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가와 저금리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명목 가치, ‘뉴 노미널’ 시대가 도래하는 것일 수 있다. 사진 셔터스톡
저물가와 저금리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명목 가치, ‘뉴 노미널’ 시대가 도래하는 것일 수 있다. 사진 셔터스톡
이경수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현 한국은행 외환자산운용위원회 외부위원, 투자전략 부문 최다베스트 애널리스트 수상
이경수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
현 한국은행 외환자산운용위원회 외부위원, 투자전략 부문 최다베스트 애널리스트 수상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다가올 경제 환경을 두고 전 세계는 우울증에 빠졌다. 경제 활동 인구는 줄고 고령화는 이어지는데, 어디에도 금융위기를 극복할 만한 성장 동력은 보이지 않았다. 당시 세계 최대 채권운용사 핌코(PIMCO)의 최고경영자(CEO) 모하마드 엘 에리언은 그의 저서 ‘새로운 부의 탄생’에서 이를 “뉴 노멀(New Normal) 시대”의 도래라고 했다. 이는 성장이 정체된 가운데 물가와 금리가 낮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세계 경제의 전반적인 활력이 약화한 상태를 뜻한다. 당시 서점은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을 우려하는 책으로 가득 찼다.

실제로 전 세계 경제는 금융위기 이후 10여 년간 저성장, 저금리, 저물가라는 새로운 ‘나쁜’ 균형의 늪에 빠졌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때 세계 주식시장은 역사상 유례없는 활황을 보였다. 2009년 이후 전 세계 증시(MSCI AC World 지수 기준)는 무려 네 배나 폭등했다. 미래 경제에 관한 암울한 전망이 오히려 강력한 글로벌 정책 공조를 끌어낸 덕이다. 주요국 중앙은행은 2%대 물가 상승률 복귀를 목표로 디플레이션을 피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 결과 2008년 말 대비 중앙은행들의 자산은 무려 4.3배나 늘었다. 그만큼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했다는 의미다. 자산시장 관점에서 뉴 노멀은 ‘좋은’ 균형으로 받아들여졌고 우리는 거기에 익숙해졌다.

상황은 다시 급변하고 있다. 코로나19가 많은 것을 바꿨다. 금융위기와 달리 전례없는 대응에 힘입은 빠른 수요 회복은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유발했고 중앙은행들의 정책 반응 함수를 바꿔 놓았다. 이들은 금융위기 직후보다 더욱 빠른 정책의 정상화를 준비 중이다. 미국과 중국은 무역을 넘어 공급망으로 분쟁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19는 고령층 은퇴 속도를 빠르게 했다. 누적된 불균형은 많은 이가 노동을 공급하길 주저하고 재산 소득 형성에 주력하도록 했다. 그러자 이제 임금 상승을 통해 소외된 노동에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있다. 저물가와 저금리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명목 가치, ‘뉴 노미널(New Nominal)’ 시대가 도래하는 것일 수 있다는 말이다.


뉴 노미널 시대를 내다보는 이유

이렇게 될 가능성은 크다. 구조적으로는 공급망 주도권 다툼이 제조업 기업의 공장 복선화 전략으로 이어지면서 이제 한 곳이 아닌 여러 곳에 투자를 감행해야 하는 환경으로 바뀌었다. 비교 우위에 기반한 효율적인 생산 시스템을 추구하는 전통적 무역 이론이 깨지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 전후로 늘어난 자연재해는 글로벌 리더십이 친환경 정책에 주력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낳았다. 친환경 정책은 바람직하지만 이 와중에 국가 간 원자재 갈등과 다소 공격적으로 보이는 탈탄소 어젠다는 비용 상승을 유발한다.

2000년대 이후 데이터와 초연결 혁신을 주도해 왔던 빅테크와 플랫폼을 상대로 한 각국 정부의 규제 움직임도 고려해야 한다. 미국 공정거래위원회 수장으로 플랫폼 기업의 독점을 장기간 반대해 오던 리나 칸의 지명으로 빅테크 성장 흐름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도 있다. 또, 물가 상승률은 코로나19 직전에 비해 높은 수준에서 형성될 것으로 예상한다. 주요국의 시중금리도 이에 상응한 수준을 맞출 것이다.

