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10월 26일 주가가 주당 1000달러를 돌파하며 ‘천슬라’에 올랐다. 사진 셔터스톡
미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10월 26일 주가가 주당 1000달러를 돌파하며 ‘천슬라’에 올랐다. 사진 셔터스톡
이경수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 현 한국은행 외환자산 운용위원회 외부위원, 투자전략 부문 최다 베스트 애널리스트 수상
이경수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
현 한국은행 외환자산 운용위원회 외부위원, 투자전략 부문 최다 베스트 애널리스트 수상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 주가가 10월 26일 주당 1000달러(약 110만원)를 돌파했다. 시쳇말로 ‘천슬라’가 됐다. 11월 1일엔 1208달러(약 144만원)까지 올랐다. 이제 국내 투자자가 테슬라 주식 1주를 사려면 우리 돈으로 140만원을 넘게 지불해야 한다.

테슬라의 주가수익비율(PER)은 무려 175.7배(이하 2021년 이익 추정치 기준)에 달한다. PER이란 주가 수준을 판단하는 지표로, 어떤 기업 주가가 1주당 벌어들이는 수익의 몇 배가 되는지를 비율로 계산한 것이다. 전 세계 주요 자동차 업체인 GM(8.4배), 포드(10.0배), 도요타(10.4배), 현대차(7.4배)와 비교하면 테슬라 주가가 얼마나 높은 수준인지 실감할 수 있다. 테슬라를 단순히 자동차 제조 업체로만 바라본다면 도저히 현재의 높은 주가를 설명할 길이 없다. 아니 진작에 없었다.

자본시장에서 테슬라 기업 가치를 이토록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바로 데이터 가치에 있다. 데이터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데이터 시장의 역사를 들여다봐야 한다.


PC·스마트폰·사물 인터넷·클라우딩 거친 데이터 시장

데이터 시장은 IT(정보기술) 핵심 기술이 융합 발전하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연간 데이터 발생량은 지난 10년간 50배 늘었다. 데이터 시장은 2000년 밀레니엄 시대 도래와 함께 태동했다. 최초의 데이터 생성 디바이스(기기)인 데스크톱 PC와 인터넷 서비스 사용자가 급증하면서 데이터 시장은 1차 성장기를 맞이했다. 당시 통신네트워크·프로세서·인터넷 비즈니스 모델 선구자였던 시스코·인텔·구글의 주가가 폭등했다.

데이터 시장은 2008년을 기점으로 스마트 디바이스 수가 전 세계 인구수를 넘어서면서 한 단계 진화했다. PC 간 연결을 넘어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스마트 TV·스피커 등 인터넷에 연결된 다양한 스마트 디바이스가 등장하고 여기서 활용 가능한 애플리케이션(앱)이 접목되면서 데이터 시장은 2차 성장기를 맞았다. 이때부터 ‘사물 인터넷(IoT)’이란 단어가 등장한다. 사물 인터넷 시대란 스마트 디바이스 서로가 데이터를 생성(센서)하고 처리해(프로세서) 전달(네트워크)하고 공유(인터넷서비스)하는 기술 전반을 의미한다.

2020년 기준 전 세계 인구수 대비 스마트 디바이스 비율은 6.6배에 달했다. 이렇게 많은 스마트 디바이스는 이미지·영상·음성·텍스트 등 일정한 규칙과 형태가 없는 ‘비정형 데이터’를 기하급수적으로 생성해 내고 있다. 이러한 복잡 방대한 비정형 빅데이터를 한데 모아 분석하고 활용하는 기술이 클라우딩 컴퓨팅이다. 2차 성장기에는 클라우딩 컴퓨팅 기술을 활용한 비즈니스 모델 시장이 확산했다. 대표적인 비즈니스 모델 기업이 넷플릭스·아마존·구글(유튜브)이다. 이들은 내 취향의 영화를 추천하고 내가 자주 찾는 상품을 보여주고 내가 좋아하는 영상을 알아서 띄워준다. 현재 미국 증시 시가 총액 상위 ‘톱 10’에는 데이터 2차 성장기를 주도한 이들 기업이 포진해 있다.

이쯤 되면 테슬라 주가를 얘기하면서 데이터 시장 역사를 장황하게 읊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데이터 시장은 이제 3차 성장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주인공으로 테슬라가 부상하고 있다. 데이터 시장 3차 성장기의 핵심 동력원은 에지(edge) 디바이스와 인공지능(AI) 기술이다.

PC와 스마트폰으로 대변되는 2차 성장기 스마트 디바이스가 사람을 ‘지원’하는 것이었다면 스마트카와 스마트홈 등 에지 디바이스는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다. 사람이 개입해야만 했던 많은 영역을 이제 에지 디바이스를 통해 대체할 수 있게 된다. 에지 디바이스가 개별 사용자의 개입 없이 생성해내는 데이터를 스스로 학습하고 설계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바로 ‘자율행동 인공지능’이다. 데이터 시장 1·2차 성장기를 이끌었던 구글·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애플·페이스북 등 ‘빅테크(대형 IT 기업)’는 20년간 발생한 주요 데이터를 독식한 것을 바탕으로 모두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테슬라, 데이터 분야 양적·기술적 우위 점해

테슬라는 이 모든 방면에서 업계를 통틀어 양적·기술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테슬라는 단지 약 200만 대의 누적 판매 차량으로 50억마일에 해당하는 주행 데이터를 확보했다. 자율주행의 선두 주자로 알려진 구글 웨이모(Waymo)가 확보한 주행 데이터가 테슬라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2000만마일 수준이다. 테슬라가 확보한 데이터양이 압도적 우위에 있는 것이다.

여기에 테슬라는 AI 알고리즘을 고도화해 데이터를 훈련하고 있다. 초대용량 데이터를 초고속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저궤도 위성 통신망을 스페이스X(SpaceX)에서 구축하고 있다. 테슬라가 꿈꾸는 세상은 단순히 미래에 전기차를 가장 많이 파는 자동차 업계의 제왕이 아니다.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가 테슬라가 주도하는 로보택시 사업 모델의 경제적 가치가 구글보다 크다고 언급한 대목이 모든 걸 말해준다.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미래 사회에서 데이터가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무형의 데이터가 창출해낼 엄청난 미래 효용을 현재의 회계 기준이 제대로 측정하고 있지 못한다는 점이다. 회계 기준상 자산은 미래 경제 효용을 창출할 경제적 자원으로 정의된다. 이 정의에 따르면,데이터는 미래 경제적 효용을 창출할 확실한 무형자산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계상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데이터를 쌓기 위해 기업이 지출한 돈은 대부분 비용적 지출로 처리되고 있다. 회계 기준에서 인식하는 무형자산은 기껏해야 영업권·개발권·특허권 등이 전부다. 보수주의를 표방하고 모든 기업에 적용 가능한 회계 기준 원칙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데이터 가치가 무형자산으로 인식되긴 요원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소 계상된 기업의 자산과 순이익을 분모로 계산한 PER과 주당순자산비율(PBR) 지표는 당연히 높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유형자산이 지배했던 시대의 오래된 밸류에이션(가치 평가) 지표로 과연 주가의 높고 낮음을 논할 수 있을까. 효율적 시장 가설을 준용한다면 자본 시장은 기업 가치 평가를 회계 기준보다 더 합리적으로 반영해 나갈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아직도 테슬라의 PER이 너무 높다고 누가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겠는가. 주식 투자자라면 혹시 무형의 데이터 가치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지금이라도 문제를 인식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