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면 내년부터 보험사 영업지점에서 은행의 예·적금이 판매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어슈어뱅킹(Assurbanking) 도입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보험개발원은 지난 9월초 보험사의 예·적금 판매를 허용하는 내용의 ‘보험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재경부는 이를 토대로 보험업법 개정안을 마련, 정기국회에 상정할 방침이다. 국회에서 이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내년 4월부터는 보험사도 은행의 예·적금을 판매할 수 있게 된다.

금융 전문가들은 보험사의 예·적금 판매가 허용되더라도 설계사들은 판매하지 못하고 보험사의 영업점에서만 판매되기 때문에 방카슈랑스만큼의 파급효과를 내지는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보험사가 일부나마 은행의 고유업무를 취급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예·적금 판매 허용은 어슈어뱅킹의 전초 단계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특히 최근 자본시장통합법 제정이 추진되고 있는 점도 기대를 갖게 하고 있다. 자본시장통합법에 의해 대표기관을 통한 금융투자회사의 지급 결제 업무 겸영이 허용될 경우 보험사의 은행 핵심 업무 겸영 요구가 규제의 형평성 차원에서 제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보험사들은 방카슈랑스가 도입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어슈어뱅킹을 허용해줄 것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실제로 어슈어뱅킹은 방카슈랑스의 도입으로 위기감이 고조된 유럽의 보험사들이 이를 타개할 대응 개념으로 탄생시킨 것이다.

보험사가 은행 업무 수행하는 어슈어뱅킹

어슈어뱅킹이란 방카슈랑스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은행 상품을 판매하는 보험회사를 말하지만 넓은 의미로는 은행업을 직접 수행하거나 은행 자회사를 설립하는 등 보험사의 은행업 수행을 통칭한다.

따라서 어슈어뱅킹이 허용되면 보험사들은 수익증권 판매, 지급 결제 업무 등 광범위한 은행 업무를 은행 자회사 등을 통해 영위할 수 있게 된다. 어슈어뱅킹보다 제한적인 내로우뱅킹(Narrow Banking)도 있다. 내로우뱅킹은 보험사뿐만 아니라 증권사, 대형 유통업체 등이 지급 결제 기능 등 제한적인 은행업을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내로우뱅킹은 어슈어뱅킹과 달리 입출금, 자기앞수표 발행, 직불카드 발행 등 제한적인 지급 결제 기능만 영위할 수 있다.

보험사들은 방카슈랑스가 도입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어슈어뱅킹을 허용해줄 것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실제로 어슈어뱅킹은 방카슈랑스의 도입으로 위기감이 고조된 유럽의 보험사들이 이를 타개할 대응 개념으로 탄생시킨 것이다.

그러나 국내법상 보험사의 은행업 진출은 원천봉쇄 돼 있다. 우선 은행법상 산업 자본이 소유한 보험사는 의결권 있는 은행 지분의 4%를 초과해 주식을 보유할 수 없도록 제한돼 있다. 현재 생명보험사의 경우 교보생명과 럭키생명, 은행계열 생명보험사(신한, 하나KB, SH&C), 7개의 외국계 생명보험사들은 은행 지분의 4%를 초과해 보유할 수 있다. 손해보험사 중에서는 제일화재와 현대해상, LIG손해보험과 교보자동차보험, 교원나라 등 5개사와 서울보증과 코리안리도 4% 초과 보유가 가능하다. 그러나 나머지 8개 생명보험사와 8개 손해보험사는 비금융주력자로 은행 지분을 4% 이상 보유할 수 없다.

또 공정거래법에 의해 30대그룹 소속 보험사는 지분율에 상관없이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돼 있다. 따라서 어슈어뱅킹이 도입되기 위해서는 관련법을 개정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당국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은행-보험 ‘총성 없는 전쟁’

보험업계는 금융 겸업화가 세계적인 추세인 만큼 어슈어뱅킹을 하루빨리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은행은 예금, 대출 등 고유 업무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부수 업무와 겸영 업무를 영위할 수 있는데 비해 보험권은 지나친 규제로 금융권간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해 당사자인 은행권에서 이를 반대하고 있고, 정부당국도 이에 대해 회의적이어서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은 보험사에 대한 어슈어뱅크 허용 여부가 재정경제부의 소관 사항이라는 입장이고, 재경부도 보험사의 은행업 허용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보험사의 예·적금 판매가 허용된다 하더라도 어슈어뱅킹으로 발전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보험사의 예·적금 판매 허용과 관련 은행권은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저해한다며 반대하는 반면 보험사들은 새로운 수익원 창출이라는 측면에서 환영하고 있다.

