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수자’에서 ‘매도자’ 입맛으로



 지난 3월16일 대우캐피탈이 ‘신한금융·아주그룹’ 컨소시엄을 매각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했다. 이번 대우캐피탈 매각은 IMF사태 이후 M&A패러다임을 새로 바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일은행, 대우종합기계, 진로 등 외환 위기 당시 부실화됐던 기업들이 구조 조정을 끝내고 속속 매물로 나와 국내 대규모 인수합병(M&A)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 국내 M&A시장은 35조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실물 경제 및 주식시장 활황에 대한 기대감, 미국을 중심으로 다시 불어닥친 세계적 M&A 열풍, 사모펀드(PEF)를 통한 국내 자본투자 활성화 등이 이러한 추세에 한 몫을 하고 있다.

 외환 위기 직후의 M&A는 부실 기업 정리와 산업구조 조정의 수단으로 인식돼 매각 주체보다는 매수 주체의 경제 논리에 의해 딜이 주도됐다. 당시 국내 투자에 앞장섰던 몇몇 외국 펀드의 막대한 거래 차익 실현은 매수 후 구조 조정의 성과도 있겠지만 매수 가격이 낮았던 데서 온 효과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진로의 매각 과정만 보더라도 그렇다. 골드만삭스의 진로 채권 인수는 국내 기업 헐값 매각의 전형적인 사례로 꼽힌다. 지난 97년 진로의 부도 이후 국내 은행들은 진로의 채권 1조4659억원을 불과 8%인 1261억원에 한국자산관리공사에 팔았고, 자산관리공사는 이를 다시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등에 2742억원에 팔았다.

 이에 따라 이들 외국계 투자 은행만 1조원 이상의 차익을 남기며 떼돈을 벌어들였다. 해외 M&A 사례에는 합병 시너지에 대한 프리미엄이 지나치게 높게 책정돼 인수 후 기업 가치 하락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더 많은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기존 M&A 방식 매수자가 우위

 그러나 국내 자본의 자금력이나 국내 금융기관의 M&A 중개 역할이 여전히 취약해 국내 M&A시장에서의 주도권은 해외 자본 및 금융기관이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해외 자본에 대항하기 위한 PEF 도입, 중개 기관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한 은행 및 증권사의 투자금융 업무 강화와 같은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단기간에 해외 투자 기관과 경쟁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국내 자본력 강화를 위한 제도적인 보완, 우수 인력 양성 등을 통한 M&A 수행 능력 제고 등은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이와 함께 향후 추진될 국내 기업의 효과적인 M&A를 위해 M&A 대상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전문 기관과의 업무 협조를 통해 기업이 보유한 가치를 다양한 관점으로 분석, 매수 주체의 경제 논리에만 의존하는 기존의 딜과는 달리 매도자의 분명한 의사에 따라 매도자와 매수자 양자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윈윈(Win-win)의 딜을 만들어 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일반적인 M&A 프로젝트에는 ‘자문 기관 집단’으로 지칭되는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게 된다. 주로 재정 자문을 담당하는 투자은행, 법률 자문을 위한 법률회사, 실사 및 회계 자문을 하는 회계법인과 M&A의 중개 역할을 담당하는 크고 작은 중개 기관들이다. 보통 산업전문가의 역할은 가치 평가에 참여하는 투자은행, 회계법인 등이 겸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관들이 개별 딜에 따라 그때그때 다른 업종이나 회사의 특성을 가치 평가에 충분히 반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투자 의사 결정에 앞서 적정 가격을 산정하기 위해선 대상 기업의 사업 특성 및 그 기업이 속한 시장의 경쟁 구도 등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우선돼야 한다. 특정 산업에 전문성을 지닌 자문 기관의 역할을 통해 M&A 딜의 진행 단계에 국한되지 않고, 인수 전략 수립과 인수 후 통합 과정에도 의미 있는 역할 수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M&A의 효율성이 기업 가치를 제고하는 데에 있다고 하면 M&A의 성패는 기업 가치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매수자를 찾는 것에 있다. 그래서 기업에 대한 피상적인 정보전달은 매수자가 기업에 대한 평가를 함에 있어 장애가 될 수 있다.

 M&A시장에는 필연적으로 매도자와 매수자간의 정보의 비대칭이 존재하게 된다. 그러나 정보의 비대칭이 주는 비효율을 생각할 때 이러한 차이를 줄여 나가는 노력이 중요하다. 해당 기업에 대한 정확하고 투명한 정보 전달을 통해 불필요한 심리전을 사전에 차단하고, 가격 중심의 협상을 유도해야 한다. 향후 기업 가치를 가장 향상시킬 수 있는 매수자를 선별해 나가도록 지원하는 전문 자문 기관의 역할은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 차이를 줄여 M&A의 효율성을 높이는 일환으로 평가될 수 있다.



