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요소 품귀 현상이 빚어진 11월 4일 오전 경기도 부천시 한 요소수 제조업체 외벽에 ‘요소수 판매가 무기한 중단됨을 알려드립니다’라고 적힌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 연합뉴스
중국발 요소 품귀 현상이 빚어진 11월 4일 오전 경기도 부천시 한 요소수 제조업체 외벽에 ‘요소수 판매가 무기한 중단됨을 알려드립니다’라고 적힌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 연합뉴스
윤덕룡 KDI 초빙연구위원 전 한반도평화연구원 원장
윤덕룡 KDI 초빙연구위원 전 한반도평화연구원 원장

미국 하버드대의 저명한 경제학자 대니 로드릭(Dani Rodrik)은 그의 저서 ‘세계화 패러독스(The Globalization Paradox)’에서 ‘세계화, 민주화, 국가의 자기결정권’은 셋 다 병존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그중 두 개만 선택 가능하다는 소위 ‘트릴레마(Trilemma·삼각 딜레마)’ 이론을 제기했다.

지금까지 세계화의 역사는 그의 주장이 옳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국제무역이 장기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이후다. 17세기와 18세기에는 무역이 거의 매년 평균 1%씩 성장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국제무역이 성장한 것은 19세기 들어서다. 이 시기에는 무역이 매년 4%씩 증가했다. 19세기 초까지 세계 경제 성장률이 1%를 밑돌았으니 무역 성장률이 세계 경제의 성장률을 훨씬 앞질렀던 셈이다. 국제적인 자본 이동도 급속히 늘었고 대륙 간 인구 이동도 활발해졌다. 특히 유럽 근로자들이 아메리카대륙으로 대규모로 이주해 국제 시장 간 통합을 가속화했다. 상품, 자본, 노동의 국제적 이동이 증가해 세계 시장 통합이 빨라진 이 시기가 대규모 세계화(great globalization) 제1기다.

당시 세계화의 물결을 뒷받침한 주요 동인으로 다음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 기술 발전이다. 증기기관을 이용한 증기선과 기차가 등장하여 운송 능력이 획기적으로 빨라지고 수송량도 증가했다. 전신의 개발은 커뮤니케이션을 신속하게 만들어 거래 비용을 낮추는 데 기여했다. 둘째, 경제학 이론의 뒷받침이다. 자유시장을 주장한 애덤 스미스나 리카르도의 자유무역론이 국가 지도자들의 생각을 바꿔 기존 수출입 금지 조치나 과도한 관세 부과를 중단하게 했기 때문이다. 셋째, 1870년대 이후 채택된 금본위제도 때문이다. 국제 거래에서 금본위제도를 기반으로 한 거래가 자리를 잡으면서 통화가치의 임의적 변동이나 금융 불안에 대한 염려 없이 국제 간 거래가 이뤄질 수 있게 만들었다.

당시 경제적 자유주의의 성과를 맛본 강대국들은 세계 시장의 문을 열기 위해 군사력까지 동원해 시장 확대에 나섰다. 이런 정책은 제국주의라는 형태로 나타나 세계 시장을 몇몇 강대국이 나눠 배타적 거래권을 확보하기 위한 각축전을 벌이게 했다. 국가 간 갈등이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고 세계화 추세는 막을 내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서양 진영으로 갈라졌던 세계 경제는 1990년대 사회주의 경제블록 해체로 다시 대규모 세계화의 길에 들어선다. 이번에도 항공 기술과 컴퓨터의 발달이 운송 및 커뮤니케이션을 용이하게 만들어 거래 비용을 낮췄고 세계화 여건을 조성했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과 세계무역기구(WTO)는 자유무역 이념을 국제적으로 확산시켰고, 브레턴우즈 체제가 거래와 금융 질서를 지켰다. 국제 무역이 다시 급속히 증가했고 자본과 노동력의 이동도 급증했다. 특히 생산 공정이 국가별로 나누어지는 ‘글로벌 가치사슬(GVC)’이 국제 무역의 대표적 형태로 등장했다. WTO에 따르면 2017년 전 세계 교역의 74%가 GVC에 관련됐고, 이는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0%에 달하는 규모다.

그러나 확대일로를 걷던 세계화와 GVC의 팽창이 최근 둔화하는 양상이다. 첫째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초래한 공급 불안 때문이다. 앞으로도 해외 공급선이 불가피한 요인으로 단절되는 것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세계가 GVC 의존도를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둘째, GVC를 정치적으로 활용할 가능성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2017년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보복, 2019년 일본의 수출제한 조치, 최근에는 중국의 요소 수출 중단 등을 경험했다. 국내에서도 GVC 의존도를 줄이고 기존의 공급망을 재구성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세계화가 다시 위축되는 방향으로 세계 경제가 움직이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포함한 모두가 로드릭 교수가 제기한 세계화의 트릴레마 이론을 과소평가했는지도 모른다.

윤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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