 약 1100만달러(약 124억3000만원)에 달해 사실상 웬만한 부자도 상속세 부담 없이 재산을 물려줄 수 있다. 싱가포르는 증여세 외에 이자 배당 소득세도 매기지 않는다.

한 나라의 과세권은 납세자가 자국의 거주자이거나 소득 원천이 자국 내에 있어야 행사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원칙적으로 이민으로 그 나라를 떠난 사람에 대해서는 상속세·증여세·소득세를 부과할 수 없다.

주별로 소득세(state tax)에 차이가 있는 미국에서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가 2020년 말 소득 세율이 높은 캘리포니아주를 떠나 소득세가 없는 텍사스주로 이주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나라도 자산가 중에는 상속세나 증여세가 없는 나라로 이민을 고민하는 사람이 늘어가는 추세다. 외교부에 따르면, 2019년 해외 이주 신고자는 4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민을 고려할 때 유의해야 할 세금 문제를 살펴봤다.


해외 이주자, 국외전출세 유의해야

출국일 기준으로 10년 전부터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하는 사람으로서 대주주 요건에 해당하는 국외전출자는 국내 주식을 양도하지 않아도 출국일 당시 시가로 주식을 양도한 것으로 봐 국외전출세를 내야 한다(소득세법 제126조의3 내지 12).

국외전출자가 출국한 후 국내 주식을 실제로 양도해 과세할 때는 그 세액만큼 조정해 준다. 2018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제도다.

거주자가 비거주자로 될 때 보유한 자산을 시가로 매각한 것으로 의제해 부과하는 세금(exit tax)은 나라별로 그 대상과 요건은 조금씩 다르지만, 캐나다는 출국세(departure tax), 미국은 국적포기세(expiration tax)라는 이름으로 존재한다.

일정한 기간 보유와 거주를 한 경우에 주어지는 1가구 1주택 양도소득세 비과세 혜택은 국내 거주자의 주거 안정 등을 위한 것이므로 비거주자에게는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해외이주법에 따른 해외 이주로 가구 전원이 출국하는 경우에는 보유 기간 및 거주 기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다만 출국일부터 2년 이내에 양도해야만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소득세법 시행령 제154조 제1항 제2호 나목). 해외로 이주하려는 사람은 국내 재산을 외화로 바꿔 해외 송금을 하게 된다. 가구별로 10만달러(약 1억1300만원)가 넘는 금액을 보내려면 세무서장이 발급한 해외이주비자금출처확인서를 받아야 반출이 가능하다(외국환거래 규정 제4-6조, 상속세 및 증여세 사무처리 규정 제47조).

세금을 부담하지 않은 재산의 유출을 방지하고자 하는 취지다. 해외로 이주한 지 3년이 넘었다면, 재외 동포로서 부동산 매각자금확인서, 예금 등 자금 출처 확인서를 발급받아야 재산의 해외 반출이 가능하다.


한 나라의 과세권은 납세자가 자국의 거주자이거나 소득 원천이 자국 내에 있어야 행사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이민으로 그 나라를 떠난 사람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상속세, 증여세, 소득세를 부과할 수 없다. 사진은 이민 정책 주무 부처인 법무부 과천 청사. 사진 연합뉴스
한 나라의 과세권은 납세자가 자국의 거주자이거나 소득 원천이 자국 내에 있어야 행사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이민으로 그 나라를 떠난 사람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상속세, 증여세, 소득세를 부과할 수 없다. 사진은 이민 정책 주무 부처인 법무부 과천 청사. 사진 연합뉴스

이민 가더라도 우리나라 세법 적용될 수 있어

세금은 납세 의무자가 거주자(resident)인지 비거주자(non-resident)인지에 따라 달리 부과한다. 거주자는 전 세계에서 벌어들인 소득에 대해 거주지국에 세금을 내야 하고, 비거주자는 그 나라에서 번 소득에 대해서만 세금을 내면 된다.

