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 기업들의 가치가 적어도 2024년까지 회복하지 못할 것으로 본다. 과거 1970년대와 2000년에도 10년 동안 상당수 기업의 가치가 회복되지 못했다. 소비자들의 돈이 부족해지고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지금, 장기적인 시간에 대비해야 한다.” 세계 최대 벤처캐피털인 미국 세쿼이아캐피털의 더글러스 레오네 글로벌 매니징 파트너는 11월 23일(이하 현지시각) 테크 기업들이 장기 침체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테크 기업들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지난 2~3년간 이어진 재정 확대, 저금리 기조의 반사 수혜를 누려왔다. 하지만 올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미·중 갈등 심화, 긴축 기조 확대 등으로 세계가 경기 둔화 국면에 접어들자 ‘비대면 특수’가 끊겼고, 실적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특히 2019년 설립 후 세계 3위 암호화폐 거래소로 급성장한 FTX의 몰락은 업계 전반에 후폭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FTX 파산 후 17일 만인 11월 28일 암호화폐 대부 업체인 블록파이가 파산보호를 신청한 것이 대표적이다. FTX 계좌에 1억7500만달러(약 2338억원)가 묶여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다른 암호화폐 대부 업체인 제네시스 트레이딩 등의 파산 우려도 함께 커진 상황이다. 실적 악화에 더해 주가까지 급락한 미국 빅테크는 최근 대규모 인력 감원에 나섰다. 대표적으로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SNS) 페이스북을 운영하는 메타(옛 페이스북)는 11월 9일 직원의 13%인 1만1000여 명의 정리해고를 결정했고,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인수한 트위터도 직원 약 3700명을 감축했다. 필자는 테크 기업의 위기가 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다며 남북 전쟁 후 유동성이 과하게 풀렸던 19세기 미국에서 철도 회사 경영권을 두고 벌어진 금융 조작 사건이 경제 불황으로 이어졌던 사례와 비교한다. 빅테크가 유동성 수혜를 받아 독점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점, 유동성이 줄자 침체기를 맞은 점 등의 공통점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필자는 이러한 독점 기업이 야기하는 혼란을 막기 위해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동시대 사람들이 본 ‘이리 전쟁’을 그린 삽화. 사진 위키피디아
동시대 사람들이 본 ‘이리 전쟁’을 그린 삽화. 사진 위키피디아
조너선 레비 시카고대 역사학 교수 시카고대 역사학 박사,현 시카고대 사회사상 위원회 교수, 전 프린스턴대 역사학 부교수
조너선 레비 시카고대 역사학 교수 시카고대 역사학 박사,현 시카고대 사회사상 위원회 교수, 전 프린스턴대 역사학 부교수

최근 암호화폐 거래소 FTX의 실패는 얼토당토않은 일이었다. 현재 파산보호를 신청한 FTX를 감독하고 있는 기업 구조조정 전문가 존 레이 3세가 “이렇게 기업 통제가 완전히 실패하고, 신뢰할 수 있는 재무 정보가 전혀 없는 사례를 본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다. 

이번 일은 단순한 신호가 아니다. 메타의 시가 총액이 890억달러(약 118조9040억원) 감소한 후,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는 회사 인력의 13%인 1만1000명을 해고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트위터를 인수하자 많은 이가 플랫폼의 미래를 우려하기 시작했다.

실패의 불명예를 얻은 FTX의 설립자이자 전 CEO인 샘 뱅크먼 프리드를 보며, 1860년대 후반 미국 금융가들이 철도 회사인 이리(Erie) 경영권을 놓고 벌였던① ‘이리 전쟁(Erie war)’을 떠올렸다. 당시 철도는 건설됐지만, 상당한 재정적 낭비와 기업의 음모가 뒤따랐기 때문이다.

이리 전쟁의 중심에는 센트럴 철도를 경영하는 코넬리우스 밴더빌트 제독, 월가의 투기꾼 대니얼 드루, 금융인인 제이 굴드와 그의 파트너 제임스 피스크 주니어 등이 있었다. 밴더빌트 제독은 비밀리에 경쟁사인 이리 주식을 매입했고, 이리 이사회 일원이었던 드루는 판사를 매수해 불법으로 신주를 발행했다. 어두운 사회상을 보여준 사례였다. 

이리 전쟁에서 드루, 굴드, 피스크는 공매도 후 회사 신주를 발행하는 ② ‘물타기’수법을 활용해 주가를 조작했다. 그리고 이들은 현금과 이리 주식, 채권으로 가득 찬 여행 가방을 가지고 뉴욕을 떠났다.

이리 전쟁이 벌어진 당시 미국의 금융·통화 시스템은 오늘날과 매우 달랐다. 미국은 금본위제 도입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고,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남북 전쟁 기간(1861~65년)에 미국 자본이 뉴욕에 집중되며 월스트리트는 신용으로 넘쳐났다. 이는 종합적으로 굴드와 드루, 피스크 등이 행했던 끔찍한 금융 조작이 가능하게 했다.

