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 결정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70년간 유지돼왔던 유럽의 평화가 깨졌다.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정책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시도가 러시아를 자극했고, 푸틴은 우크라이나 내 친러시아 지역 두 곳의 독립을 선언하며 침공을 시작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우크라이나에 직접 군을 파견하지는 않았지만, 막대한 규모의 무기를 지원해주며 힘을 더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유럽과 미국은 ‘반(反)푸틴’을 외치며 뭉치고 있고, 중국은 러시아 편에 섰다. 둘로 쪼개진 세계에 ‘신(新)냉전’이라는 말이 나온다. 필자는 “미국은 중국·러시아와 신냉전을 펼치고 있다”며 “미국이 이 싸움에서 패배하지 않기 위해서는 미국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왼쪽부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 블룸버그
왼쪽부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 블룸버그
조지프 스티글리츠컬럼비아대 교수 전 세계은행 부총재,빌 클린턴 정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 2001년노벨 경제학상 수상
조지프 스티글리츠컬럼비아대 교수 전 세계은행 부총재,빌 클린턴 정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 2001년노벨 경제학상 수상

미국이 중국 및 러시아와 신(新)냉전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지도자들은 그간 러시아·중국과의 갈등을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사이의 대립으로 보아왔지만, ① 미국이 인권 침해국으로 묘사했던 사우디아라비아의 환심을 사려고 나서면서 합법성과 진위성을 잃었다. 이러한 위선은 미국의 글로벌 헤게모니가 위태롭다는 것을 시사한다. 

1991년 소련의 붕괴로 철의 장막이 무너진 뒤, 20년 동안 미국은 세계 최강국이었다. 하지만 잘못된 중동 전쟁과 2008년 금융위기, 불평등 심화, 마약 오남용 유행 등 미국 경제 모델의 우월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여러 위기가 발생했다. 게다가 지난해 있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의 워싱턴 D.C. 의사당 난입 사건, 다수의 총기 난사 사건, 큐어넌(QAnon) 등 온라인 음모론자 집단의 부상 등 미국 정치와 사회 일부가 깊이 병들어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도 있다.

물론, 미국은 세계 1위 강국의 자리를 뺏기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공식적인 지표를 사용하든 중국이 미국을 경제적으로 앞지르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중국 인구는 미국 인구의 네 배인 데다 수년간 중국의 경제는 미국보다 세 배 이상 빠르게 성장해왔다. 2015년에는 구매력 평가(PPP) 기준으로 중국 경제 규모가 미국을 앞서기도 했다. 

중국은 ‘우리가 미국의 전략적 위협’이라고 밝히지 않지만, 불길한 조짐은 있다. 미 공화당과 민주당은 ‘중국은 전략적 위협이 될 수 있다’ ‘미국이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중국의 경제 성장을 돕는 것을 멈춰야 한다’는 데 초당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지만, 선제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② 새로운 냉전의 전선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도 훨씬 전에 열렸다. 미국 고위 관리들은 진정한 장기적 위협인 중국에 쏟던 관심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옮겨선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사실 러시아 경제 규모가 스페인과 비슷하다는 것을 고려하면, 러시아·중국 간의 협력관계는 경제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냉전에 뛰어든 국가에는 전략이 필요하다. 미국은 혼자 새로운 강대국 경쟁에서 이길 수 없고 동맹이 필요하다. 자연스럽게 미국의 동맹국은 유럽과 다른 민주주의 국가가 될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동맹국들을 소외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고, 여전히 트럼프에게 얹혀가는 공화당원들은 동맹국들에 ‘미국이 믿을 만한 파트너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만든다. 미국은 개발도상국과 신흥시장국에 있는 수십억 명의 마음을 사로잡고, 중요한 자원에 접근해야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은 세계의 호의를 얻기 위해 많은 국가의 마음을 돌려야 한다. 다른 국가들을 착취했던 오랜 역사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보여준 인종차별주의는 도움이 안 된다. 팬데믹 동안 미국은 ‘글로벌 백신 차별’에 기여했다. 부유한 국가는 필요한 만큼의 백신을 확보하고, 가난한 국가는 운명에 맡기게끔 만든 것이다. 러시아나 중국은 다른 국가들에 같거나 낮은 가격으로 백신을 제공하거나, 자체적으로 백신 생산 시설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도운 바 있다. 

