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퀼로트(sans-culotte)는 ‘없는’이라는 뜻의 전치사인 프랑스어 ‘sans’과 귀족들이 입는 ‘짧은 바지’를 뜻하는 ‘culotte’를 결합한 말이다. 상-퀼로트는 ‘퀼로트를 입지 않는 사람들’을 의미하며 프랑스 대혁명 당시 급진적 혁명을 주창한 하층 시민을 일컫는 단어다. 이들의 대부분은 소시민(프티 부르주아지) 계급에 속하는 사람으로 소상인, 수공업자 혹은 근로자였다. 평상시 짧은 바지를 입고 다니는 귀족들이 하층민들을 업신여기는 말로 ‘상-퀼로트’라고 불렀다.

이들 소시민이 목숨을 건 혁명에 나서도록 촉발한 것은 국가의 재정위기였다. 1780년대 말 프랑스는 재정위기로 왕실과 국가의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 ‘태양왕’ 루이 14세가 다섯 차례나 크고 작은 전쟁을 벌였을 뿐만 아니라 베르사유 궁전을 건축해 귀족들과 사치를 하면서 국가 재정은 악화 일로를 걷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간곡한 유언에도 불구하고 루이 15세는 국가 경제를 개선하지 못했고 재정 악화는 심화했다.

결정적인 위기는 루이 16세가 미국의 독립전쟁을 지원하면서 발생했다. 대대로 앙숙이던 영국을 식민지 미국에서 손을 떼게 하기 위해 물자 지원만이 아니라 군대를 파견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독립전쟁에 승리했지만, 프랑스는 경제적인 보상을 받지는 못했고, 당시 1년 재정 수입의 400% 수준인 20억리브르의 대규모 부채를 떠안게 됐다.

대혁명 발발 1년 전인 1788년 프랑스의 국고 회계 보고서에 따르면, 수입은 5억300만리브르에 불과한데 지출은 6억2900만리브르로 20% 이상의 적자를 시현했다. 지출의 50%가 넘는 3억1800만리브르가 부채의 상환과 이자 지급에 사용됐다. 당시 총부채 규모는 50억리브르에 달해 정부 수입의 10배에 이르렀다. 재정위기 소식이 알려지면서 국채를 판매해 적자를 메꾸기 어려워지자 정부는 증세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정부에서는 세금을 내지 않는 특권을 누리고 있던 제1 계급인 승려와 제2 계급인 귀족들에게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귀족들의 반발로 왕실과 귀족들 간 갈등이 발생했다. 귀족들은 1614년 이후 소집되지 않았던 승려, 귀족, 시민의 대표가 참여하는 3부 회의 소집을 요구했다. 3부 회의가 소집됐으나 개혁적인 성직자와 젊은 귀족들의 지지를 기대했던 시민의 열망을 무시하고 계급별 투표 방식으로 승려와 귀족의 면세특권 유지가 결정됐다.

재정 확충에 필요한 증세를 홀로 떠맡게 된 시민계급은 반발했다. 시민계급은 생계 곤란으로 불만을 품고 있던 소시민들을 끌어들여 승려와 귀족들의 특권을 보장하고 있던 구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나섰다. 재정위기가 초래한 세금 부담이 프랑스 대혁명을 촉발한 배경이 된 것이다.


IMF, 불평등 개선 위한 재정 역할 강조

지난해 발생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확대재정 정책을 시행해왔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4월 발표한 재정 모니터(fiscal monitor)에 코로나19가 각국의 재정 정책에 미친 영향을 자세히 실었다. 거의 모든 나라가 재정 적자와 부채 증가를 시현했다. IMF는 “백신 접종이 이뤄져 경제가 정상화하기까지는 유연한 재정 정책으로 국민에 대한 지원을 유지하되 부채를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관리하라”고 권고했다.

재정 정책 방향으로는 코로나19 퇴치를 위한 백신 접종에 관한 지원과 경제적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한 재정 역할을 강조했다. 감염병의 확산으로 빈부 격차가 확대되고 있어서 이로 인한 경제적, 정치적 계층 분리가 지속하지 않도록 재정이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보건, 교육, 사회 안전망 관련 공공 서비스를 강화해 경제적 불평등을 극복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을 요구했다.

재정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부채 규모를 일정한 기준 안에서 관리하면서 사회 내의 상-퀼로트를 버려두지 말고 지원해야 한다는 요구는 일견 상호 배치되는 듯한 내용이기도 하다. 그래서 상기 보고서는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키려면 조세 여력의 확충, 공공 지출의 효율성 개선 그리고 좋은 정부가 필요하다고 덧붙이고 있다. 과연 우리는 이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