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설명

전 세계 중앙은행의 막대한 돈 풀기 정책이 인플레이션 우려를 낳고 있다. 주요국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경기 부양을 위해 경쟁적으로 유동성을 늘려 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1년 넘게 매달 1200억달러(약 136조원) 규모의 채권을 사들여 통화를 늘리는 양적 완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도 ①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긴급매입프로그램(PEPP) 규모를 1조8500억유로(약 2590조원)로 내세웠다. 한국은 지난해 네 차례 추경으로 총 66조8000억원을 마련했고, 올해도 14조9000억원의 추경을 편성했다.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고조되면서 예상보다 빠르게 양적 완화가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캐나다중앙은행(BOC)은 올해 4월 선진국 은행 중 처음으로 양적 완화를 축소했다. 스웨덴 중앙은행은 국채매입프로그램을 올 연말에 종료한다고 했고, 노르웨이 중앙은행은 연말 금리 인상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한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의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에 눈길이 쏠린다. 테이퍼링이 진행되면 주식시장에는 변동성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테이퍼링은 금리 인상 전 단계로, 위험 자산에서 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중앙은행들은 뒤늦게 “완화적 통화 정책을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미 주식시장은 흔들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금리 인상을 우려하는 것은 시기 상조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에서 높은 물가 상승률을 보인 부문이 항공·호텔 서비스, 중고차 등에 한정됐기 때문이다. 올해 실업률이 연준의 전망치에 근접하려면 남은 8개월간 실업률이 평균 3.7%의 완전 고용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
짐 오닐(Jim O’Neill)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 소장, 서리대 박사, 전 골드만삭스 자산운용 회장
짐 오닐(Jim O’Neill)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 소장, 서리대 박사, 전 골드만삭스 자산운용 회장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 빠른 경기 회복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른다. 서방 국가들이 대규모 재정·통화 정책을 시행한 데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난봄부터 백신 접종으로 인해 경기 회복 기대감이 이어져 온 셈이다.

이미 주요 경제 지표는 경기 회복세를 보여주고 있다. 중국의 경기가 살아났으며 미국, 영국, 유럽 대륙순으로 경기가 반등했다. 한국의 4월 수출액은 전년 대비 41.1% 증가하며 10년 만에 가장 큰 상승 폭을 기록했다. 전년도 4월 기저효과로 인해 좀 더 부풀려진 감이 있지만, 세계 무역의 강하고 빠른 회복은 부정할 수 없다. 미국의 4월 고용 성적표와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많은 애널리스트가 올해 국내총생산(GDP) 전망치를 계속 상향 조정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세계 경기 회복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인 중 하나는 아직도 코로나19가 확산하는 지역의 상황이다. 인도를 비롯한 많은 개발도상국 경제는 여전히 침체돼 있다.

영국처럼 백신 개발의 선두에 있는 나라들은 전 세계 인구가 백신 접종을 완료할 때까지 바이러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물론 호주와 뉴질랜드는 백신 없이도 코로나19를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지만, 이들은 국경 밖 모든 나라로부터 고립되는 전략을 활용했다. 영원히 지속할 수 없는 방법이다.

영국에서는 인도의 변이 바이러스가 발견됐다. 아스트라제네카와 화이자 백신이 변이 바이러스에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시험대에 올랐다. 앞으로도 많은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가 나타날 수 있으며, 몇 달, 몇 년에 걸쳐 많은 시험이 계속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 회복의 근거가 충분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백신이 변이 바이러스에도 여전히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초기 임상시험 결과는 희망적이다. 게다가 올해 하반기부터는 빈곤국과 개발도상국에도 백신이 빠르게 보급될 것으로 예상된다.