미국의 신뢰도 하락은 기후 위기 대응에서도 나타난다. 기후 변화는 대처 능력이 거의 없는 개발도상국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미국은 누적 온실가스 배출량 1위 국가지만, ‘개발도상국들이 기후 위기 여파에 대응하는 걸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미국 은행들은 많은 국가의 채무 위기에 기여하고, 채무 위기에 따른 고통에도 무관심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은 다른 국가들에 무엇이 도덕적으로 옳고, 경제적으로 합리적인지 설명하는 데 능하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이 다른 나라에는 농업 보조금 감축 압력을 넣으면서 자국 농업 보호책으로 농업 보조금을 지속하는 것만 봐도 “(너희는)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말하는 것을 해라”로 읽힌다. 특히 미국은 트럼프 정부 이후 더 이상 도덕적 주장을 하거나, 조언할 신뢰 또한 잃었다. 미국의 ③ 신자유주의④ 낙수효과 이론은 모든 나라에서 한물갔다. 

반면, 중국은 이 부문에서는 능하지 않지만, 개발도상국에 인프라를 제공하는 데는 뛰어나다. 개발도상국은 대체로 큰 빚을 지고 있는데, 채권자인 서방국가 은행들의 행보를 고려할 때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은 개발도상국을 손가락질할 수준도 안 된다. 

이 글의 요점은 분명하다. 만약 미국이 새로운 냉전을 시작한다면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이해해야 한다. 냉전은 궁극적으로 매력적인 소프트파워와 설득력으로 승리할 수 있다. 미국이 세계 1위 강국이 되려면 전 세계가 우리 물건뿐 아니라 사회·정치·경제 시스템까지 사도록 설득해야만 한다. 

미국은 세계 최고의 폭격기와 미사일을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다. 하지만 많은 국가가 (냉전 시) 미국을 돕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개발도상국과 신흥시장국에 구체적인 도움을 제공해야 하며, 그들이 스스로 백신과 치료제를 생산할 수 있도록 코로나19 관련 모든 지식재산(IP)을 포기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전 세계가 미국의 경제·사회·정치 시스템을 부러워할 수 있도록 미국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당장 총기를 규제하고, 환경 규제를 개선하고, 불평등과 인종차별주의에 맞서고, 여성의 생식권을 보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미국 스스로가 ‘전 세계를 지도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전까지, 다른 이들이 미국에 맞춰서 움직이는 걸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프로젝트신디케이트


Tip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사우디아라비아 방문을 두고, ‘바이든표 인권 외교’가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2018년 10월 터키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살해된 사건의 배후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지목하고, 공개 비판했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외톨이로 만들고 무기도 팔지 않겠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에도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과 통화했지만, 실질적인 통치자인 무함마드 왕세자와는 접촉하지 않았다. 

하지만 바이든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후, 급등한 유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의 도움이 필요하자 태도를 바꿨다. 바이든은 석유 증산을 논의하기 위해 7월 13~16일 중동에 방문해 무함마드 왕세자와 회동할 계획이다. 미국의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이번 사우디아라비아 방문이 국제 유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여겨지지만,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손을 잡아, 글로벌공급망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게 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과 중국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전부터 패권 경쟁을 해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동맹 간 협력을 강조하며, 중국·러시아로 대표되는 전제주의에 맞서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2월 19일 “하나에 대한 공격은 모두에 대한 공격”이라고 동맹을 강조했고, 2월 24일 반도체·희토류·배터리·의료용품 등 4대 핵심 품목의 공급망을 점검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대중(對中) 의존도를 줄이고 미국의 산업 기반을 지키겠다는 의지다. 양국은 홍콩·대만·신장 문제로도 갈등을 빚어왔다.


국가 권력의 시장 개입을 비판하고 시장의 기능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중시하는 이론. 1970년대부터 케인스 이론을 도입한 수정자본주의의 실패를 지적하고 경제적 자유방임주의를 주장하면서 본격적으로 대두됐다.


고소득층의 소득 증대가 소비 및 투자 확대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저소득층의 소득도 증가하게 되는 효과를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이 같은 효과가 실제로 나타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정부 개입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