한국 세법상 거주자는 국내에 주소를 두거나 183일 이상 거소를 둔 개인이고, 비거주자는 거주자가 아닌 개인이다(소득세법 제1조의2 제1항). 국내에 주소를 두고 있는지는 국내에서 생계를 같이하는 가족 및 국내에 소재하는 자산의 유무 등 생활 관계의 객관적 사실에 따라 판정한다(소득세법 시행령 제2조 제1항). 국적이나 실제 거주 장소와는 무관하게 거주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은 시민권, 영주권자 외에도 183일 거주 테스트를 만족하면 세금 신고 의무가 있다. 외국으로 이민해서 경제 활동을 하더라도 우리나라에 남겨둔 사업이나 재산에서 소득이 생기는 경우, 각국에서 번 돈에 대한 세금은 각각 그 나라에 내면 낸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민한 나라의 거주자가 된 이상 그 나라에서 번 돈은 물론 우리나라에서 번 소득도 합해 외국에 세금을 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번 돈에 대한 세금은 이민한 나라에서 외국납부세액으로 공제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우리나라에서 번 국내원천소득에 대해서만 세금을 내면 된다.

문제는 거주자인지는 각국의 세법마다 규정이 다르므로 두 나라 모두에서 거주자로 인정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외국에 이주해 그 나라 세법상 거주자가 돼도 우리나라에 가족이나 재산이 남아 있으면 우리나라 세법상 거주자로도 취급될 수 있다.

이처럼 이중 거주자로 인정되면 두 나라에 전 세계 소득에 대해서 모두 세금을 낼 위험에 처한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우리나라 프로 스포츠 선수의 가족이나 재산이 우리나라에 있을 때 또는 자녀 교육을 위해 이민했지만, 우리나라에 사업 활동 기반이 있을 때, 주로 이런 문제에 부딪힌다.

조세 조약은 이중 거주자의 항구적 주거지가 있거나 중대한 이해관계의 중심지 등이 우월한 어느 한 곳을 거주지국으로 보도록 하나, 현실적으로 그러한 판정은 쉽지 않다.


국내 모든 재산 정리가 세무상 위험 줄이는 방법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재산을 상속받는 사람(상속인) 또는 증여받는 사람(수증자)이 상속세나 증여세를 내도록 정하고 있다. 돌아가신 피상속인 또는 수증자가 거주자라면 전 세계 모든 재산에 대한 상속세나 증여세가 부과되고, 비거주자라면 국내에 있는 재산에 대해서만 세금이 부과된다.

미국의 경우에는 재산을 증여하는 사람(증여자)에게 증여세 납세 의무가 있으므로 증여자가 미국 거주자라면 전 세계 증여 재산에 대해 증여세를 내야 하고, 비거주자라면 미국에 있는 재산에 대해서만 증여세가 부과된다.

이민을 함께 간 가족(비거주자)끼리 ‘국외 재산’을 증여했다면, 이민한 나라의 세법에 따라 증여세 과세 여부가 결정될 뿐, 우리나라 세법이 개입할 여지가 없고, ‘국내 재산’을 증여한 때에만 우리나라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 적용된다.

만약 이민을 간 나라가 미국이라면 국내 재산 수증자는 우리나라 세법에 따라 우리나라에 증여세를 내야 하고, 증여자는 미국 세법에 따라 미국에 증여세를 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사람(거주자)이 이민을 간 사람(비거주자)에게 ‘국외 재산’을 증여하는 경우에는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이 거주자인 증여자로 하여금 그 국외 재산에 대한 증여세를 납부하도록 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때도 증여세를 피할 수 없다.

상속세, 증여세나 소득세가 없는 나라로 이민을 가면 우리나라 세금 문제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일정한 인연을 맺고 있으면 우리나라 세법이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일시적인 절세 방편으로 이민을 생각하는 것은 금물이다.

이민을 가려면 전 가족이 함께 국내 모든 재산을 정리하고 떠나는 것이 그나마 세무상 위험을 줄이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