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4일(이하 현지시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쟁이 시작된 직후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 국가는 러시아에 대한 대대적인 금융 제재에 나섰다. 해외 주요 중앙은행 내 러시아 소유 외환 자산을 동결했으며, 3월 12일부터는 은행 간 국제 결제망(SWIFT·스위프트)에서 러시아 은행들을 퇴출하는 등 전례 없는 강력한 제재를 단행했다. 기업은 물론 개인의 국제 금융시장 내 대금 결제나 투자 등이 모두 막힌 것이다. 그 결과 러시아 외환보유고 약 6430억달러(약 827조원) 중 해외 은행에 있는 약 4000억달러(약 514조원)가 동결됐다. 자금줄이 막힌 러시아는 대외 채무 불이행(디폴트) 위기에 처했다.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러시아가 발행한 달러화 표시 국채 2건에 대한 이자와 원금 상환 유예기간은 5월 4일 만료됐다. 당초 만기는 4월 초였으나, 상환이 30일간 유예됐다. 러시아가 지불해야 할 금액은 2022년 만기 국채 이자 및 원금 상환액과 2042년 만기 국채 이자까지 약 6억5000만달러(약 8353억원)였다. 러시아는 달러화 대신 루블화로 국채 이자와 원금을 갚겠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를 상환하지 못할 경우 러시아는 볼셰비키 혁명 이듬해인 1918년 이후 104년 만에 처음으로 디폴트를 맞는 것이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4월 30일 2022년 만기 되는 달러화 표시 유로 본드 5억6480만달러(약 7258억원), 2042년 만기 달러화 표시 유로 본드 8440만달러(약 1085억원)의 이자를 런던 시티그룹을 통해 지불하면서 겨우 디폴트를 면하게 됐다. 서방의 대러 제재가 러시아를 디폴트 위기까지 몰고 간 가운데 중국이 미국과 서방의 제재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대만과 분쟁, 러시아와 관계 등으로 국제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5월 1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중국 인민은행과 재정부 당국자들은 4월 22일 주요 은행 경영진들과 비공개회의를 진행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서방 제재에 대비해 모든 수출업체가 외환 수입을 위안화로 환전하도록 강제해 자국 내 달러화 자산을 최대한 확보하는 등 외환보유액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필자는 이미 자체 국제 결제 시스템이나 디지털 화폐를 개발해온 중국의 행보를 짚으면서, 서방의 대러 금융 제재의 결과를 지켜본 국가들이 이에 미리 대비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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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데이비스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 이사회 의장 현 냇웨스트 그룹(NatWest Group) 회장,전 런던정경대학(LSE)총장, 전 영국 금융감독청(FSA) 청장
하워드 데이비스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 이사회 의장 현 냇웨스트 그룹(NatWest Group) 회장,전 런던정경대학(LSE)총장, 전 영국 금융감독청(FSA) 청장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공포에 직면한 서방 국가가 선택할 수 있는 군사 옵션은 매우 한정적이었다. 이에 서방 정부는 그들의 경제와 금융을 무기로 삼았다. 과거에도 서방 국가는 일부 국가에 경제 제재를 단행했었지만, 현재 러시아에 대한 제재와는 비할 것도 아니었다. 미국과 동맹국은 러시아 중앙은행 외환보유고 대다수를 동결했고, 러시아 은행을 ① 은행 간 국제 결제망(SWIFT⋅스위프트)에서 퇴출했다. 전 세계는 ‘스위프트 퇴출’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배웠고, 전례 없는 금융 시스템의 무기화가 진행되고 있다.

대(對)러시아 경제 제재의 영향을 평가하기에 아직 이른 게 사실이다. (서방 경제 제재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정권이나 정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징후도 아직 없다. 그러나 이 제재가 러시아 경제에 미칠 장기적 피해는 상당할 것이다. 동시에, 현재 서방 주도 제재의 영향은 그들의 직접적 목표인 러시아와 벨라루스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다른 국가들도 미국의 ‘레드라인(협상 시 한쪽 당사자가 양보하지 않으려는 쟁점이나 요구)’을 넘을 경우 달러화 기반의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중국 등은 이미 미국의 금융 제재에 대한 자국의 취약성을 우려해왔다. 저우샤오촨(周小川) 전 인민은행 총재는 미국의 제재가 중국에 미칠 위험을 경고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인민폐(위안화) 사용을 늘릴 수 있는 방어적 조치를 적극 주도했다. 또 일각에서는 대만에 대한 중국의 행보가 서방으로부터 (대러 제재와) 비슷한 제재를 촉발할지 주목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중국은 이 위험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일례로 중국은 스위프트 같은 형태의 국제 은행 지급결제 시스템인 ② 중국국제결제시스템(CIPS)을 도입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기 전 CIPS 거래량은 여전히 스위프트 거래량의 1%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전쟁 이후) 급성장세를 보였다. 스위프트에서 퇴출당한 러시아 은행들이 CIPS를 대안으로 활용하려고 해서다. 다만 거래량 자체가 너무 적어 (전쟁 전 상황과)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CIPS는 서방 결제 시스템의 세계 패권을 크게 위협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중국이 개발한 디지털 위안화는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많은 중앙은행이 디지털 화폐 도입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는데, 중국은 이미 이 게임에서 앞서 나가고 있다.

