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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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룡 KDI 초빙연구위원 전 한반도평화연구원 원장
윤덕룡 KDI 초빙연구위원 전 한반도평화연구원 원장

로마가 거대한 제국을 이룰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군대였다. 로마군의 기본 조직은 군단이다. 공화정 초기에는 4000명에서 5000명으로 조직된 4개의 군단을 호민관 두 명이 두 개씩 지휘하고 있었다. 제정시대에 들면서 군대 수는 급속히 증가했다. 소위 ‘팍스로마나(로마의 평화)’ 시대를 연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50여 개 군단을 가지고 있었다. 제정시대 말기에는 군단의 수도 늘고 로마군은 더욱 증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마가 다스리던 지역이 확대되고 세력이 팽창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강력한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군인들에 대한 사회적 대우가 중요하다. 군대의 사기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로마군의 경우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부터 급여의 일부를 떼어 저축하게도 했지만, 20년 만기 전역하는 병사들에게 퇴직금을 토지로 제공해 사회에 돌아갈 수 있는 안전판을 제공했다. 중도 전역 시에는 위로금을 지급했다. 군단이 해산되는 경우에도 병사들에게 땅을 나누어 주는 등 군인들에 대한 대우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강한 군대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또 다른 리스크는 군인들의 부상이다. 전쟁에서 다친 부상병을 빨리 치료하여 정상적 생활로 복귀시키는 것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과제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기원전 30년쯤에 의료를 전담하는 의료 부대를 따로 창설했다. 그리고 우수한 의사들을 모집하기 위해 군의관에게는 로마 시민권을 자동으로 부여하는 등의 다양한 혜택을 제공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의료의 질적 수준이 높아져 어려운 수술까지도 성공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물론 병사들의 위생이나 영양도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졌다. 그 결과 군인들의 평균 수명이 일반 민간인보다 10년가량이나 더 길었다고 한다.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제국의 지위를 유지한 로마의 비결이다.


지금도 달라지지 않은 군대의 중요성

군대의 중요성은 현대에 와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강대국들의 순위는 국방비 지출 순위와 유사하다. 국제전략연구소(IISS)의 발표에 따르면, 2021년 예산 기준으로 1위부터 5위까지는 미국, 중국, 인도, 독일, 영국의 순서다. 특히 미국의 국방비는7400억달러(약 858조4000억원)에 달해 2위부터 10위까지 국가들의 국방비를 다 합한 금액보다도 더 많다.

미국이 국제 사회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는 근거가 가장 큰 경제력 규모뿐만 아니라 강대한 군사력 때문이기도 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근거다. 미국은 군인들에 대한 사회적 대우 면에서도 상위에 속한다. 모병제를 기반으로 하므로 급여 수준이 다른 국가보다 높을 뿐만 아니라 연금 산정 시 타 직업보다 현저히 높은 방식을 적용한다. 대학을 무료로 다닐 수 있는 혜택도 제공하며 스포츠 관람, 식당, 공공기관, 비행기 탑승 등에서 할인이나 우선 이용의 혜택을 받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의료 혜택도 많다. 미군 기지 대부분에 종합병원이나 의료기관이 있어서 군인과 직계 가족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지정 의료보험회사를 통해 100% 의료 지원을 제공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도 의료인을 제외하면 군인이 우선순위의 가장 앞이다. 주한 미군에 대한 코로나19 백신 접종은 이미 지난해 12월 하순에 시작됐다. 이처럼 미국 사회에서 군대를 예우하는 태도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를 유지하는 근본적 이유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한국은 올해 국방비 예산 기준으로 세계 8위를 기록하고 있다. 글로벌파이어파워(GFP)의 평가에 따르면, 군사력은 세계 6위 수준이다. 그러나 군인들의 사기까지 고려해도 같은 평가가 나올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군인들의 급식이 부실하다는 평가로 한동안 사회가 떠들썩했다. 휴가를 다녀온 장병들을 열악한 시설에 격리하거나 샤워를 금지하는 등의 과잉 방역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그런데 7월 21일 기준 아프리카 해역에 파병된 청해부대 승조원 301명 중 270명이 코로나19에 확진됐다고 한다. 자그마치 90%의 감염률이다. 백신은 한 사람도 접종받지 못했다. 국내에서 백신 접종 횟수가 2180만 회에 달하고 접종이 완료된 사람만 661만 명에 달한다는 통계가 이제는 부끄럽기만 하다. 우리는 2000년 전 로마보다도 국가 경영의 우선순위를 모르는 게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