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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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고려대 경제학,  미 듀크대 법학대학원 연수,  사법연수원 32기, 전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심판담당 공익위원
박재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고려대 경제학, 미 듀크대 법학대학원 연수, 사법연수원 32기, 전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심판담당 공익위원

임금피크제는 장년 근로자의 계속 고용을 위해 일정 기간 고용을 연장하면서 일정 연령부터 임금을 조정하는 제도를 말한다. 키워드는 ‘고용 연장’과 ‘임금 조정’이다.

고용 연장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 사회가 점차 고령화돼 가고 있다는 사실과 관련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970년에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 기대수명이 62.3세(남자 58.7세, 여자 65.8세)였는데 2020년에는 83.5세(남자 80.5세, 여자 86.5세)다. 50년 사이에 기대수명이 무려 21년이나 늘어난 것이다. 60세 생일에 장수를 축하하며 하는 환갑잔치도 점점 옛말이 돼가는 느낌이다. 요즘 세간에서 60대를 종종 ‘꽃청춘’ ‘인생의 황금기’로 회자하기도 하는 것을 보면, 그만큼 밖에서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나이도 늦춰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근로 능력이 있는 근로자의 일할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2013년 고령자고용법이 개정돼 2016년부터 사업장 규모에 따라 순차적으로 사업주가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하도록 의무화됐다.

 

임금피크제, 왜 필요한가

고용 연장의 필요성과 함께 논의된 것이 임금 조정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100인 이상 사업장의 약 72%, 300인 이상 사업장의 약 80%가 근속 연수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호봉제를 채택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연공서열식 호봉제하에서는 임금 체계 변경 없이 정년만 연장할 경우 기업의 경제적 부담이 증가하게 된다. 통계 자료에 의하면 근속 1년 미만 근로자의 임금을 100이라고 할 때 근속 30년 이상의 임금 수준은 우리나라가 295인데, 이는 EU 15개국 평균(165)뿐 아니라 우리나라같이 호봉제가 지배적인 일본(227)보다도 더 높은 수준이다. 정년 연장에 따른 기업의 경제적 부담 증가는 청년층 신규 채용 감소나 정규직 일자리의 비정규직 대체 등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고령자고용법은 정년을 연장하는 사업장에 임금 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할 의무도 함께 부과하고 있다.

임금피크제가 시행된 이후 여러 사업장에서 임금피크제의 효력을 둘러싼 법적 다툼이 발생하는데, 유형별로 쟁점을 살펴보면 크게 세 가지다.


주로 무엇이 쟁점이 되고 있나

첫째, 임금피크제 도입 과정에서 과반수 직원 내지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지 그리고 그러한 절차를 준수했는지 여부다. 불리하게 사규를 변경할 때는 원칙적으로 적용 대상 직원 과반수가 집단적으로 동의할 것을 요건으로 하기 때문이다. 

특히 정년을 연장하면서 동시에 도입한 임금피크제, 즉 정년 연장형 임금피크제는 직원들에게 불리한 사규 변경인지 여부가 다퉈지는 경우가 있다. 정년을 연장했다는 점과 함께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는 점을 종합해 보면 직원들에게 불리하지 않다는 견해가 있지만, 정년을 연장한 것은 고령자고용법에 따라 강제된 내용을 사용자가 이행한 것에 불과해 유리한 요소로 볼 수 없다는 기본 전제에서 임금을 하향 조정하는 임금피크제는 직원들에게 불리하다는 견해도 있다. 이 쟁점에 대한 확립된 대법원의 판례는 없는 상황이다.

둘째, 임금피크제가 사규나 단체협약으로 도입됐지만, 그보다 유리한 조건의 계약이 존재하므로 이른바 ‘유리의 원칙(유리한 조건 우선의 원칙)’에 따라 그것이 우선 적용돼야 한다는 취지의 다툼이다. 대법원이 2019년 11월 14일 선고한 2018다200709 판결에서 근로자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변경된 취업규칙은 집단적 동의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보다 유리한 근로 조건을 정한 기존의 개별 근로계약 부분에 우선하는 효력을 갖는다고 할 수 없다는 법리를 밝히며 사규상 임금피크제 기준보다 유리한 연봉계약의 효력을 우선 인정함에 따라 이 쟁점을 다투는 쟁송이 늘어났다. 

