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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룡 KDI 초빙연구위원 전 한반도평화연구원 원장
윤덕룡 KDI 초빙연구위원 전 한반도평화연구원 원장

유토피아는 토머스 모어가 쓴 동명 소설 ‘유토피아’에 등장하는 가상의 섬나라 이름이다. 저자가 이 나라를 ‘상상할 수 있는 이상적인 나라’로 묘사해, 이후 ‘이상향’을 의미하는 단어로 쓰이게 됐다. 하지만 유토피아(Utopia)의 어원을 살펴보면 ‘없는’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ou’와 ‘장소·나라’를 의미하는 ‘topos’를 결합해 만든 단어로, 현실에는 ‘없는 나라’를 의미한다. 다른 해석으로는 ‘좋은’이라는 뜻의 ‘eu’와 ‘topos’가 결합한 말로 ‘좋은 나라’란 뜻이라는 주장도 있다. 정확한 어원을 확인하긴 어렵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좋은 나라’, 즉 ‘이상향’이라는 취지의 단어로 받아들일 수 있다.

사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농업을 주된 산업 기반으로 하는 공산 사회다. 모든 주민이 2년씩 번갈아 가며 농촌에서 일해야 하고 농기구는 공동 소유로 구비된다. 노동 시간은 여섯 시간으로, 오전에 세 시간 일하고 점심 후 오후에 다시 세 시간 일한다. 자유 시간에는 학습과 자기 계발을 한다. 임기 1년의 관리는 주민이 게으름 피우지 않도록 감시한다. 식량이나 물품은 시장에 나가 필요한 만큼 가져오면 된다. 물건을 사고팔지 않아, 화폐는 없다. 생산물은 모든 주민이 먹고살기에 충분한 2년치 필요량을 저장해둔다. 그 이상의 생산물은 수출하거나 타국 빈민을 돕는 데 쓴다. 모든 주민이 동일한 집에 살고 10년에 한 번씩 추첨해 이사한다. 경제 제도면에서는 공산 사회지만, 정치 제도는 민주주의 국가다.

여기서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관리·감시하에 매일 여섯 시간씩 일하고 짜인 틀 안에서 생활하는 나라가 이상향이라니. 이 책이 나온 1515년 당시 영국은 작고 가난한 변방의 섬나라였다. 영국 튜더 왕조가 왕권을 강화하며 정치가 안정되고 근대가 태동했다. 새 기술이 도입돼 모직 생산과 수출이 증가, 경제 성장이 가속화했다. 더 많은 이윤을 위해 자본가가 농민을 몰아내고 양을 키우는 소위 ‘인클로저 운동’이 성행했다. 쫓겨난 농민은 도시 빈민, 범죄자로 전락하거나 과도한 노동으로 건강을 잃었다. 적게 노동하면서도 굶지 않고 스스로 배우고 싶은 것을 공부할 수 있는 세상이야말로 당시 사람들에겐 꿈에서나 가능한 행복한 나라였다.

유엔 산하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는 매년 ‘세계행복보고서’를 발간한다. 146개국을 대상으로 각 국민 1000명에게 삶의 만족도를 조사하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 평균 건강수명, 사회적 지원, 삶 선택의 자유, 관용, 부정·부패 인식 등 6개 기준을 적용해 행복지수를 산출한다. 지난 3월 발표한 올해 보고서에서 한국은 59위였다. 여섯 가지 기준 중 1인당 소득수준과 기대수명은 상대적으로 높았지만, 다른 지수들이 저조했다. 2021년 62위보다는 순위가 올랐지만, 2019년 54위, 2018년 57위를 기록했었다. 행복 순위가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지 못하다는 의미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굶주리지 않는 나라를 가장 중요한 이상향의 조건으로 간주한다. 한국은 이 기준으로 보면 상위권이다. 물론 여섯 시간 노동 조건은 충족되기 어려울 것 같다. 초등학생 때부터 열심히 학원 다니고 잠을 줄여가며 사는 삶이 중년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행복지수의 구성 요소인 상호 간 지원이나 관용 그리고 삶의 다양한 선택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저조한 수준이다. 경쟁 압력이 높아 이웃을 돌보는 여유를 가지라고 주문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좀 더 행복한 사회가 됐으면 하는 기대를 버릴 수는 없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까지 선거가 끝나고 새로이 출범했다. 우리 사회를 유토피아에 좀 더 가까이 데려다주길 새 정부에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