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선고 닷새 전인 1월 31일 삼성전자는 주식을 50 대 1로 액면 분할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진 : 조선일보 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선고 닷새 전인 1월 31일 삼성전자는 주식을 50 대 1로 액면 분할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진 : 조선일보 DB>

국내 증시 초(超)고가주인 삼성전자의 주식이 50 대 1로 액면 분할된다. 삼성전자가 액면 분할을 단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액면 분할이 이뤄지면 현재 250만원 수준(1월 31일 액면 분할 발표 시점 기준)인 삼성전자 주식 1주는 5만원짜리 주식 50주로 바뀌게 된다. 발행 주식 수도 약 1억4000만 주에서 70억 주까지 늘어난다.

삼성전자는 그간 ‘삼성전자의 주주가 되고 싶다’는 투자자들의 제안이 지속돼 주주 접근성을 대폭 높인다는 측면에서 이 같은 결정을 했다고 밝히고 있다. 삼성전자는 유가증권 시장에 상장된 기업 가운데 시가총액·이익 면에서 20~30%의 비율을 차지하는 회사다. 그런데 높은 주가로 외국인 지분율이 절반을 넘어, 일반 주주들의 접근성을 높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꾸준히 있었다.


액면 분할한 10개사 중 7개사꼴로 주가 상승

다만, 삼성전자의 액면 분할 발표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나기 직전에 이뤄진 것이어서 주주 가치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현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에 대한 일종의 ‘코드 맞추기’가 아니었느냐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액면 분할 요구가 있을 때마다 액면 분할이 주주 가치 제고와는 별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어 왔다. 삼성전자는 액면 분할과 함께 주주들에게 화끈한 ‘배당 보따리’도 풀었다. 지난해 5조8000억원을 배당에 쓴 삼성전자는 올해부터 3년간 매년 9조6000억원 수준으로 배당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배당에 인색하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순이익 중 배당금 비율을 뜻하는 배당성향 추이를 보면, 2010년부터 2013년까지 한 자릿수대 배당성향을 지속해 온 삼성전자는 2014년부터 3년간 13~17% 수준의 배당성향을 기록했다. 모두 전체 유가증권 시장 상장 기업 평균치를 밑도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매출 239조5800억원, 영업이익 53조6500억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호황에 따라 반도체 부문에서만 35조20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전체 3분의 2에 달하는 것이다. 스마트폰에서도 2014년 이후 최대 수준인 11조83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올해도 매출액 262조원, 영업이익 66조원(증권업계 추정치)가량을 각각 기록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다시 갈아치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초반 인기 좋다가 하락세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액면 분할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운영했고, 이 부회장이 옥중에서 액면 분할을 최종 승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의 실제 액면 분할은 오는 3월 23일 열리는 주주총회를 거쳐, 5월 16일 분할된 신주로 재상장된다.

액면 분할은 주식 1주당 액면가액을 N분의 1로 쪼개는 것이다. 액면가를 나눠도 자본금이나 기업 가치에는 변화가 없다. 하지만 삼성전자 같은 대형주의 액면 분할은 그동안 투자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개인 투자자가 유입되면서 보통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코노미조선’이 와이즈에프엔에 의뢰해 2010년 이후 액면 분할에 나선 코스피 상장 기업 91개사의 주가 상승률 추이를 보면, 실제 63개 상장사의 액면 분할 당일 주가가 액면 분할 발표 시점 대비 올랐다. 이 중 주가가 300만원을 넘어서며 ‘황제주’로 불렸던 아모레퍼시픽은 액면 분할 발표 이후 재상장까지 두 달간 30%가 넘게 올랐다.

다만, 액면 분할 효과에 따른 주가 상승은 재상장한 뒤 여섯 달이 지나면 희석된 것으로 나타났다. 재상장한 뒤 6개월간 주가가 올라가 있는 경우는 91개사 중 35개사로 절반으로 확 줄었다. 아모레퍼시픽 역시 주가 상승세를 타다가 재상장 이후 6개월이 지나고 나서는 상승률이 6%대로 떨어졌다. 현재는 수정주가(38만8500원)보다도 25%가량 떨어진 28만원대에 거래 중이다(2월 7일 기준).

변준호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삼성전자가 액면 분할을 결정했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액면 분할이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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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면 분할(Stock Split) 자본금 액수는 그대로 둔 채 기존 주식의 액면가를 일정 비율로 나눠 액면가를 낮추고, 총 주식 수를 늘려 유통 물량을 확대하는 것을 말한다. 기업들은 주식 한 주당 가격이 너무 높아 거래가 잘 이뤄지지 않거나 신주 발행이 어려울 때 액면 분할을 한다.

Plus Point

美 우량주 평균 주가 13만원
매년 170여 개사 주식 분할

미국에서는 한국처럼 액면가 개념이 없다. 액면가는 주식을 처음 발행할 때 정한 1주당 가격으로 ‘장부상 가격’이다. 주식시장에서 그 기업이 어떻게 평가받는가에 따라 주가는 액면가보다 더 올라갈 수도, 내려갈 수도 있다.

대신 미국에서는 주식을 쪼개는 주식 분할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1주를 2주로, 1주를 3주로 분할해 주가를 낮추는 방식이다. 매년 170여 개 미국 상장사가 주식 분할을 하고 있다(2013~2015년 기준). 미국에서는 주가가 100달러만 넘어도 비싸다고 인식한다. 실제 미국 우량주 30개사로 구성된 다우존스산업평균 구성 종목의 평균 주가는 올해 2월 7일 기준 우리돈으로 13만원 선이다. 이 중 제일 비싼 주식(보잉)이 38만원 수준이다.

코카콜라는 1919년 주식시장에서 첫 거래를 시작한 이후 2012년까지 총 11차례나 주식 분할을 했다. 애플도 2014년 주가가 700달러에 육박할 만큼 치솟자 주식 1주를 7주로 쪼개는 등 이제까지 네 차례 주식 분할을 했다.

1990년대 이미 세 차례 주식 분할을 거친 아마존은 주가 ‘1000달러 클럽’에 이름을 올리며 다시금 주식 분할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구글의 지주사인 알파벳 역시 주가가 1000달러를 막 돌파했는데, 주주들의 주식 분할 요구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