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스 보베라이트 시장은 2008년 “우리는 변화의 도시 베를린으로 출발하여 기회의 도시 베를린에 이르게 됐다”는 선언과 함께 ‘비 베를린(be Berlin)’ 캠페인을 시작했다. 사진 be Berlin partner·황부영
클라우스 보베라이트 시장은 2008년 “우리는 변화의 도시 베를린으로 출발하여 기회의 도시 베를린에 이르게 됐다”는 선언과 함께 ‘비 베를린(be Berlin)’ 캠페인을 시작했다. 사진 be Berlin partner·황부영
황부영 브랜다임앤 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아시아 브랜드 프라이즈(ABP) 심사위원, 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황부영 브랜다임앤 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아시아 브랜드 프라이즈(ABP) 심사위원, 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뉴욕의 ‘I love NY’는 밀턴 글레이저라는 예술가와 함께 기억된다. 유명한 도시 브랜드 슬로건에서 시장(市長)이 함께 떠오르는 일은 드물다. 독일 베를린만 예외다. 베를린 브랜드 슬로건은 시장과 함께 기억된다.

지난 9월 치러진 독일 총선의 승자는 사회민주당(SPD)이었다. 사민당은 나치 통치까지 겪어내면서 100년 넘게 버텨 온 정당이다. 그 유명한 빌리 브란트가 사민당 소속이었다. 베를린 브랜딩을 시작한 클라우스 보베라이트 시장도 사민당 소속이었다. 그는 2001년 47세에 시장이 됐고 그로부터 13년 동안 베를린 시장으로 일했다. 그는 동성애자였다. 시장이 되기 전 커밍아웃한 그는 “나는 동성애자입니다. 그건 그런대로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이 말로 인해 그의 이미지는 더 좋아졌다. 성적 정체성을 인정하는 여유로운 표현은 그가 시장이 되는 베를린이라는 장소와 맞물려 묘한 연상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독일인에게 나치는 떨치기 어려운 원죄다. 베를린 올림픽으로 대표되는 나치즘의 전성기, 베를린은 그 본거지였다. 나치는 유대인과 함께 동성애자도 학살했다. 동성애자를 게르만족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족속으로 치부했기 때문이다. 자손 번식도 안 하는 집단이라며 수용소에 가둬 죽였다. 이런 야만적인 역사적 맥락을 읽은 이들에게 보베라이트 시장은 젊고 개혁적이며 약자와 소수자를 보듬을 수 있는 인물로 빠르게 부각됐다.


베를린의 위대한 시작 “POOR BUT SEXY”

브랜드 전략은 아이덴티티 설정에서 시작된다. 우리 브랜드를 사람들이 접할 때 특정 방향을 떠올리도록 목표로 정한 생각이나 단어, 연상을 브랜드 아이덴티티라고 한다. 이때 우리 브랜드 실체와 연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오랜 시간 떳떳하지 않은 방법으로 돈을 많이 번 사람이 개인 브랜드의 목표 연상을 ‘정직과 신용’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탁월한 비즈니스 감각’ 정도로 하면 그나마 납득하겠지만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는 건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보베라이트 시장은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실체를 인정하며 브랜딩에 나섰다. 현재 베를린은 ‘혁신의 도시’ ‘창업의 도시’ ‘예술의 도시’ 등 새로운 생각이 끊임없이 쏟아져나오는 젊은 도시로 유명하다. 사람에게도 개방적인 베를린은 독일 내에서 외국인 비중이 가장 높은 도시이기도 하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도시 브랜딩을 고민하던 시기의 베를린은 암울했다. 통일의 여파로 성장률은 계속 하락했고 2003년 기준으로 일자리 지표도 역대 가장 낮았다. 도시 내 통합도 문제였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사실은 상징으로만 존재할 뿐 피부에 와닿는 것은 기존 서베를린과 동베를린 시민 사이의 갈등이었다.

온통 흑역사로만 뒤덮인 이 시기에 변화의 모멘텀은 2003년 보베라이트 시장이 세상에 던진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POOR BUT SEXY(푸어 벗 섹시·가난하지만 섹시하다).’ 이 세 글자는 실체를 인정하되 지향 방향을 선언하는 베를린이라는 도시 브랜드의 출사표였다.

