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거래행위 피해자가 법원에 직접 해당 침해행위의 중지 또는 예방을 청구할 수 있는 사인의 금지청구제도가 시행된다. 사진 셔터스톡
불공정거래행위 피해자가 법원에 직접 해당 침해행위의 중지 또는 예방을 청구할 수 있는 사인의 금지청구제도가 시행된다. 사진 셔터스톡
이인석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서울대 공법 학·석사, 사법 시험 37회, 사법연수원 27기, 전 서울지방법원 판사, 전 서울고등법원 고법판사
이인석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서울대 공법 학·석사, 사법 시험 37회, 사법연수원 27기, 전 서울지방법원 판사, 전 서울고등법원 고법판사

사업체를 운영하는 A는 B로부터 제품 생산에 필요한 부품을 공급받고 있다. 그런데 B의 친척인 C가 A와 같은 종류의 사업을 시작하자 B는 같은 부품을 A에게 공급하는 가격의 반값에 C에게 공급한다. 그러자 후발주자인 C는 싼 가격으로 A와 같은 제품을 생산했고, A는 제품 판매 감소로 부도 위기에 몰리게 됐다. 흔히 있을 법한 가상의 사례에서 A는 어떤 방법으로 구제를 받을 수 있을까.

이런 가격 차별 등 불공정행위로 인한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피해를 보거나 볼 우려가 있어도 지금까지는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에 신고해 조사 결과를 기다리거나 법원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신고를 하더라도 공정위에서 시정 조치를 하지 않으면 피해를 구제받기 힘들다. 즉, 공정위의 사건 처리가 늦어지거나, 공정위가 무혐의 결정을 하는 경우에 피해자 입장에서는 신속한 피해구제를 위한 별다른 대안이 없었다. 손해배상청구는 불공정행위 자체를 중단시키는 것은 아니고 사후적 구제여서 근본적 구제 수단이 되기 힘들었다. A가 공정위에 신고하고 B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하더라도 가격 차별이 신속하게 시정되지 않으면 A는 그사이에 부도가 나 사업을 계속할 수 없을 것이다.


‘사인의 금지청구’는 언제 필요한가

불공정행위를 당한 사업자 입장에서는 법 위반자에 대한 과징금부과나 손해배상청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불공정행위가 조속히 중단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에 피해를 본 사업자가 신속하게 권리구제를 받기 위해 공정위를 거치지 않고 바로 법원에 불공정행위를 중단해달라고 청구할 수 있는 사인(私人)의 금지청구제도가 올해 12월 30일부터 시행된다.

사인의 금지청구제도는 손해배상제도와 더불어 대표적인 사적 집행제도다. 2019년 3월 19일 개정된 공정거래법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됐고, 이번에 시행되는 개정법에 손해배상청구소송과 관련해 법원의 자료제출명령 및 비밀유지명령제도가 도입됨에 따라 사적 집행제도가 대폭 보완됐다. 사인의 금지청구제도는 공정위 시정 조치 없이도 위반행위로 인한 피해를 직접 바로잡을 수 있어 많이 활용할 전망이다.


1│사인의 금지청구제도의 내용

사인의 금지청구제도는 불공정거래행위(부당지원행위는 제외)의 경우 피해자가 공정위를 거치지 않고 법원에 직접 해당 침해행위의 중지 또는 예방을 청구할 수 있는 제도다. 현행 공정거래법 아래서는 공정거래법 위반행위로 인해 피해를 보거나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더라도 즉각적인 대응책 또는 피해구제를 위한 적절한 구제 수단이 없다. 그 결과 피해자는 공정위에 신고해 공정위의 처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법원 역시 과거 사인의 금지청구소송에서 공정거래법상 근거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청구를 기각해 왔다. 그런데 이번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으로 사인의 금지청구제도가 도입되면서 불공정거래행위의 피해자는 바로 법원에 침해행위의 금지 또는 예방을 청구해 신속히 구제받을 수 있게 됐다.


