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완(60) 현대증권 사장은 증권사 최고령 CEO다. 하지만 그 어느 CEO보다 정력적이다. 체력 면에서는 이미 자타의 공인을 받고 있다. 그는 45km에 달하는 불수도북(불암산-수락산-도봉산-북한산) 산행을 완주하는 체력을 지녔다. 경영자로서도 전성기를 이어가고 있다. 2003년 부국증권 사장에서 현대증권 CEO로 자리를 옮긴 그는 왕성한 활동으로 현재 현대그룹 내 실세로 불린다. 지난 8월26일 여의도 현대증권 본사에서 그의 경영철학과 성공 가도의 비밀을 엿봤다.
 랜만에 만든 자리였다. 업무상 김지완 사장과는 보통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전화나 약속을 잡았지만 최근 두 달 동안은 통화조차 힘들었다. 이날도 인터뷰 약속시간은 오후 2시였지만 김 사장의 빡빡한 일정 탓에 오후 4시로 연기됐고, 임직원들의 결제가 끝나고 나서야 만남이 이뤄졌다.



 - 너무 오랜만입니다. 연락드려도 자리를 비울 때가 많던데 바쁘셨나 봅니다.

 “바빴어요. 지점 순방에 미국·일본 등 해외출장까지 정신없이 보냈어요. 주말에 좀 쉬려고 하면 임원들이 ‘이것 해야 한다, 저것 해야 한다’고 해서 짬도 못 내겠더라고요. 뭐 어찌나 시키는 것이 많은지… 하하.”



 - 요새 증시가 펄펄 납니다. 실적도 좋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월 들어 월별 실적이 200~300억 원 정도로 매우 좋을 것 같아요. 증시가 살아나고 거래대금도 늘어나니까 덩달아 증권사 실적도 좋아지는 거지요. 그래도 경쟁사(삼성·대우·우리증권)보다는 못 해요.”



 실적 올리기보단 고객이 우선

 - 증시가 좋아 영업에 고삐를 죄면 실적도 더 좋아질 텐데요.

 “안 될 말이지요. 요새 증시가 살아나니까 여기저기서 영업에 주력하는데 난 임원들한테도 절대 수익 위주로 영업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고 있어요. 직원들 너무 몰아세우지 말라고 말이죠. 그러다 사고 나는 거지요. 증권사 직원은 고객 돈을 운용해 주는 것보다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 컨설팅해 주는 역할이 더 중요해요. 본사에서는 직원들이 고객에게 상담해 줄 수 있도록 정보와 지식을 지원해 줘야지 실적 올리라고 몰아세우면 안 돼요. 알겠지만 금융업은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지. 무리한 영업으로 사고가 나고 분쟁이 터져 고객으로부터 신뢰를 잃으면 끝이죠.”



 김 사장은 증권업계에서 28년간 일해 온 산증인이다. 그만큼 CEO로서 업무나 사람을 관리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1977년 부국증권에 입사, 증권업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만 해도 가장 좋은 직장으로 꼽히던 섬유업체(한일합섬)를 다니던 그가 미련 없이 직장을 박차고 이직을 선택한 것은 ‘돈이 흐르는 곳’에서 일을 해야겠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오너(Owner) 증권사인 부국증권에 입사한 그는 업무능력을 인정받으면서 초고속 승진길에 올랐다. 입사 4년 만에 임원(이사)이 된 그는 이후 20여 년간 임원생활을 하다 1998년 부국증권 사장에 취임했다. 그러던 그가 2003년 봄, 26년간 다녔던 직장을 떠나 새 둥지인 현대증권 대표이사 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화제가 됐다. 당시 현대증권은 금융 3사(현대증권, 현대투신, 현대투신증권)가 공중분해된 후 현대가(家)에 유일하게 남은 증권사였지만, 부실책임과 공적자금 회수 차원에서 매각 논의가 벌어지는 등 어수선한 상태였다. 현대그룹이 자칫 난파 위기에 놓인 현대증권의 사장으로 젊은 CEO보다 김 사장을 선택한 것도 풍랑을 헤쳐 갈 오랜 경험을 가진 선장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또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정권과의 유연한 관계를 위한 현대가의 인사 포석이었다는 말도 나돌았다. 김 사장은 부산상고 출신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1년 선배다.