굴드 같은 기업 임원들은 경쟁자들이 도착하기 전에 땅을 사들이고, 아메리카 원주민의 주권 영토를 가로지르는 철도를 건설했다. 노동자가 더 높은 임금과 하루 8시간 근무제를 요구하며 파업하자 그들을 짓밟기도 했다. 이후 독점 기업의 유령이 나타났다. 금융 시스템에서 신용, 즉 돈이 빠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기업이 파산할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결국 ③ 1873년과 1893년 두 번의 극심한 금융 패닉이 발생했고, 그 뒤로 훨씬 심각한 경제 불황이 뒤따랐다.


FTX의 설립자 샘 뱅크먼 프리드. 사진 연합뉴스
FTX의 설립자 샘 뱅크먼 프리드. 사진 연합뉴스

빅테크는 1990~2000년대 저금리,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10여 년간 지속된 초저금리 시대를 틈타 경쟁사와 기술 인재, 개인 정보 등을 집어삼키며 경쟁을 최소화했다. 그러나 지금은 금리가 빠르게 상승하면서 주식과 암호화폐에 대한 신용 수요가 줄어든 상황이다. (자금 조달이 힘들게 된) 빅테크들이 적은 비용만 받고 서비스를 제공해온 전략은 장기적으로 이어 갈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점을 보면 이리 전쟁과 지금의 상황은 상당히 유사하다. 넘치는 신용이 기업의 탐욕에 찬 불법 행위로 이어지는 게 필연적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렇다면 중앙은행들이 현재 하는 것처럼 긴축 정책을 펼치고 자본 부족과 시장 경쟁에 노출시키는 게 더 나은 것일까. 꼭 그렇다고 할 순 없다. 중요한 것은 신용의 순수한 양이 아니다. 사회의 필요에 따라 ‘어디에 자금을 대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정당한 요구가 있는 한, 과잉 투자 같은 것은 없다.

암호화폐가 필수적인 공공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명확하지 않지만 현재의 글로벌 통화 시스템에 도전한다는 것은 명확하다. 필자는 “암호화폐는 올바른 질문을 제기하지만 잘못된 답을 준다”는 보코니대학의 마시모 아마토 교수와 루카 판타치 교수의 판단에 동의한다.

‘공기업’과 같은 규제 원칙은 재발견할 가치가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기업의 역동성을 약화시킨 20세기 억압적인 관료주의의 문제가 과도하게 평가됐다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 시대인 1990년대 기업의 역동성이 되살아났을 때 사기 범죄가 많이 늘어났고, 새로운 기술로 인한 부(富)가 축적되며 불평등한 경제 구조 문제도 함께 되돌아왔기 때문이다.

빅테크가 추구하는 가치의 상당 부분은 재미부터 놀라운 창의성에 이르기까지 칭찬할 만하다. 그러나 FTX의 붕괴, 트위터와 메타 등 대표적인 빅테크를 집어삼킨 혼란은 기업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비용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국가는 더 이상 국민의 저축과 대중 커뮤니케이션의 주요 수단을 포함해, 공공의 중요한 문제들을 억만장자들의 유치한 환상, 변덕에 맡겨선 안 된다. 

ⓒ프로젝트신디케이트

Tip

이리 전쟁(Erie war)은 미국 금융인들이 1866년부터 1868년까지 미국 철도 회사 ‘이리’ 경영권을 놓고 벌인 분쟁을 말한다. 뉴욕센트럴철도회사의 소유주인 코넬리우스 밴더빌트 제독은 경쟁사인 이리를 상대로 적대적인 인수합병 전략을 펼쳤고, 이리 이사였던 대니얼 드루, 제이 굴드, 제임스 피스크 주니어 등은 불법으로 수천 주의 이리 주식을 발행해 주가를 조작하며 대응했다. 그 과정에서 판사나 의원들을 매수하는 등 불법 행위에 의존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후 이 전쟁은 이익을 위해 어떤 악행도 마다하지 않던 19세기 미국 기업인의 흑역사로 인용돼 왔다.

‘물타기’는 미국 목축 업자 드루의 일화에서 비롯된 투기 용어다. 드루는 도시에 도착하기 직전, 장거리 이동에 지친 소에게 강제로 소금을 먹였다. 소가 미친 듯이 물을 마시게 해, 몸무게를 늘리는 수법을 쓴 것이다. 소를 더 비싸게 팔기 위한 목적이다. 드루는 주식에서도 공매도를 통해 이리 주식을 매도하고, 신주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주식 시장에 물타기 수법을 들여왔다. 주가를 의도적으로 떨어트려 이익을 보기 위해서였다. 현재는 매입한 주식 가격이 하락할 때 그 손실을 줄이기 위해 매입 수량을 늘려, 평균 매입 단가를 낮추려는 행위를 주로 칭한다.

1873년 유럽 빈 증권거래소 주가 폭락이 촉발한 불황. 미국의 철도 투기 붐에 따른 과도한 건설과 불안정한 재정이 사태를 악화시켜 두 차례의 금융 패닉을 낳았다. 철도 회사의 파산과 은행의 뱅크런 등 경제 혼란이 이어졌다.

조너선 레비

정리 이주형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