그러나 이런 흐름이 혁신의 중단이나 극단적인 항구적 물가 상승 혹은 스태그플레이션(경기 회복이 정체된 가운데 물가만 오르는 현상)으로 귀결될 가능성은 작다. 제아무리 중앙정부, 중앙은행이라도 큰 흐름에서 ‘데이터가 주도하는 경제’라는 대세를 되돌리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에서의 반독점 움직임은 거대 플랫폼의 수직적 인수합병(M&A)을 더욱 까다롭게 하자는 것에서 출발한다. 여기에서 업종의 벽을 허물고 협력하는 것, 주요 스타트업에 지분을 투자하는 것은 해당 사항이 되지 않는다.

친환경 드라이브가 부작용을 유발할 정도라면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다. 에너지원 측면에서는 원자력이 중간 단계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또한 여러 가지 비용이 오르면서 1960~70년대와 같은 지속적인 물가 상승을 유발해 중앙은행이 대단위 긴축으로 모든 그림을 훼손할 가능성 역시 작다. 1960~70년대 인플레이션 시대 끝자락에 식료품과 에너지(1·2차 석유파동) 물가 급등이 자리한 건 사실이지만, 이는 당시 인플레이션의 절반만을 설명할 뿐이다. 1960년대 필립스 곡선(임금 상승률과 실업률 사이에 있는 역의 상관관계를 나타내는 곡선)은 우리가 교과서에서 본대로 가파른 형태를 띠었고, 원점에 대해서도 볼록했다. 즉, 이때는 일정 실업률을 하회한 후부터 노동 시장 과열이 가파른 임금 상승과 핵심 물가 급등으로 연결될 수 있는 특징이 있는 경제였다.

또한 당시에는 각국 정부가 지금처럼 생산성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없었다. 경기와 노동 시장 과열에도 중앙은행이 물가를 잡을 의지도 없었다. 당시 중앙은행은 20년 동안 실질 국내총생산(GDP)성장률을 크게 뛰어넘는 본원통화를 공급하며 정부와 부양 정책을 공조했다. 이때는 자산시장이 크게 발달하지 않아 이들 자금은 실물 부문으로 대부분 유입됐다. 그러면서 통화 팽창에 의한 화폐적 인플레이션이 나타났다. 이 정도 환경은 갖춰져야 지속적인 물가 상승, 혹은 스태그플레이션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뉴 노미널 시대가 주식시장에 미칠 영향

지금과 이때의 결정적인 차이는 필립스 곡선이 여전히 평탄하다는 점과 자산시장 발달로 팽창된 본원통화가 대부분 자산 가격 인플레이션을 유발했다는 것이다. 필립스 곡선을 2000년대 이후 눕게 만들었던 생산성 개선과 글로벌 아웃소싱에 따른 생산비 절감, 아마존 효과로 대변되는 유통비 절감 요인은 여전히 존재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통화 팽창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고공행진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들은 최근 쇼티지(공급 부족)발(發) 인플레이션이 가져온 교란에 기인한다고 판단한다.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룰수록 오버슈팅(상품·금융자산의 시장가격이 일시적으로 폭등·폭락했다가 장기 균형 수준으로 수렴해 가는 현상)했던 인플레이션 압력은 점차 해소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중(中)물가·중금리 시대가 올 가능성이 크고, 1970년대와 같은 고물가·고금리가 재현될 가능성은 현저히 작다. 뉴 노미널 시대를 초(超)인플레이션(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는 상황) 국면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투자자 관심은 앞으로 뉴 노미널이 과연 주식시장에 부정적일지 여부에 있다. 과거 경험은 나침반 역할을 한다. 1960년 이후 인플레이션 요인에 의해 S&P500 주가지수가 조정된 패턴을 보면 인플레이션보다는 디플레이션이 2년간에 걸친 대세 하락을 가리킬 정도로 주식시장에 치명적이었다. 반면 2~3.5% 정도의 인플레이션일 때는 기간 조정 이후 상승 흐름이 유지됐다. 뉴 노미널 시대는 높아진 비용을 감내할 수 있는 기업을 가려내는 구간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생존자가 되는 기업이 주도하게 될 주식시장의 미래는 밝을 가능성이 크다. 자산시장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경제 환경은 뉴 노미널이 아닌 디플레이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