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오창펑(趙長鵬) 바이낸스 최고 경영자(CEO). 사진 블룸버그
자오창펑(趙長鵬) 바이낸스 최고 경영자(CEO). 사진 블룸버그

최근 세계 각국 정부가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바이낸스(Binance)에 ‘규제 폭탄’을 퍼붓고 있다. 7월 2일(이하 현지시각) 태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바이낸스가 무면허로 자국에서 디지털 자산 사업을 운영해 왔다며 형사 고발 조처를 했다. 6월 25일에는 영국 금융 규제 당국이 자국 내 바이낸스의 영업을 금지했다. 이어 7월 초 영국 대형은행 바클레이스(Barclays)는 바이낸스 은행 계좌 입출금을 중단시키고, 바이낸스에 대한 모든 신용·직불카드 결제를 중단했다. 일본 금융청 역시 6월 25일 바이낸스가 당국의 허가 없이 일본 내 영업을 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미국 법무부와 국세청도 지난 5월부터 바이낸스를 통한 자금세탁 여부를 조사 중이다. 이와 함께 암호화폐 거래 기업은 연방 국세청 신고를 의무화하는 제도를 신설했다.

바이낸스가 각국 정부의 제재 대상에 오른 건 바이낸스가 운영 중인 암호화폐 거래소가 자금세탁 등 불법적인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블록체인 포렌식 회사인 체인어낼리시스는 작년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바이낸스가 다른 암호화폐 거래소보다 범죄행위에 얽힌 자금 이동이 더 많다”고 밝히기도 했다.

바이낸스의 공동창업자인 자오창펑(趙長鵬) 최고경영자(CEO)는 7월 7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규제가 많아지는 것은 가상자산 산업이 성숙해지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라며 “바이낸스는 규제 준수를 위해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우선 그는 국제 규제를 준수하기 위해 준법감시팀 규모를 연말까지 두 배로 확장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외부 업체와의 자금세탁방지 관련 파트너십도 확대한다. 바이낸스는 사이퍼트레이스(Ciphertrace) 같은 블록체인 데이터 분석 기업과 자금세탁방지 관련 파트너십을 맺은 바 있다. 그는 또 각국 규제를 준수하기 위해 각국에 지사를 설립하겠다고 했다.


사진 블룸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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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동참했지만, 바이낸스 규제 쉽지 않을 듯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7월 13일 “바이낸스 등 해외에 있는 가상자산 거래소도 원화 결제 등 국내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국에서 영업을 한다면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 따라 금융 당국에 영업 신고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오는 9월부터 시행되는 특금법 개정안은 ‘가상자산 자금세탁방지법’으로도 불린다. 이 법률에 따라 시중 은행으로부터 실명 확인 입출금계좌(실명계좌) 사용 허가를 받은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들만 영업 신고를 할 수 있다. 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 등록을 받지 못하면 사실상 국내에서 거래소 영업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특금법이 시행돼도 바이낸스가 영향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바이낸스는 2019년 7월 한국법인(바이낸스KR)을 설립했지만, 2021년 1월 한국법인을 해산시켰다. 이를 두고 가상자산업계에서는 9월 특금법 시행을 앞두고 바이낸스가 한국법인을 정리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바이낸스는 한국법인을 통해 잠깐 동안 원화거래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올해 1월부터는 법인을 철수, 해당 서비스를 접은 상태다. 이 때문에 바이낸스가 특금법에 따른 영업신고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금융위는 법령해석을 통해 영업신고 의무 대상인 ‘한국에서 영업하는 거래소’에는 원화 결제 지원뿐 아니라 홈페이지상 한국어 서비스를 지원하는 거래소도 해당한다고 밝혔다. 바이낸스는 자사 홈페이지에 한국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특금법 적용을 받는다.

특금법 적용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바이낸스가 9월 이후 국내 영업신고를 안 하면 형사처벌(사업자는 5년 이하 징역, 법인은 5000만원 이하 벌금) 대상이 된다. 이 경우 한국법인이 국내에 없기 때문에 바이낸스 본사를 형사 고소해야 한다. 문제는 바이낸스가 특정 지역에 글로벌 본사를 두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해외 사법기관과 공조를 통해 형사제재를 가하려고 해도, 특정 지역에 본사가 없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즉 바이낸스가 특금법을 위반해도 사실상 법적 제재가 어렵다는 말이다.

