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부터 불과 한 달이 안 되는 기간에  시가총액이 97% 넘게 증발한 ‘루나 쇼크’ 이후  다른 스테이블 코인마저 디페깅(Depegging·  달러화와 가치 유지 실패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래픽=손민균
지난 5월부터 불과 한 달이 안 되는 기간에 시가총액이 97% 넘게 증발한 ‘루나 쇼크’ 이후 다른 스테이블 코인마저 디페깅(Depegging· 달러화와 가치 유지 실패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래픽=손민균
5월 13일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 모습. 한국산 암호화폐 루나와 자매 스테이블 코인 테라USD(UST) 폭락으로 전 세계 암호화폐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5월 13일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 모습. 한국산 암호화폐 루나와 자매 스테이블 코인 테라USD(UST) 폭락으로 전 세계 암호화폐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5월 24일 기준 테라-루나와 비슷한 알고리즘으로 운용되는 스테이블 코인 데이(DEI)가 0.79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데이는 5월 21일 가치가 0.55달러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사진 코인마켓캡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5월 24일 기준 테라-루나와 비슷한 알고리즘으로 운용되는 스테이블 코인 데이(DEI)가 0.79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데이는 5월 21일 가치가 0.55달러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사진 코인마켓캡

지난 5월부터 불과 한 달이 안 되는 기간에 시가총액 97% 넘게 증발한 ‘루나(LUNA) 코인 쇼크’ 이후 암호화폐 시장이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안정성을 보장한다던 일명 ‘스테이블 코인’ 중 시가총액 기준으로 10위 안에 진입하기도 했던 루나 코인이 폭락하자, 투자자들은 다른 코인들 역시 비슷한 상황에 처하지 않을까 불안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코인 쇼크’를 막기 위해서는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루나는 스테이블 코인 테라(UST) 가격 안정화를 위해 만들어진 채굴 코인이다. 알고리즘을 이용해 UST 고정 가치가 1달러를 유지하도록 설계됐다. 루나와 테라는 애플 엔지니어 출신 권도형 최고경영자(CEO)가 설립한 블록체인 기업 ‘테라폼랩스’가 발행하는 암호화폐로, UST는 한때 시가총액이 180억달러(약 23조원)까지 늘어나며 스테이블 코인 중 규모 기준으로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테라가 1달러 이하로 떨어지는 디페깅(Depegging·달러화와 가치 유지 실패 현상)이 일어나자, 루나 역시 함께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5월 10일 오후, 루나는 한때 가치가 0.18달러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일주일 전(87달러 선)과 비교했을 때 그 가치가 99.8%나 줄어들었다.

루나의 끝없는 몰락은 설계 알고리즘에 허점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루나 시스템은 테라 가격 유지를 위해 설계됐다. 만약 테라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 가격이 오르면, 루나는 소각돼 가격을 안정시킨다. 반대로 테라 가격이 1달러보다 떨어지면 시스템은 테라를 소각하고 루나를 더 발행한다. 유통되는 테라양을 줄여 1달러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쉽게 설명하면 미국이 통화 가치 유지를 위해 달러를 찍어내거나 거둬들이는 것과 비슷하다.

문제는 테라와 루나 가격이 모두 떨어질 때 생겼다. 최근 글로벌 금리 인상으로 인해 비트코인 가격이 하락하면서 투자자들이 테라를 판매하자 루나 가격도 함께 내려갔다. 만일 테라 투자자들이 1달러를 보장받으려면 루나를 받아서 팔아야 하나, 루나 가격도 떨어지니 더 큰 손해가 발생하기 전에 앞다퉈 루나를 빨리 받아 팔려는 ‘뱅크런(대규모 인출)’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로 인해 테라 가격이 내려가니 루나 가격이 내려가고, 또 루나가 내려가자 테라도 내려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죽음의 나선(Death Spiral)’이라는 명칭을 붙여줬다. 마치 소용돌이가 빨려 들어가듯이, 가치가 하락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 회사 및 알고리즘 등이 이에 대처할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전인태 가톨릭대 수학과 교수는 “루나 사태로 하락한 테라의 가격을 올리기 위해선 7조 개의 루나 코인이 소각돼야 하는데 이는 불가능하다”며 “루나 알고리즘은 선물을 매도한 후 대량 매도 공격을 하면 시스템이 무너지는 구조다”고 분석했다.