각국의 과도한 재정 지출도 경기 회복을 막는 리스크 요인 중 하나다. 미국의 4월 소비자물가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2% 오르면서 과도한 물가 상승(인플레이션)이 금리 인상을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주식시장이 흔들리며 ② ‘5월에는 주식을 팔고 떠나라’라는 월가의 격언이 특히 주목받기도 했다. 미국 연준 관계자들은 일제히 “물가 상승은 단지 일시적 현상일 뿐”이라며, “지금의 통화 정책을 바꾸는 것을 쉽게 지지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하지만 많은 투자자는 연준이 지금의 입장을 계속 고수할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5월 공개된 4월의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을 보면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이 언급됐다. 연준이 양적 완화 축소를 시사한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처음이다. 사진 AP연합
5월 공개된 4월의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을 보면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이 언급됐다. 연준이 양적 완화 축소를 시사한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처음이다. 사진 AP연합

이러한 우려가 합리적인가 고민된다면, ③ 미국 미시간대의 5년 기대 인플레이션 잠정치를 보면 좋다. 미시간대 5년 기대 인플레이션 잠정치는 연준 관계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지표다. 만약 이 지표가 3% 이상 오르거나 가속화한다면 연준이 생각을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지표는 최근 상승세를 보이기 때문에, 앞으로 주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변이 바이러스, 과도한 재정 지출 외에도 특정 정책이 인플레이션 위협을 악화시킬 경우 경기 회복을 막을 수 있다. 많은 서구 국가 사이에서 ‘소득, 부의 불평등이 너무 심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정치인들은 부의 재분배 정책을 추진하라는 압력을 강하게 받게 될 것이다. 물론 재분배 정책은 분명히 필요하지만, 국가의 생산성 향상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적절하게 설계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금융시장의 우려 목소리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봄 이후 채권과 증시는 엄청나게 반등해 왔다. 오늘날의 변동성이 크게 놀랍지 않을 정도다. ‘5월에 팔고 떠나라’는 증시 격언을 기억하는 투자자들은 9월을 기다릴지도 모른다. 격언의 유래를 들여다보면, 9월은 다시 평온을 되찾을 때다.


Tip

팬데믹긴급매입프로그램(PEPP)은 유럽중앙은행이 코로나19에 대응해 내놓은 채권 매입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3월 7500억유로(약 1050조원) 규모의 채권매입프로그램을 도입하기로 했으나, 같은 해 6월 6000억유로(약 840조원), 12월 5000억유로(약 700조원)를 증액하면서 1조8500억유로(약 2590조원)로 늘렸다. 기한은 2022년 3월까지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6월 예정된 회의를 기점으로 ECB가 양적 완화를 축소할 것” “매입 속도를 줄일 경우 위험하다”는 등 분석이 엇갈린다.

‘5월에는 주식을 팔고 떠나라(Sell in May and Go Away)’는 과거 영국 귀족들과 상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5월에 팔고 세인트레저(9월 중순에 열리는 영국의 경마대회)에 돌아오라(Sell in May and go away, and come on back on St. Leger’s Day)’에서 비롯됐다. 미국 월가의 오래된 투자 격언 중 하나로, 여름에는 보통 주식시장이 부진하니 미리 주식을 팔라는 얘기다. 미국 증시에서는 11월에 주식을 사서 5월에 팔면 수익률이 제일 높다는 게 정설로 통한다. 연말연시에 몰린 퇴직금과 보너스가 연초 주식시장의 상승세를 떠받치는 실탄 역할을 한다는 논리다. 투자자들은 여름휴가를 떠나기 전 주식을 한 번 정리해 차익을 실현하고, 다녀온 뒤엔 기대에 못 미치는 주식을 또 팔아치워 주가가 하락한다는 설명이다.

미국 미시간대의 5년 기대 인플레이션 잠정치는 미국 미시간 서베이의 일종이다. 미국 미시간 서베이는 오랜 역사를 지닌 설문 조사다. 1978년 이전에는 미래 물가 전망 조사가 비정기적으로 이뤄졌으나 1978년 1월부터 매월 기대 인플레이션을 조사하고 있다.

/ 정리 : 안소영 기자, 정현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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