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주춤했던 국내 금융기관들의 해외 진출이 본격화되고 있다. 포화 상태인 내수 시장, 외국계 금융기관의 잇따른 진출 등으로 영업 및 자산 운용의 활로를 찾기 힘들어지면서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주요 타깃은 이머징마켓(Emerging Market:신흥 시장). 금융시장 개방 이후 체력을 키운 국내 금융기관들은 이머징마켓 공략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국내 금융기관들의 해외 진출 현주소와 활약상을 알아본다.

 내 금융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로 성장세가 급격히 둔화되고 있다. 실제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9월말 현재 금융시장(대출·주식·채권·자금시장) 규모는 약 1883조원으로 2003년말에 비해 4.08%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는 2000년말부터 2003년말까지의 연평균 성장률 11.1%에 크게 못미치는 수치다. 주식시장도 주가 급락으로 1%대 성장에 그쳤으며, 대출시장 규모도 733조원으로 거의 포화 상태에 도달해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기관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선진 금융기법으로 무장한 외국계의 잇따른 진출로 국내 금융기관들의 위기 의식은 한층 높아지고 있다. 외국계 금융기관은 이미 은행·증권·보험 등 주요 금융업종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만큼 성장한 상태다. 은행의 경우 외환·한미·제일은행 등이 외국계로 넘어갔고, HSBC 등 국내 외국계 현지법인들도 법인 영업은 물론 소매 영업까지 전방위 공세를 펼치고 있다.

 보험 및 증권, 자산운용업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특히 자산운용업의 경우 외국계 자산운용사들의 시장점유율 상승이 눈에 띈다. 외국계 자산운용사들의 점유율은 2001년말 17.3% 정도였으나 지난 4월말 현재 36% 정도를 나타내 이미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것이다. 보험도 방카슈랑스 시행과 함께 외국계 보험사들이 약진하고 있는 상태다. ING·푸르덴셜·AIG 등 11개 외국계 생명보험사의 시장점유율은 2000년 5.8%에서 지난해말 19% 정도로 매년 100% 신장하고 있다.



 “우물 안 개구리는 죽을 수밖에 없다”

 한계에 다다른 내수 시장 속에서도 외국계 금융기관의 시장 잠식이 계속되면서 국내 금융기관들은 생존에 대한 위기 의식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더 이상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인식이다. 최근 국내 금융기관들이 해외 진출에 재도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은행들은 외환위기 이후 절반으로 줄었던 점포를 조금씩 확대해 가는 것은 물론 직간접 투자도 늘리고 있다. 보험·증권사들도 단순히 거점 마련이 아닌 토착화를 위해 해외 점포 및 현지법인을 개설하는 등 해외 시장 공략에 본격 나서고 있는 상태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금융시장은 빠르게 성장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성숙 단계에 이른 상태입니다. 금융기관들로서는 더 이상 국내 시장만 바라보는 것이 한계에 다다른 거죠. 이제는 우리도 체력을 다졌고 금융시스템도 선진 반열에 오른 만큼 해외로 눈을 돌릴 때가 왔습니다.”(미래에셋 김병윤 상무)

 최근 진행되고 있는 국내 금융기관들의 해외 진출은 주로 이머징마켓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과거 미국·유럽 등 선진국 일변도였던 해외 점포 개설과는 크게 다른 양상이다. 이머징마켓에 주력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선진국 진출보다 모든 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국내보다 한 수 위인 선진 금융기관과 그들의 텃밭에서 경쟁하는 것보다 금융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개발도상국 진출이 더 쉽고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조흥은행 국제영업부 김정실 부부장은 “과거 선진국에 진출한 점포들은 영세한 데다 특별히 노하우가 없어 해외 금융기관과 경쟁한다는 것 자체가 힘들었습니다. 대부분 현지 교포나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자금 업무만 담당하는 형태였죠. 하지만 최근 개발되고 있는 동남아시아나 중남미는 국내보다는 열악한 점이 많아 보다 경쟁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많은 외국 자본은 잇따라 국내 금융시장에 진출, 막대한 이익을 거둬들였다. 실제로 외국 자본은 지난 98년 이후 굿모닝증권, 제일은행, 한미은행, 브릿지증권 등 금융기관 인수·합병(M&A)을 통해서만 2조5천억원 이상의 이익을 챙겼다. 한편으론 토착화 영업을 펼치면서 국내 금융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동안 축전된 노하우를 활용해 국내 금융기관들도 한 수 아래인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이처럼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이 금융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자본 논리로만 따지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동북아금융 허브를 위해서라도 이제는 금융수입국 마인드를 버리고 수출국 마인드로 재무장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다.



