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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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룡 KDI 초빙연구위원 전 한반도평화연구원 원장
윤덕룡 KDI 초빙연구위원 전 한반도평화연구원 원장

영화 ‘자이언트(Giant)’는 실존 인물 글렌 매카시(Glenn McCarthy)의 일생을 에드나 퍼버가 소설화한 동명 소설 기반의 작품이다. 조지 스티븐스가 감독을 맡았고 록 허드슨, 엘리자베스 테일러, 제임스 딘 등 호화 출연진으로 유명하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930년대 초 미국이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되는 시기다. 주인공 제트 링크(제임스 딘)가 살던 텍사스 목장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카우보이였던 그는 하루아침에 농장주 빅 베네딕트(록 허드슨)의 부를 뛰어넘는 재벌이 된다.

실제 텍사스에서 처음 유정이 발견된 것은 1901년 1월이다. 텍사스주 버몬트 카운티의 스핀들톱(Spindletop)에서 당시 최대 유전으로 알려졌던 러시아령 바쿠 유전보다 매장량이 많은 유전이 발견됐다. 이 유전에서 당시 세계 석유 생산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면서 텍사스주는 유전 지대로 주목받았다. 새 유전을 찾는 노력은 계속됐고, 1930년 10월 동부 텍사스 킬고어(Kilgore) 농장에서 또 대형 유전이 발견됐다. 하루 50만 배럴의 생산이 가능한 초대형 유전이었다. 그러자 수많은 사람이 일확천금을 기대하고 텍사스로 몰려들었고, 1년 만에 1000개 이상 유정이 시추되기에 이르렀다. 이들을 ‘블랙 자이언트’라고 불렀다. 영화 ‘자이언트’가 탄생한 배경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 산유국일 뿐 아니라 석유를 에너지 자원으로 만든 최초 국가다. 처음에는 비싼 고래기름을 대체해 등잔에 이용하는 조명용으로 석유를 정제했다. 그러나 석유의 화력을 이용한 엔진이 개발되면서 에너지원으로서의 중요성이 높아졌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은 주요 연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증기기관에 비해 압도적인 성능을 가진 디젤엔진 전함을 투입한 영국의 전략이 성공하며 연합국은 석유를 연료로 활용하는 정책을 적극 시행했다. 선박, 트럭, 탱크, 잠수함, 항공기 등 새로운 무기를 개발해 전쟁에 투입했다. 연합군 측이 당시 세계 원유 생산의 90%를, 미국이 64%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석유는 산업화와 기계화를 이끄는 가장 중요한 자원이 됐다. 미국의 석유 생산 능력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위력을 발휘했다. 미국은 1941년 전쟁에 공식 참전하며 연합군에 석유를 무제한으로 공급했고, 석탄을 액화한 합성석유에 의존하던 독일 화학공장을 집중 포격해 에너지 공급을 막았다. 연합군의 승리는 에너지 패권을 가진 미국의 공로였다. 미국이 오늘날 세계적 지배력을 확보한 배경이 석유 생산 능력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미국은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이지만, 생산량보다 소비량이 더 많아 오랜 기간 석유 수입국이었다. 그러나 2008년 셰일오일 생산을 시작하며 2014년 에너지 수출국으로 전환했다. 이후 기술 발달로 채굴 가능한 매장량은 증가하는 추세다. 미국 에너지 패권이 강화할 수 있는 재료다. 그러나 석유를 비롯한 화석연료가 기후변화를 야기하는 탄소배출 주범으로 지목되며 세계 에너지 판도가 전환기를 맞고 있다. 기존 화석에너지 퇴출이 세계적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유럽연합(EU)은 2050년까지 탄소제로 사회를 실천하겠다고 발표했다.

향후 세계 에너지 패권은 신재생에너지 생산 능력이 좌우할 전망이다. 주요 선진국은 이미 저마다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래 에너지 패권을 좌우할 신재생에너지에 새로운 블랙 자이언트가 몰리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 2020년 기준 국내에서 쓰는 에너지 92.8%를 수입에 의존한 ‘에너지 빈곤국’이다. 에너지 자원의 구조 변화를 기회로 에너지 강국으로 전환할 전략이 필요하다. 블랙 자이언트를 키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