섹시(Sexy)라는 단어는 ‘젊은, 창의적인, 예술적인, 새로운’이라는 의미를 나타나는데, 사실 이 자체로는 신선하지 않았다. 이런 이미지를 지향하는 기업이나 도시가 사실 흔한 탓이다. 베를린이 달랐던 것은 ‘우리는 멋진 아티스트’라고 꾸며내지 않은 데 있다. 베를린의 슬로건이 지향하는 섹시는 가난·빈곤하다는 뜻의 ‘푸어(Poor)’가 있었기 때문에 설득력을 얻었다. 만약 베를린이 ‘We Are Sexy(우리는 섹시하다)’라고만 주장했다면 베를린이 실상은 가난하다면서 ‘푸어’ 이미지를 떠올리며 비웃었겠지만 시장의 도발적인 선포와 베를린의 반전 매력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베를린 시민은 희망과 자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보베라이트 시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섹시를 선포한 이상 그에 걸맞은 실체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오래전 파리가 그랬듯 베를린은 낮은 집세와 물가를 활용해 독일 전역과 전 유럽, 전 세계의 ‘새로운 생각’을 가진 ‘가난하지만 섹시한 사람들(Poor But Sexy Guy)’을 불러들였다. 덴마크 미술가인 올라퍼 엘리아슨이나 영국의 설치미술가인 더글러스 고든처럼 독일 사람이 아니면서도 베를린에서 머물며 역사를 만들어간 예술가는 수없이 많다.


be Berlin은 참여형으로 설계된 캠페인으로, 미국의 전 대통령 케네디가 1963년 서베를린을 방문해서 남긴 연설문의 “나는 베를린 시민이다” 구절을 차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be Berlin
be Berlin은 참여형으로 설계된 캠페인으로, 미국의 전 대통령 케네디가 1963년 서베를린을 방문해서 남긴 연설문의 “나는 베를린 시민이다” 구절을 차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be Berlin

자부심으로서의 ‘be Berlin’

문화·예술 영역뿐만 아니라 산업 영역에서도 베를린은 새로운 생각을 하는 섹시한 이들에게 주목했다. 베를린은 새로운 생각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든 도시에 머물며 작업이나 창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2009년 개장한 베타하우스와 더불어 팩토리 베를린, 더플레이스 등 창업자를 위해 베를린은 아낌없이 공간을 제공한다. 베를린이 ‘스타트업 아우토반’이라 불리는 이유다. 스타트업 투자 금액도 유럽에서 압도적인 1위(2015년 기준·21억4500만유로)를 기록했다.

베를린의 POOR BUT SEXY는 대성공을 거뒀다.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베를린이 가난하지만 섹시한 이유를 찾아냈다. 2013년 카챠 아반타드라는 아티스트가 만든 인포그래픽이 대표적이다. 내세울 것이 없었던 과거와 달리, 실체의 보강과 더불어 시민의 긍정적 인식을 얻은 베를린은 브랜드 캠페인을 확장했다. 보베라이트 시장은 2008년 “우리는 변화의 도시 베를린으로 출발하여 기회의 도시 베를린에 이르게 됐다”는 선언과 함께 ‘비 베를린(be Berlin·베를린이 되자)’ 캠페인을 시작했다.

참여형으로 설계된 캠페인은 ‘be ___ , be ___ , be Berlin!’이라는 가변형 슬로건을 채우는 형식이었다. 서울시의 ‘I SEOUL U’ 등 이후 가변형 슬로건을 유행시킨 곳은 베를린이었다. 슬로건이며 캠페인명인 ‘be Berlin’은, 미국의 전 대통령 케네디가 1963년 서베를린을 방문해서 남긴 연설문의 “나는 베를린 사람이다”라는 구절을 차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1963년 베를린을 방문한 케네디는 100만 명이 넘는 베를린 시민 앞에서 “2000년 전 가장 훌륭한 자랑거리는 ‘나는 로마 시민이다’였습니다. 이제 자유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자랑거리는 ‘나는 베를린 시민이다’입니다”라고 말했다.

캠페인이 시작되자 다양한 구성원과 새로운 이주자들이 각자 자신만의 베를린을 함께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이 캠페인도 역시 큰 성공을 거뒀다. POOR BUT SEXY를 선언한 지 17년, be Berlin 캠페인을 시작한 지 12년이 지난 2020년, 베를린은 다시 새로운 도시 브랜딩을 시작했다. 오랜 시간이 지났고 시장도 바뀌었지만 베를린은 캠페인의 통일성을 유지했다.

‘우리는 베를린이다(WIR SIN DEIN BE-RLIN)’가 새로운 슬로건으로 도입됐다. 이제 베를린은 스스로 ‘섹시하다’고 설명할 필요도, 베를린을 어떻게든 정의(be Berlin)하자고 제안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이것이 성공한 브랜드가 갖는 힘이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지만 완성된 후에는 스스로 동력을 갖고 움직이는 ‘플라이휠’이 되는 것이다. 플라이휠은 동력 없이 관성만으로 회전운동을 하는 자동차 부품으로, 처음엔 엄청난 추진력이 필요하지만 한 번 가속도가 붙으면 알아서 돌아간다. 베를린이 더 이상 섹시를 말하지 않지만, 그 어디보다도 섹시한 도시로 보이는 이유다.

황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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