 보험사 중국.동남아에 올인



 삼성화재는 지난 3월22일 ‘금융업 인가는 하늘의 별따기’라는 중국에서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 최초로 보험업 라이선스를 따냈다. 중국이란 거대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삼성화재는 지난 4월25일 상하이지점의 법인 등기를 마치고 상품 개발 등 본격적인 영업을 준비하고 있다. 삼성화재의 이번 중국 현지법인 설립은 인도네시아(1996년), 베트남(2002년)에 이어 세번째다.

 삼성화재 해외영업부 오무석 차장은 “중국내 지점을 내는 것도 힘들지만 지역별로 지점을 확대하는 것은 더욱 힘들다”며 “법인을 설립하면 전국 어디에나 지점 설치가 가능하기 때문에 중국 전역을 대상으로 한 영업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단 중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과 외국 기업을 대상으로 보험 영업에 나설 계획”이라며 “특히 아직까지 중국 현지에 해외 보험사들이 없는 상태인 만큼 외국 기업에 대한 보험 영업이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중국내 보험 영업을 위해 삼성화재는 우선 지점부터 확대할 방침이다. 올해 안에 중국 북경·소주·청도 등 세 곳에 지점을 설치할 계획이며, 내년에는 광주·심천 등 부자들이 모여 사는 부촌으로 점포를 확대할 예정이다.

 중국 기업 및 개인을 대상으로 한 현지화 영업은 단계별로 실효성을 따져가며 조심스럽게 접근한다는 전략이다. 중국이 13억 인구와 고속 성장으로 기회의 땅인 것은 분명하지만 보험 영업을 위한 기반 인프라를 구축하는 게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중국의 보험시장은 잠재력이 뛰어나지만 기반 인프라가 없어 이를 구축하는 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보험만 해도 고객이 사고가 발생하면 어디든 달려가 서비스를 해줘야 하지만 워낙 땅이 넓어 서비스 네트워크를 마련하는 게 쉽지 않은 문제죠. 따라서 초기에는 한국이나 외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캐시카우(Cash Cow;수익성)를 확보한 다음 시장 상황을 봐가며 현지화 영업을 시작하는 것이 효율적입니다.”(오무석 차장)

 삼성화재는 신흥 시장으로 주목받고 있는 중국·베트남·인도네시아 3개국의 현지법인을 통해 동남아 시장의 주요 보험사로 거듭난다는 구상이다. 또 최근에는 동남아 시장에 이어 중남미 및 브릭스(BRICs) 시장 진출 계획도 추진중이다. 이를 위해 브라질·인도 등지의 현지 보험사에 직원을 파견한 상태며 이들을 통해 사업성, 시장성 등을 검토하고 있다.

 오차장은 “중국과 함께 4대 신흥 시장으로 불리는 브라질·러시아·인도 등에도 진출하기 위해 직원들을 현지 보험사에 파견, 타당성을 검토하고 있다”며 “이머징마켓 진출은 새로운 돌파구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화재에 이어 삼성생명도 6월쯤 중국항공그룹과 현지 합작 보험사를 설립, 하반기부터는 본격적인 영업이 가능할 전망이다. 삼성생명은 5월19, 20일쯤 중국 당국으로부터 보험업 라이선스를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 본격적인 영업은 하반기부터 가능할 전망이다. 

 이번 중국 현지법인은 삼성화재와는 달리 중국 유수 기업과의 합작사인 만큼 국내 및 외국 기업은 물론, 중국 기업과 개인 등을 대상으로 하는 현지화 영업도 병행한다는 것이 삼성생명의 영업 전략이다. 또 지점 설치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유사 시장을 놓고 삼성화재·생명 등 계열사간 경쟁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보험시장 특성상 양사 모두 일부 상품을 제외하곤 모든 상품을 취급할 수 있지만 라이선스에 따라 취급 상품의 만기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오차장은 “중국에서는 생·손보간 상품 취급 차이가 없고 일부 상품을 제외하곤 모든 상품을 취급할 수 있지만 삼성화재의 경우 라이선스에 따라 3년 이하 상품을 취급하도록 돼 있다”며 “상품의 만기 차이에 따라 삼성생명과는 경쟁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03년 8월 중국 베이징에 주재사무소를 연 대한생명도 올 하반기에는 합작사 설립을 본격화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한생명 김형식 과장은 “중국에서 지점을 개설하려면 주재사무소를 내고 2년 이상 있어야만 가능하다”며 “올 하반기면 2년이 지나기 때문에 지점 설치는 물론 합작 보험사 설립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한생명은 이미 주재사무소를 통해 합작 보험사 설립을 위한 중국 기업 등 파트너 물색에 나선 상태다. 이밖에 LG화재·교보생명·현대해상 등도 중국·인도 등 동남아 시장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Plus tip



