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해외 자금조달에 성공한 기업은 어딜까? 대부분 삼성전자 같은 글로벌 기업을 떠올리기 쉽지만 대답은 아니다. 국내기업 중 지난해 가장 활발하게 해외자금 조달을 한 기업은 현대캐피탈이다.
 “런던에서 마지막 승부를 던지자. 그래도 유로본드 발행에 실패하면 템스 강에 다 같이 빠져 죽자.”

 이주혁 현대캐피탈 재무지원실 상무는 유럽 지역 로드쇼를 위해 출발한 런던 행 비행기 속에서 동행한 직원들에게 이렇게 각오를 다졌다고 한다. 그리고 밤늦은 시각까지 일대일 미팅으로 전력을 다한 끝에 런던 투자가들을 움직이기 시작했고, 동시에 아시아에서도 현대캐피탈 채권에 대한 투자가들의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이 상무는 2005년 기존 차입금의 상환과 영업자금으로 해외에서 25억달러 이상을 조달한 일등공신이다.

 현대캐피탈의 한해 총 자금조달 규모는 13조원. 그 중 회사채 등 장기자금 수요는 6조원으로 40% 이상을 해외에서 조달한 셈이다.

 이 상무는 현대캐피탈에게 있어 해외 자금 조달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였다고 말한다. 은행은 수신 기능이 있어 고객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해 운영하지만, 여신전문금융회사인 현대캐피탈의 경우 자체적인 채권 발행 등으로 운영자금을 조달해야만 한다.

 제2금융권에 배타적인 국내 채권시장의 현실을 감안할 때, 현대캐피탈은 채권수요의 불안정성과 변동성에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는 곳 중 하나다. 따라서 해외시장의 개척은 자금조달 포트폴리오의 안정성 강화를 위해 현대캐피탈이 풀어야 할 과제였다고 할 수 있다.

 현대·기아차그룹의 금융계열사로 국내 대표적 소비자금융회사인 현대캐피탈은 지난해 세계적 기업인 GE 소비자금융과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자동차할부금융을 중심으로, 개인대출을 포함해 연간 취급고는 10조원을 상회한다. 이 중 자동차할부금융의 연간 취급고는 7조원 정도로 시장점유율이 70%에 이르고, 자동차리스도 연간 취급고 약 1조원에 시장점유율은 40% 수준이다.

 소비자금융 분야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은행에 비하면 일반인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현대·기아차를 구매하거나, 자동차리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현대캐피탈을 이용하고 있다.

 현대캐피탈이 올해 처음으로 일본시장에 도전해 채권 발행을 시도할 때만 해도 일부에서는 국내 채권시장 상황과 제2금융권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맞물려 조달 실패를 예견하기도 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금융권의 발목을 잡고 있던 소비자들의 신용위기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해외시장에는 한국의 현대캐피탈이라는 회사의 존재가 전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캐피탈은 2005년 3월 일본 신용평가사인 JCR로부터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 바로 아래 단계인 ‘A-’를 획득하고, 민간기업 최초로 440억엔 규모의 사무라이본드 발행에 성공했다.

 당초 발행 계획은 300억엔이었으나, 마지막에 1000억엔 이상의 투자자본이 몰리면서 당시 현대캐피탈은 최종적으로 440억엔으로 증액 발행했다.

 또한 2005년 8월 2차 사무라이본드 발행에도 성공한 현대캐피탈은 5개월 만에 신용 가산금리를 0.31% 축소시키면서 다시 한 번 일본 채권시장 관계자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S&P로부터 ‘BBB’ 획득

 현대캐피탈의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자금조달의 안정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일본시장뿐만 아니라 유럽시장으로의 진출이 반드시 필요했고, 우선적으로 세계적 신용평가기관의 신용등급 획득이 있어야만 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현대캐피탈은 세계적 신용평가기관 중 하나인 무디스(Moody’s)의 신용등급 획득을 위해 지난해 5월부터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하고, 그해 8월 제2금융권 최초로 투자적격등급인 ‘Baa3’를 획득했다. 이어 11월에는 스탠다드앤푸어스(S&P)로부터 대형 시중은행 수준인 ‘BBB’를 획득, 다시 한 번 국내·외 자금시장 관계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여기에는 현대캐피탈의 빠른 수익성 개선과 성장속도, 재무구조, 자산건전 성뿐만 아니라 현대차와 GE 양대 주주와의 견고한 협력 관계가 다각적으로 고려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지난 11월 말에는 제2금융권 최초로 4억달러 규모의 유로본드를 발행하고, 최근에는 52개월 만기로 국내기업 발행 해외 ABS로는 역대 최저 금리를 기록하며, 3억3000만유로 ABS 발행에 성공했다. 이 ABS는 후순위 담보비율 등 부대조건 면에서도 최고 수준을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주간을 맡았던 ING은행 홍콩·아시아 ABS 담당 케빈 램(Kevin Lam)은 “현대캐피탈의 유로 ABS 발행 성공이 한국의 ABS가 세계시장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는 데 많은 기여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해 이주혁 상무는 “2005년 현대캐피탈은 급변하는 시장 환경 속에서도 자금조달 포트폴리오의 안정성을 더욱 강화할 수 있는 근간을 마련했으며, 2006년에는 채권 발행자로서 현대캐피탈의 위상이 더욱 높아질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현대캐피탈은 두 번의 사무라이본드 및 ABS 발행, 한 번의 유로본드 발행, 두 번의 신디케이트론 등 총 25억달러에 달하는 발행 규모뿐만 아니라 방식도 다각화 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올해 평균 조달 금리를 현격히 낮추었다.  이에 따라 현대캐피탈의 성장잠재력에 대해 국내·외 투자가들의 관심 또한 높아진 게 사실이다. 조금만 가뭄이 들어도 목말라 죽을 수 있는 ‘연못 속 고래’가 국내의 협소한 시장 환경을 극복하고, 보다 넓은 ‘바다’로 나아갈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2005년 당기순이익이 4000억원 이상으로 사상 최대 흑자를 낼 것으로 예상되는 현대캐피탈은 2006년에 신규 사업 진출과 GE와의 제휴 관계를 더욱 강화함으로써 2005년보다 더 크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한정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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