루나 시스템이 언젠간 터질 ‘시한폭탄’과 같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올 것이 왔다는 이야기인데, 수요를 늘리기 위해 고금리로 상품을 제공한 것이 독이 됐다는 설명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테라는 가격 유지를 위해 탈중앙화(Defi·디파이) 플랫폼에 UST를 예치하면 약 연 20%의 이자를 주는 방식을 택했다”며 “이는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불안한 구조였는데 최근 금리가 오르면서 일이 터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루나를 스테이킹한 일부 투자자들은 눈 뜨고 이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스테이킹이란 보유한 암호화폐를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예치한 뒤, 이를 통해 보상으로 암호화폐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스테이킹을 한 경우 예치한 암호화폐를 판매하기 위해선 이를 풀기 위해 일정 기간이 필요하다. 루나는 3주가 걸린다. 디페깅을 시작한 이후 3일 만에 90% 넘게 증발했지만, 최악의 경우 빼고 싶어도 최소 18일에서 최대 21일을 기다려야 했던 셈이다.

루나 코인의 허점이 발견되자 업계에서는 다른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을 통해 똑같은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대개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은 루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운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다른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인 데이(DEI) 역시 5월 초 1달러대에서 5월 21일 0.55달러까지 그 가치가 내려갔다.

코인 전문가인 김동환 블리츠랩스 이사는 “트론의 USDD나 웨이브의 USDN이 테라와 비슷한 알고리즘을 갖고 있다”며 “현재 이 두 코인은 가치가 1달러 비슷하게 유지되고는 있으나, 언제든지 루나 사태와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블록체인 전문기업 블로코의 김종환 대표는 “루나와 비슷한 발상은 과거에도 많이 등장했었지만 모두 실패했다”며 “정말 그런 알고리즘이 실재한다면 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루나와 같은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 외에도 실물 자산을 담보하는 스테이블 코인들에도 비상이 걸렸다. 코인에 대한 신뢰도가 전체적으로 하락해 투자 심리가 악화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테더의 경우, 현재까지 약 12조6000억원 이상의 자금이 빠져나갔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실물 자산을 담보로 하는 스테이블 코인은 루나와 다르게 봐야 한다”며 “다만 일반 투자자의 시선에선 둘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는 “‘스테이블 코인’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니 안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투자자들이 많다”며 “따라서 ‘패닉셀(공포 매도)’하는 이들이 많아질 가능성도 크다”고 했다.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이전부터 제기돼왔다. 스테이블 코인이 19세기 미국에 중앙은행이 없을 당시 상업은행이 자체적으로 발행하던 ‘은행권’과 비슷하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6월 개리 고튼 예일대 교수와 제프리 장 조지타운대 교수가 공동 집필한 ‘살쾡이 같은 스테이블 코인 길들이기(Taming Wi-ldcat Stablecoins)’ 보고서는 이 같은 주장을 담고 있다. 고튼 교수는 금융경제학 전공이고, 장 교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자문 변호사이면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에서 일하는 등 금융 규제 업무에 정통한 인물이다.

이들은 보고서를 통해 19세기 상업은행들은 자체적인 지급준비금을 거론하며 자사 은행권의 안정성을 내세웠지만,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지급 불능 사태에 자주 직면했으며 나아가 연쇄적인 지급 불능에 따른 금융공황도 빈번했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스테이블 코인 역시 약간의 지급준비금을 가지고 행하는 사업으로 봤다.

국내 전문가들도 해당 의견에 동의했다. 그들은 루나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서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건설적인 규제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형중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특임교수는 “상품권을 발행하는 것처럼 스테이블 코인 발행에도 특정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스테이블 코인 발행자에게 일정 예치금을 확보하게 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특정 기준을 맞춘 이들에게 발행하게 한다면 ‘루나 사태’ 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은 예금자 보호가 있기 전까지 사기업이 화폐를 발행한다는 행위 자체가 끊임없이 뱅크런 사태를 유발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얻었다”며 “그렇기 때문에 규제 방향이 매우 명확하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현재 논의를 보면,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들은 예금자 보호가 이뤄지는 예금 수취 기관과 거의 동일하게 규제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며 “한국 역시 이와 비슷한 방향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정수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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