 M&A 무관한 컨설팅사가 가치 평가

 지난 3월16일 우선 협상 대상자를 선정 발표함으로써 실현 단계에 들어선 대우캐피탈 매각이 좋은 사례다. 업계 전문가들은 대우캐피탈의 매각 사례가 그동안 이뤄졌던 방식과는 다른 M&A 패러다임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대우캐피탈은 지난해 11월부터 미국계 펀드인 론스타와 J&R 서비스, 신한금융그룹과 아주그룹컨소시엄, 연합캐피탈을 대상으로 예비 실사를 거쳐 ‘신한금융-아주그룹’컨소시엄을 매각 우선 협상자로 선정했다. 국내 금융기관이 국내 컨설팅사의 색다른 가치 평가를 통해 국내 기업에 매각된 점에서 향후 M&A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우캐피탈의 매각 과정에서 독특한 것은 투자은행과 회계법인 이외에 컨설팅사가 포함됐다는 점이다. 대우캐피탈 매각 주관사로서 안진회계법인과 컨소시엄으로 딜에 참여한 루터어소시에이츠코리아(약칭 루터)는 M&A와 관련이 없는 금융기관 카드 자산 평가를 전문으로 하는 컨설팅회사다. 안진딜로이트가 매각 주관사 선정 경쟁에 루터와의 컨소시엄으로 참여하게 된 것은 루터가 보유한 자동차 할부금융 및 여신전문업에 대한 전문 지식 때문이었다.

 국내 자동차 할부금융업은 모두 자동차 제조사나 판매사와의 특수 관계에 의해 사업을 영위하는 비상장사들이다. 따라서 금융기관이라고는 하지만 은행 포트폴리오와 자산의 질이 현저히 다른 특성을 보인다. 금융감독원이 정한 대손충당금 비율에 따라 비용을 인식하고, 해당 자산의 상환 일정과 연체 상황에 따라 충당금을 조정한다. 하지만 할부금융사는 가치 평가와 관련, 이러한 비용 인식 방법과 시점이 다른 금융기관과 달라 해당 비즈니스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 없이는 이에 대한 가설의 수립이 합리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

 또 다른 금융기관처럼 금융감독원이 정하는 기준에 따라 충당금을 보유한다 하더라도 경기 상황에 따라 때로는 충당금을 환입하거나, 반대로 충당금이 모자라 자본으로 추가적인 손실을 감당하기 때문에 실질적 손실 비용을 별도의 통계적 방법을 통해 추정하는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

 할부금융기관으로서의 적정 부채 비율, 자산유동화와 관련된 후순위채의 가치 평가 또한 여신전문금융업의 고유 영역으로 간주될 수 있는 부분이다. 루터는 할부금융사에 대한 컨설팅 경험을 통해 해당 업종의 경쟁 구도, 그리고 수익 창출의 핵심 요인과 위험 요소에 대해 정확히 파악했다. 또 까다로운 금융기관 여신 자산의 손실 위험 측정과 시가 평가가 어려운 대출  자산의 가치 평가를 통해 매각 과정에서 산업전문가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대우캐피탈은 자산관리공사를 중심으로 한 채권단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워크아웃 기업이다. 따라서 투자자가 인수 기업의 계속기업 가치를 인정하느냐 여부가 가격 이슈의 큰 축이었다. 여신금융업 특성에 대한 이해가 대우캐피탈의 가치 및 자동차 할부금융업에 대한 분석은 채권단과 투자자 사이의 정보 차이를 줄이는 데 효과적이었다. 여신금융업을 영위하는 기업의 가치는 여신금융업의 특성에 대한 이해, 수익대 위험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돼야 하기 때문이다.



 사전 컨설팅, 시너지효과 분석

 이번 대우캐피탈의 매각 과정중 ‘사전 컨설팅’이 이뤄졌다는 점도 특징이다. 여신금융업종으로는 최초의 매각이어서 업종에 대한 투자자의 이해가 부족해 사전에 가치 평가 작업을 수행했다. 대우캐피탈의 매각 입찰이 나오기 전 2003년 12월부터 6개월간 매각 가치 산정과 매각 전략 수립을 위한 사전 컨설팅을 수행했다.

 매각 과정에선 자산의 질을 다중 분석함으로써 대우캐피탈에 대한 가치 평가의 신뢰성도 높였다. 또 매수 기관별 인수 후 시너지효과를 컨설팅함으로써 매수자의 적극적인 참여도 유도했다. 매각 과정에서 빠지려고 했던 아주그룹이 이러한 시너지효과에 대한 분석을 통해 M&A에 적극 참여,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것은 이러한 분석이 실질적으로 진행됐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루터는 여신금융업을 영위하는 기관이 전문 자문 기관에 의한 가치 평가를 통해 300억~400억원 이상 가격을 높여 적어도 ‘헐값 매각’ 논란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루터의 엄태현 사장은 “여신금융업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금융기관의 가치를 과대 또는 과소 계상하는 우를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외환 위기 이후 주식시장 폭락과 함께 몇차례 위기를 헤쳐나온 한국 기업시장은 이제 부실 기업이나 부실 채권 거래에서 나아가 정상적인 기업간의 적극적인 시너지효과 창출을 위한 M&A를 준비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매수 주체의 경제 논리에만 의존하는 기존의 딜이 아닌 매도자의 분명한 의사를 기초로 매도자와 매수자 양자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윈윈(Win-Win)의 딜이 이뤄질 때다. 이제는 시장 환경, 적정 가격 산출을 위한 가치 평가, 합병 후 기대 효과 등을 분석하는 데 많은 자원을 할애하는 신중한 M&A 전략이 필요하다.

장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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