 보험사 국내 영업 갈수록 악화



 
보험사들이 해외 진출에 적극 나서는 것은 국내 보험시장이 이미 포화 상태에 놓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험개발원 조사에 따르면 현재 국내 가구당 보험가입률은 94.4%에 달한다. 10가구당 9가구 이상은 보험에 가입돼 있다는 얘기다. 사실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험에 가입한 셈이다.

 시장 포화 상태로 보험사 영업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새로운 생명보험계약 건수는 2002년 2746만8000건, 2003년 2173만2000건에 이어 2004년 4월부터 지난 2월까지 1913만9000건으로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반면에 보험을 해약하거나 자동 해지되는 효력 상실은 2002년 943만7000건, 2003년 1040만 5000건으로 늘었고 2004년 4월부터 지난 2월까지 807만9000건에 달해 증가세가 주춤하는 정도다.

 외국사 진출, 겸업화 등 금융 환경 변화도 보험사의 해외 진출을 부채질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방카슈랑스. 은행·증권사가 방카슈랑스를 통해 시장을 잠식하면서 보험사의 판매 업무가 위축되고 있다. 또 우체국, 농·수협 등의 보험업 진출도 보험사를 위협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우체국 보험 가입률은 13.4%, 농·수협 공제 가입률은 10.2%로 생보시장의 23.5%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보험업계의 한 기획 담당 임원은 “국내 영업만으로는 이제 성장성을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이머징마켓 진출은 위기에 처한 국내 보험사들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 수익성 확보 및 글로벌화 노려



 융대전으로 고군분투중인 국내 은행들도 해외 진출에 눈을 돌리고 있다. 내수 시장 수성도 중요하지만 수익성 확보 및 글로벌화를 위해선 해외 시장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브릭스 및 아시아, 동유럽 시장은 정책적으로 수많은 개발 사업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고 이에 따라 금융 수요도 폭발적으로 증가해 경쟁 우위 확보를 위해선 초기 시장 선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분석이다.

 신한은행은 국내에선 처음으로 카자흐스탄에 합작 은행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3월 신한은행 종합금융부 임직원들이 카자흐스탄을 직접 방문, 금융 환경 조사 및 현지 은행과의 미팅 등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석유·우라늄 등 자원이 풍부한 카자흐스탄은 최근 정부 시책으로 개발 사업이 본격화하면서 금융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신한은행은 이같은 상황을 고려, IB(투자은행) 전문 은행 설립을 구상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은행의 고위 관계자는 “개발도상국인 카자흐스탄은 최근 범정부 차원에서 개발 사업이 곳곳에서 진행되면서 은행들이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며 “금융 환경도 바젤2가 도입될 정도로 우수해 시장 진출에는 적기”라고 말했다. 또 그는 “특히 카자흐스탄은 경제특보가 한국인(방찬영 박사)이었을 만큼 한국에 대한 인식이 좋아 사업하는 데도 다른 지역보다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최근 대한투자증권을 인수한 하나은행은 테마섹의 자회사인 DBS은행(싱가포르개발은행)과 공동으로 중국 또는 싱가포르 등지에 IB 전문 증권사 설립을 모색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IB 전문 증권사 설립은 하나은행의 동아시아 거점 확보 전략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것으로 중국·인도·베트남 등지의 M&A, 부실 채권 정리 등 투자은행 업무를 주로 맡을 예정이다. 하지만 대한투자증권 인수 조건을 놓고 하나은행과 테마섹이 이견을 나타내 IB 전문 증권사 설립 계획은 올 하반기에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하나은행은 현재 중국내 1개의 현지법인과 뉴욕·싱가포르 등지에 지점 6개를 갖고 있다. 

 이에 하나은행 관계자는 “테마섹과의 공동 출자는 계속될 것”이라며 “국내가 아닌 해외 합작사 설립도 검토중이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국책은행 중에서는 산업은행이 해외 진출에 적극적이다. 아일랜드 등 3곳의 현지법인과 도쿄 등 5곳에 지점을 두고 있는 산업은행은 6월초 중국 광주지점을 오픈할 예정이다. 산업은행이 중국내 지점을 설치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 중국 감독 당국으로부터 인·허가를 기다리고 있는 산업은행은 5월말쯤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다.