규제 당국이 국내 투자자들의 바이낸스 사이트 접속을 막기 위해 인터넷 프로토콜(IP)을 차단해도 국내 투자자들이 가상사설망(VPN) 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거래소에 접속할 수 있어 규제 효과가 떨어진다는 점도 문제다. 현재 바이낸스는 공식적으로 한국법인이 없는 상태이지만 국내 투자자들은 여전히 글로벌 웹사이트인 바이낸스를 통해 투자를 하고 있다. 원화 대신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등을 이용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내년부터는 가상자산 양도수익에도 22%의 세금을 부과할 예정이라 바이낸스 같은 해외거래소 사용이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한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는 “국내 투자자들이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바이낸스 같은 해외거래소 사용을 크게 늘릴 것”이라며 “올해 미리 비트코인을 바이낸스로 송금시킨 뒤 나중에 한국거래소로 비트코인을 입금해서 원화로 바꾸면 양도 수익이 있는지 확인이 불가해 세금을 피할 수 있다”고 했다.

바이낸스의 수난은 ‘규제 폭탄’에 머물지 않는다. 바이낸스는 지난 5월 비트코인 가격 폭락 때 시스템 정지로 고객들에게 큰 손실을 입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7월 11일 전 세계 투자자 700여 명이 손실 보상을 위해 영국 등 유럽 소재 바이낸스 법인 11곳에 소송 관련 서한을 발송, 집단 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보도했다. 반면, 국내 투자자들이 피해를 보상을 받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에 지사가 있거나, 특정 지역에 본사가 있으면 그 국가에서 소송을 진행해 소송 시간을 단축할 수 있지만, 현재로선 한국에서 소송을 진행할 수밖에 없어서다. 법무법인 광장의 블록체인팀장인 윤종수 변호사는 “한국에서 재판하면 소장 송달, 당사자 출석, 재판 관할 등의 문제로 오랜 시일이 소요된다”며 “승소해도 사실상 강제집행이 어려운 문제도 있다”고 했다.


Plus Point

특금법 앞두고 국내 코인 ‘줄상폐’

국내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는 6월 18일 코인 24종을 상장 폐지했다. 한 번에 상장 폐지를 한 것으로는 업비트 출범 이후 최대 규모였다. 이 밖에도 6월 중순 이후 코인빗(8종·6월 15일)과 빗썸(4종·6월 17일), 포블게이트(3종·6월 16일) 거래소에서도 총 15종의 코인이 상장 폐지됐다. 업계 관계자들은 “자금세탁방지를 위한 특금법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암호화폐 시장에 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라고 입을 모았다.

금융 당국이 특금법 개정안 시행 전 시중 은행을 통해 우회적으로 부실 거래소와 코인들을 솎아내기 시작했다. 특금법상 금융 당국이 직접적으로 거래소와 코인을 규제할 권한이 없어 은행을 간접적으로 내세운 것이다. 은행의 심사를 통과한 거래소만 실명계좌 사용이 허용되고 영업신고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거래소들은 은행이 요구하는 기준을 맞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거래소들 역시 부실 코인을 정리하는 등 은행 심사 전 거래소 존속을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금융위가 제시한 실명 확인 입출금계좌 발급 허용 기준은 다음 네 가지다. 고객 예치금 분리보관,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 획득, 고객 거래내역 분리 관리, 가상자산사업자의 자금세탁행위 위험에 대한 은행의 판단이다. 이 중 자금세탁행위 위험에 대한 판단 항목은 주관적인 영역이라 전적으로 은행들의 심사에 달렸다. 은행들은 특금법 시행 이후 거래소에서 자금세탁 사고가 발생하면, 실명계좌를 발급한 은행이 함께 금융 당국의 제재를 받아야 하므로 거래소 심사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 심사에 나선 은행들은 케이뱅크, 농협은행, 신한은행이다. 케이뱅크는 업비트, 농협은행은 빗썸과 코인원, 신한은행은 코빗과 각각 실명계좌 발급 제휴를 맺은 상태다.

심민관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