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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서울대 정치학과, 제37기 사법연수원, 전 국민권익위원회 정보공개심의회 위원, 전 법제처 국민법제관(환경)
오정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서울대 정치학과, 제37기 사법연수원, 전 국민권익위원회 정보공개심의회 위원, 전 법제처 국민법제관(환경)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A씨가 은퇴를 앞두고 사회 환원을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자기 회사의 주식을 출연해 장학재단을 설립하려고 상담을 요청했다. 재단법인 설립 절차 등에 관해 상세한 안내를 했으나, 재단법인은 일정 비율 이상의 주식을 보유할 수 없다는 말을 들은 A씨는 주식을 처분해 현금을 출연하는 방안을 검토하다가 세금 문제로 애초 주식으로 출연하고자 했던 금액보다 출연금의 규모가 현저히 작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결국 A씨는 장학재단 설립을 포기했다.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로 대변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공익 사업을 영위하는 재단법인을 설립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또 고액 자산가들 사이에서도 사회공헌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그 수단으로 공익법인을 고려하는 사례가 늘고 있고,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본격화하면서 개인의 공익법인 설립 수요도 증가할 전망이다.

이처럼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에서 공익에 기여하는 활동을 하고자 하는 민간의 시도가 증가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고, 정책적으로도 권장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앞서 본 사례와 같이 현재 우리나라의 공익법인 관련 제도는 공익법인 설립과 안정적인 운영을 지원하기보다는 오히려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있어 개선이 요구된다.


공익법인을 규제하기 위한 공익법인법

먼저 ‘공익법인’이라는 용어 사용부터 혼란스럽다. 민법상 비영리법인 중에서도 공익적인 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법인에 대해 적용되는 법률로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공익법인법)이 시행 중이지만, 이 법은 ‘사회 일반의 이익에 이바지하기 위해 학자금·장학금 또는 연구비의 보조나 지급, 학술, 자선에 관한 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법인’에 대해만 적용되고, 그 외 공익 사업, 가령 문화 사업이나 환경 사업을 하는 법인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아울러 공익 활동을 하는 법인에 대한 기부를 활성화하기 위해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서는 공익법인 기부에 대한 세제 혜택을 정하고 있는데,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서 말하는 공익법인에는 공익법인법상의 공익법인 외에도 의료법인, 학교법인 등 다양한 공익 사업을 하는 법인이 포함된다. 즉 공익법인법에서 말하는 공익법인과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서 말하는 공익법인의 의미와 대상이 서로 달라서 실무상 혼선이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에 더해 공익법인법은 제1조에서 이 법의 목적을 ‘법인으로 하여금 그 공익성을 유지하며 건전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함’이라고 정해 이 법이 공익법인을 지원, 육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규제하기 위한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실제로 공익법인법은 총 19개 조항으로 규정돼 있는데 이 중 공익법인에 대한 지원, 육성에 관한 규정은 조세 감면을 할 수 있다는 조항 하나뿐이고, 그나마도 감면의 구체적인 내용은 해당 세법에서 정하게 돼 있어 사실상 공익법인법에 따른 공익법인의 육성, 지원은 없다.

이처럼 공익법인법의 적용을 받게 되는 공익법인들이 특별한 지원 없이 엄격한 규제만 받게 되다 보니, 공익법인을 설립하고자 하는 주체들은 공익법인법에 따른 공익법인 설립을 꺼리게 된다.


공익법인 주식취득비율 확대의 필요성

공익법인의 설립 및 운영 실무에서 가장 어려운 점 중의 하나는 공익법인에 대한 주식 관련 규제다. 관련 규제는 세법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데, 공익법인은 특정 회사의 주식을 최대 10%(의결권을 포기하는 등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 최대 20%) 이상 소유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하는 대기업에서 주식을 출연하는 경우에는 그 비율이 5%로 더 줄어든다. 또 기업이 출연하는 공익법인의 경우 그 공익법인 재산 중 그 기업의 주식 비율이 30%(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50%)를 초과할 수 없다.

이처럼 공익법인의 주식취득비율을 제한하는 이유는 공익법인이 편법 증여 내지 기업의 지배권한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변질될 위험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규제는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를 찾기 어렵다. 편법증여 등 문제는 공익법인에 주식을 기부한 사람이나 기업이 공익법인을 지배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하는데, 이미 공익법인법이나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서는 공익법인 이사회에 출연자(기부자)와 특수관계에 있는 이사의 수를 5분의 1로 제한하고 있어 출연자가 공익법인을 지배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필요하다면 공익법인의 지배구조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방법으로도 충분히 편법 증여 등 위험을 막을 수 있어, 주식 취득 자체를 제한하는 것은 지나치다.

특히 초저금리 시대에 공익법인이 현금 재산만 보유한 채로는 안정적인 운영 재원을 마련하기가 어렵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공익법인이 부동산을 보유해 임대수익을 통해 운영 재산을 만드는 방법도 있지만, 임대수익이 나올 수 있을 정도의 부동산을 보유, 관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에, 주식 배당금이 가장 안정적인 운영 재원 확보 수단이 될 수 있다.

또한, 공익법인에 대한 주식 출연의 확대는 상속세 부담으로 인한 기업승계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국내 상속세율은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이고, 그로 인해 최근 대기업 총수들의 연이은 사망 이후 기업의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된다. 미국, 일본 등 대다수 국가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공익법인에 상속재산을 기부할 경우 상속세를 감면해 주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익법인법의 개정 방향

공익법인 설립을 통한 사회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 공익법인법이 실질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공익법인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첫째, 공익법인법이 공익 목적의 사업을 하는 비영리법인들을 지원, 육성하는 법이 될 수 있도록 공익법인에 대한 지원, 육성에 관한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 공익법인에 대한 지원은 세제 혜택에 의한 재정적 지원 외에도 공익법인의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행정적 지원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이뤄질 수 있다. 조세 행정에 필수적인 부분을 제외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공익법인 관련 내용을 공익법인법으로 일원화해 정비하는 것이 행정의 일관성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둘째, 공익법인의 재정적 건전성을 확보하고 기업과 고액 자산가들의 보다 활발한 공익 사업 진출을 위해 공익법인의 주식 취득 제한을 획기적으로 완화해야 한다. 사회 일반의 공공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법인이 회사의 주식을 보유하고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회사가 사회적 책임을 다 할 수 있는 방향이 될 수 있고, 과도한 상속세 부담으로 인한 기업 지배구조 변화의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셋째, 공익법인 간 합병, 분할 같은 구조조정 방법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공익법인은 상법상 회사와 달리 합병, 분할 제도가 없다. 즉, 재정적으로 한계상황에 봉착한 공익법인의 구조조정 방법이 없고, 결국 재정 파탄 후 유령 법인화하거나 무리한 재정 조달 과정에서 그 본래 의미를 상실하고 변질할 우려가 있어, 이를 막기 위한 구조조정 제도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공익법인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바탕으로 설계된 공익법인에 대한 법률과 제도의 관점을 바꿔야 한다. 사회 다른 영역과 마찬가지로 공익 사업에서도 정부보다는 민간 주도의 창의적이고 다양한 활동이 시도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사회를 더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공익법인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오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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