서방 중앙은행들은 ③ 디지털 화폐(CBDC) 도입에 신중하다. 실제 도입에 앞서 해결해야 할 기술적 문제나 심각한 개인 정보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중앙은행이 그들이 쓰는 1센트까지도 모두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을 반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에 이 문제는 걱정거리가 아니다. 최근 미국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는 디지털 위안화를 “권위주의적 통제의 강화”라고 지적했다.

서방 관점에서 그 의미는 더 복잡하다. 디지털 화폐에 대한 중국의 리더십은 글로벌 수출 시장에서 위안화 사용을 크게 증가시킬 수 있다. 또 중국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국가들은 위안화 사용을 ‘권장받고’ 있다. 후버연구소는 우크라이나 전쟁 직전 발행한 보고서에서 중국이 디지털 화폐를 통해 글로벌 무역 시장에서 위안화 사용을 촉진하는 데 성공한다면 미국의 금융 제재 효과는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이미 고수익을 노리는 투기꾼의 투기 수단이 되고 있는 민간 암호화폐 시장의 선두 주자다. 반면 중국은 실물 경제에서 개인과 기업의 국가 간 결제 비용을 줄이는 값싼 결제 시스템을 선도하고 있다. 여기에 교훈이 있을 수도 있다. 

물론 달러화의 죽음은 과거 수차례 예상됐다. 세계 외환보유고의 달러화 비중은 2000년 71%에서 최근 60% 미만으로 떨어졌지만, 지금으로서는 달러화가 사라질 조짐은 거의 없다고 본다. 그러나 금융 제재를 전쟁 무기로 활용하는 사례가 증가하면 중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이 비슷한 (경제) 제재를 받았을 때 그 타격을 최소화할 방법을 찾도록 만들 것이다. 따라서 글로벌 금융 제재의 결과는 장기적으로 광범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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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전 세계 200여 개국에서 1만1000여 개 금융기관(중앙은행 포함)이 무역대금 등 국제 거래 결제 시 사용하는 금융전산망이다. 세계 금융을 연결하는 파이프라인 역할을 하는 셈이다. 스위프트에서 배제되면 사실상 해당 금융기관은 외국 금융기관과의 거래가 전면 중단돼, 가장 강력한 경제 제재 수단으로 통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미국을 비롯한 주요 7개국(G7)은 2월 27일 러시아 주요 은행을 스위프트 결제망에서 퇴출했다.


중국이 위안화 국제화를 위해 2015년 내놓은 독자적 국제 위안화 결제 및 청산 시스템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3월 1일 기준 103개국 1280개 은행이 CPIS에 참여했다. 2021년 11월 말 기준 거래 건수는 268만 건(당시 64조위안)으로 전년보다 58%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위프트와 비교하면 규모는 매우 작지만, 거래 건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달러화 결제망인 스위프트에서 배제된 러시아가 대안으로 CIPS를 활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형태의 법정(法定) 화폐로, 실물 명목화폐를 대체하거나 보완하기 위한 목적으로 고안됐다. 비트코인처럼 민간에서 발행한 암호화폐와 달리 각국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것으로, 민간 암호화폐보다 안정성이 높고 현금처럼 가치변동이 거의 없다. 액면가격이 정해져 있고 기존 법정통화와 일대일 교환도 가능하다. 또 이는 전자적 형태로 발행돼 중앙은행이 실물 화폐를 발행하는 데 드는 비용을 줄일 수 있고, 돈의 흐름도 쉽게 파악, 추적할 수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사생활 침해 등 ‘빅 브러더(big brother·감시 사회)’ 논란도 일고 있다. 2019년 페이스북의 암호화폐 ‘리브라’ 추진 선언을 계기로 각국 중앙은행이 디지털 화폐 개발에 본격 나섰으며 중국, 스웨덴 등이 앞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