 배경이야 어떻든 그는 현대증권 CEO로 자리를 옮긴 후 독자생존의 틀을 만드는 데 주력했고, 그 해 말 많았던 매각설을 잠재웠다. 또 이듬해에는 업계 빅3로서 명성을 되찾는 등 백전노장의 노련함을 보여줬다.



 교육인프라 개발 시급

 - 증권 강좌를 개설하는 등 최근 증권교육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국내 증권 산업에 가장 필요한 것은 체계적인 교육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죠. 증권사들이 증시 좋다고 돈 버는 데만 집중하면 뭐합니까. 또 장이 안 좋아지면 궁색해지는 형편인데요. 고객도 제대로 된 투자 교육을 못 받아 그동안 얼마나 손해 봤습니까. 가장 중요한 기반 인프라인 체계적인 교육이 없으니 증권 산업도, 고객도 천수답을 벗어나지 못하는 거죠.”



 - 그럼 어떤 식으로 교육환경과 시스템이 조성돼야 한다고 보십니까. 

 “우선 이것부터 들어보세요. 새로운 선진금융 기법들이 속속 도입되고 있는데 돈은 누가 벌어갑니까. 모두 외국계사들이 벌어가죠. 대표적으로 워런트(Warrant)를 보세요. 국내사들은 만들지도 못하고 외국계가 만든 것 사다가 팔고 있잖아요. 근데 웃긴 건 뭔지 아세요? 홍콩에 갔더니 그 워런트를 만드는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이더라고요. 외국자본으로 공부하고 외국계에서 일하는 거지요. 지금이라도 증권업계 전체가 체계적인 교육환경과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근 증권사 CEO간담회에서 ‘증권대학’ 설립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어요. 여타 CEO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거죠.  증권 유관기관과 증권사가 공동으로 증권대학을 설립해서 투자자들에게는 투자교육을, 업계 종사자에게는 선진 금융기법을 가르치는 걸 구상하고 있죠.”



 - 증권대학이라면 학위를 수여하는 전문 교육기관을 말하는 겁니까.

 “아직 논의 단계여서 구체적으로 진행된 건 없어요. 또 형태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교육환경을 만들고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거죠.”



 ‘증권사는 한철 장사로 3년을 버틴다’는 말이 있다. 증시의 오르내림에 따라 실적이 크게 달라지는 증권사의 수익구조를 빗댄 말이다. 최근 증시가 고공비행을 하면서 증권사들은 온갖 마케팅과 홍보 활동에 바쁜 상태다. 증시 상승을 틈타 실적 쌓기에 여념이 없는 것. 증권업계가 한철 장사에 ‘올인’하고 있는 와중에 김 사장은 ‘교육 백년대계’를 주창하고 있다. IMF 이후 증권업계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던 임직원 해외연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곳도 현대증권이다.



 CEO는 임직원 신뢰가 중요

 김지완 사장은 최근 현대그룹의 실세로 불리고 있다. 김 사장이 두각을 나타낸 것은 지난 2003년 10월 현정은 회장 취임 이후 본격화된 KCC와의 경영권 분쟁에서였다. 당시 KCC의 공격적인 인수합병 전략에 대해 현대그룹이 증권거래법 등 제도적으로 맞대응할 수 있었던 것도 김 사장의 지원 사격 덕분이었다는 후문이다. 결국 KCC의 섭정 계획은 증권선물위원회의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처분 결정으로 무산됐고, 김 사장은 현대그룹의 새로운 측근으로 올라서게 됐다.

 이런 그에게 최근 발생한 현대그룹 경영진의 이상기류에 대해 물어봤다. 오랜 침묵 끝에 그는 “(경영진간 반목 등) 대부분의 이야기는 호사가들이 지어낸 이야기”라며, “누구나 떠날 때를 알아야 한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CEO의 자질에 대해 그는 “CEO에 대한 평가는 가장 먼저 임직원들이 어떻게 보느냐로 결정된다”며, “임직원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경영자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