은행권에서는 보험사에서 예·적금을 판매할 경우 비전문가의 불완전 판매로 시장질서가 교란될 우려가 있고, 이에 따른 최종 평판 리스크는 은행이 부담하게 돼 은행의 신뢰성을 떨어뜨려 금융시스템의 안정성 훼손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금융연구원의 이석호 박사는 "국내 보험사의 상당수가 대기업 집단 소속인 점을 고려할 때 이들 보험사가 계열사의 법인예금을 제휴 은행에 유치하는 조건 등으로 압력을 행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보험사도 대출 업무를 하고 있는 만큼 은행 예·적금 상품을 대출 상품과 연계해 판매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보험업계는 보험사의 새로운 수익원 창출이라는 측면에서 반기고 있다. 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IMF 이후 은행권은 수익증권 판매, 방카슈랑스 등으로 다각적인 수입원을 창출했다"며 "그러나 보험권은 시장이 한계에 달했음에도 불구하고 타업무 영역으로의 확대가 엄격히 규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험업계는 한 해에 수십조원에 달하는 금액이 만기보험금 등으로 지급되는데, 보험사 창구에서 예·적금 판매가 가능해질 경우 이중 상당 부분이 재유치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와 함께 보험업계는 고객에게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편리성이 제고되고 금융 상품 선택의 폭이 확대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방카슈랑스 시행에 따른 보험사의 은행 예속화를 일부분 견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밖에도 보험업계는 보험제도 개편안에서 중장기 과제로 밀린 보험사의 지급 결제 업무 허용도 단기적으로 검토돼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보험회사는 보험료 입금 및 보험금 지급, 대출 관련 입출금, 일반 경영 관리 등과 관련해 빈번하게 발생하는 소액 지급 결제 업무를 은행에 막대한 금액의 수수료를 지급하고 처리하고 있다. 특히 이 비용은 해마다 급증하는 추세다.

보험업계의 관계자는 "보험회사의 수익성을 높이고 보험 계약자 정보 보호 필요성 차원에서 지급 결제 업무를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이는 종합금융서비스 제공 차원에서도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 역시 쉽지 않은 부분이다. 보험료, 보험금, 대출 원리금 등을 이체하는 소액 지급 결제 업무(내로우뱅킹)를 하기 위해서는 금융결제원에 가입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보험사가 금결원에 가입하려면 금결원 정관상 12개 사원은행으로 구성된 총회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데, 내로우뱅킹에 반대하고 있는 은행의 입장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세계적 추세로 도입 불가피

유럽의 경우 보험사가 자본금 등 은행 설립 및 소유에 대한 일정 요건만 충족하면 자회사 등을 통해 제한 없이 어슈어뱅킹을 할 수 있다.

독일 최대 보험사인 알리안츠는 드레스너뱅크를 인수해 은행 업무를 영위하고 있다. 또 AXA와 AGF 등 대형 보험사를 중심으로 은행 자회사 등을 통한 예금, 대출, 수익증권 판매 등 어슈어뱅킹이 활성화했다.

영국은 보험사가 자회사나 지주회사를 통해 은행업에 진출하는데 법적 제한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다만 1982년 보험회사법에서 모회사에 의한 은행업 진출을 금지시키고 있는 EC의 ‘생명보험 1차 지침’을 준용해 보험사의 직접 겸영은 규제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99년 금융서비스현대화법(GLB법)이 제정된 이후 보험사들도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할 때 은행을 자회사로 소유할 수 있게 됐다. 1999년 이전에는 18개 보험사가 저축금융기관 매수나 설립을 통해 은행업에 우회 진출했으며, GLB법 제정 이후에는 푸르덴셜, 메트라이프 등이 인수 등의 방법으로 은행업에 진출했다.

일본은 1998년 금융시스템개혁법이 통과되면서 금융 업종간 자회사 방식을 통한 상호 진입이 전면 허용됐다. 이후 재팬넷뱅크, 소니뱅크, e-뱅크, IY뱅크 등 다수의 인터넷 은행이 설립됐다.

특히 유럽은 방카슈랑스로 보험사들이 위기를 맞게 됐고, 그 대안으로 어슈어뱅킹이 도입됐다. 따라서 방카슈랑스가 성공을 거두고 있는 우리나라도 어슈어뱅킹을 도입해 금융권역간 균형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상태다. 보험사의 예·적금 판매 허용 여부가 어슈어뱅킹으로 가는 티켓 역할을 할 것인지 금융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성희 머니투데이 금융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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