2│청구인, 피청구인, 대상행위 및 관할

불공정거래행위로 인해 피해를 보거나 피해를 볼 우려가 있는 자는 그 위반행위를 하거나 할 우려가 있는 사업자 또는 사업자단체에 대해 침해행위의 금지 또는 예방을 청구할 수 있다(개정법 제108조 제1항). 사인의 금지청구 대상이 되는 행위는 △부당하게 거래를 거절하는 행위 △부당하게 거래의 상대방을 차별해 취급하는 행위 △부당하게 경쟁자를 배제하는 행위 △부당하게 경쟁자의 고객을 자기와 거래하도록 유인하는 행위 △부당하게 경쟁자의 고객을 자기와 거래하도록 강제하는 행위 △자기의 거래상의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해 상대방과 거래하는 행위 △거래 상대방의 사업 활동을 부당하게 구속하는 조건으로 거래하는 행위 △부당하게 다른 사업자의 사업 활동을 방해하는 행위 △그 밖의 행위로서 공정한 거래를 해칠 우려가 있는 행위를 말한다.

개정법은 불공정거래행위 외의 다른 위반행위 유형에 대해서도 금지청구가 가능한지 명시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열거한 행위 이외의 법 위반행위에 대해 금지청구가 인정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공정위의 시정명령이나 과징금과 관련된 소는 서울고등법원의 전속 관할이다. 그런데 사인의 금지청구는 민사소송법에 따라 관할권을 갖는 지방법원과 해당 지방법원 소재지를 관할하는 고등법원이 있는 곳의 지방법원에도 제기할 수 있다. 지방법원을 관할로 해 고등법원이 관할인 경우보다 가까운 곳에서 신속한 구제가 가능하도록 했다.


3│가처분의 중요성

이제까지는 공정거래법상 금지청구권을 인정하는 명문 규정이 없는 한 금지청구권을 본안으로 하는 가처분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판례와 다수 학설의 견해였다. 개정 공정거래법에 금지청구권이 규정된 이상 앞으로 학설과 판례도 금지청구권을 본안으로 하는 가처분을 인정할 것이다. 신속한 구제를 위해 금지청구권을 본안으로 침해의 금지를 구하는 가처분이 자주 활용되고, 분쟁이 실질적으로 가처분 단계에서 종결될 것으로 예상된다.


4│남용 가능성과 담보 제공

개정 공정거래법은 불공정행위의 피해자가 약자임을 암묵적인 전제로 금지청구를 인정했다고 볼 수도 있다. 사실 공정거래법은 약자 대 강자의 구도라기보다 경쟁 사업자들의 상호관계를 규율한다. 경쟁이 치열해지면 불공정행위를 당한 피해자가 아닌 사업자도 경쟁 사업자를 견제하기 위해 정상적인 경쟁에 대해도 금지청구를 악용할 가능성이 크다. 금지청구를 하는 사업자가 반드시 약자이고 피해자라고 볼 수 없는 사안이 다수 등장할 것이다. 금지청구를 당한 입장에서는 소송이 제기됐다는 것만으로도 여론 등의 압박이나 소송 대응을 위해 기업의 역량이 분산될 수도 있고,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해 패소라도 하게 되면 설사 상소를 해 바로잡더라도 사업상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불공정행위는 판단 기준으로 부당성을 요구하고 있고 법 위반 판단 기준이 추상적이어서 경쟁 사업자를 견제하기 위한 금지청구가 무분별하게 이뤄질 경우 웬만한 사업자는 버티기 힘들어질 수도 있다.

공정거래법은 금지청구를 악용해 경쟁 사업자를 방해하는 행위를 막기 위해 담보제공명령제도를 뒀다. 법원은 금지청구의 소가 제기된 경우 그로 인한 피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피고의 신청이나 직권으로 원고에게 상당한 담보의 제공을 명할 수 있다. 그러나 담보제공명령이 금지청구의 남용을 막는 데 기여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남용을 막지 못할 수 있어 부당한 금지청구를 당하거나 당할 우려가 있는 상대방도 불측(미루어 알 수 없는)의 피해를 막으려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5│두 마리 토끼 잡아야

사적 집행이 독점금지법 집행의 주된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미국 반독점법 실무와는 달리 우리나라는 공정위와 검찰의 공적 집행에 의존해 왔다.

하지만 더 효율적인 공정거래법 집행을 위해서는 공적 집행 및 사후적 손해배상청구뿐만 아니라 사전적 구제 수단인 금지청구제도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신속한 피해구제와 금지청구의 남용 방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적정한 운영 실무가 정착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그 운영 경과를 지켜본 후 향후 공정거래법상 불공정거래행위의 특칙 성격을 갖는 하도급법, 대규모 유통업법, 대리점법, 가맹사업법 등에도 사인의 금지청구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