유리의 원칙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임금피크 적용 대상 기간 사규상 기준보다 더 유리한 내용의 보수 약정이 존재해야 하며, 단지 임금피크제 도입에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았다는 점만으로는 유리의 원칙을 주장할 수 없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셋째, 일정 연령부터 임금을 하향 조정하게 되는 임금피크제가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고령자고용법에 반해 무효인지 여부다. 고령자고용법은 사업주는 임금에 관해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근로자 또는 근로자가 되려는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를 정하고 있다. 

대법원이 2022년 5월 26일 선고한 2017다292343 판결(이하 대상판결)에서 모(某) 연구기관이 정년을 61세로 동일하게 유지하면서 55세 이상 근로자의 임금을 감액하는 내용으로 도입한 임금피크제가 고령자고용법상 연령 차별에 해당해 무효라고 판시하면서 언론 등이 많은 주목을 하고 있는 쟁점이다.

 

정년 유지형 vs 정년 연장형

대상판결은 사업주가 근로자의 정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임금을 정년 전까지 일정 기간 삭감하는 형태의 임금피크제(소위 ‘정년 유지형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는 경우, 이것이 합리적인 이유 없는 연령 차별로 무효인지 여부는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가 입는 불이익의 정도 △임금 삭감에 대한 대상 조치의 도입 여부 및 그 적정성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의 본래 목적을 위해 사용됐는지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따라서 정년 유지형 임금피크제의 효력은 대상판결이 밝힌 위 판단 기준에 따라 사안 별로 달리 판단될 수 있다. 단지 인건비 부담 완화를 이유로 정년 연장이나 근로 시간 단축, 근무 부담 경감 등과 같은 특별한 대상 조치 없이 도입된 임금피크제라면 합리적 이유 없는 연령 차별로 볼 여지가 비교적 높을 것이지만, 일률적으로 정년 유지형 임금피크제가 연령 차별로서 무효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정년을 연장하면서 임금피크제를 함께 도입한 ‘정년 연장형 임금피크제’는 어떠한가? 대상판결의 위 법리가 정년 연장형 임금피크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합리성 판단에 참고할 만한 준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정년 연장형 임금피크제는 정년 유지형과 달리 연령 차별의 예외에 해당하거나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볼 만한 사정들이 존재한다. 우선, 정년 연장형 임금피크제는 단지 인건비 절감 목적이 아니라 고령자에 대한 정년 연장 내지는 청년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판단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나 대상 조치와 관련해서도, 정년 연장은 상당한 대상 조치로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고령자고용법이 정한 연령 차별의 예외 사유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최근 대법원은 K공단이 정년을 만 58세에서 만 60세로 2년 연장하며, 출생 연도에 따라 만 57세부터 피크 임금을 적용하거나 만 58세부터 피크 임금을 적용한 임금피크제가 유효하다고 판단한 점 등을 함께 고려할 때, 기본적으로 정년 연장형 임금피크제는 정년 유지형 임금피크제와는 달리 판단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년 연장형 임금피크제라고 해서 모두 유효하다고 볼 것은 아니다. 정년 연장 등 대상 조치에 비해 임금 삭감 폭이 지나치게 크거나, 정년이 연장되는 시점보다 더 이른 시기부터 피크 임금을 적용하는 등 합리적이라고 볼 수 없는 사정이 있다면 정년 연장형이라고 하더라도 임금피크제가 무효로 판단될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위와 같은 사정이 있는 사기업의 정년 연장형 임금피크제를 합리적 이유가 없는 연령 차별로서 무효라고 본 하급심 판단이 있다.

정년 연장은 세계적인 추세라고 한다. 주요 선진국처럼 정년을 65세 이상으로 늘리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연공서열식 호봉제같이 경직적인 임금 체계하에서 가능하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장차 임금피크제는 호봉제와 함께 박물관에 전시될 운명이 아닐까 예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