 산업은행 국제업무부 김유훈 부장은 “최근 국내 기업들의 중국 진출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중국내 지점 설치가 필수 요소가 됐다”며 “국내 기업의 유동성에서 수출입 문제까지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업은행은 또 브라질 상파울루에 현지법인 설립도 추진중이다. 주재원을 보내 현지 조사를 진행중인 산업은행은 올 하반기 설립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번 브라질 진출은 한·칠레 FTA(자유무역협정) 체결과 함께 한국이 IDB에도 가입함에 따라 국내 기업들의 중남미 진출이 대폭 늘어나고 있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 현재 브라질 등 중남미에는 삼성·LG전자·효성 등 50여개 기업이 진출해 있다. 이밖에 산업은행은 자회사인 대우증권의 헝가리은행을 토대로 슬로바키아·폴란드 등 동유럽과 인도네시아 거점 확보도 검토중이다.

 김부장은 “옛날에는 잘 사는 런던 등을 생각했지만 우리보다 신용도가 높아 대출도 잘 이뤄지지 않는 등 실효성이 낮았다”며 “따라서 브릭스 등 신규 니치마켓으로 나가는 게 보편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흥은행도 국제상사 등 국내 기업 지원을 위해 6월쯤 인도 뉴델리에 지점을 설치할 계획이다. 또 LA에도 홀세일을 담당할 지점을 오픈할 예정이며 칠레 현지법인 설립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조흥은행은 이미 베트남 대외무역은행과의 현지 합작법인인 조흥비나은행을 통해 현지화 영업을 진행중이며, 지분 출자(50%) 3년만인 지난해 290만달러의 흑자를 낸 바 있다.

 조흥은행 국제영업부 김정실 부부장은 “해외 네트워크 구축보다는 실질적인 손익 부문을 따지는 게 중요하다”며 “돈 벌기 힘든 선진국보다는 상대적으로 비교 우위가 있는 동아시아나 동유럽 등 개발도상국 진출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해외에 7개의 지점 및 현지법인을 갖고 있는 국민은행도 팬아시아 전략의 일환으로 중국 시장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이미 중국 대련 지역에 합작 은행 설립 및 인수를 계획한 바 있는 국민은행은 중국 광주사무소를 통해 지역성과 사업성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은행이 지난 2003년말 컨소시엄 형태로 인수한 인도네시아 은행인 BII은행은 현지화 전략에 성공, 지난해 8700만달러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민족은행인 농협도 해외 진출에 적극적이다. 도쿄와 뉴욕에 사무소를 두고 있는 농협은 해외 진출을 위해 지난달 해외점포개설단을 신설, 이 부서를 통해 진출 지역 및 시장성 등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는 상태다. 농협은 칠레·브라질 등 중남미 지역과 베트남 등 동남아 지역을 대상으로 올 하반기 3~4개의 점포를 신설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농협 해외점포개설단 관계자는 “아직 부서가 만들어진지 얼마 안돼 구체적인 계획이 잡힌 것은 없다”면서도 “농협의 특성과 한국 기업의 지원 효과를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중남미나 동남아 지역이 대상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수출입은행도 한국 기업들의 중동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 5월 9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두바이사무소 개소식을 열고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갔다.



 Plus tip



 은행 해외 점포 환란 후 첫 증가



 
지난해 말 현재 국내 은행의 해외 점포는 북미 16개, 유럽 19개, 아시아 65개, 기타(남미 등) 지역 9개 등 모두 109개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은행의 해외 점포는 1997년 257개에서 1998년 134개, 1999년 112개, 2000년 109개, 2001년 105개, 2002년 103개 등으로 외환위기 이후 줄곧 감소세를 지속하다가 지난해 처음으로 증가했다.

 이들 해외 점포의 당기순이익은 1998년 13억달러, 1999년 9억6천만달러, 2000년 3천만달러 등으로 환란 사태 이후 3년 내리 적자 행진을 하다가 2001년 1억달러 흑자로 돌아서 2002년에는 2억달러로 그 폭이 확대됐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흑자 규모가 2천만달러로 대폭 감소했다. 해외 점포의 자산 총액은 1998년 421억달러, 1999년 326억달러, 2000년 271억달러, 2001년 226억달러 등으로 감소하다가 2002년 254억달러로 늘었으며 지난해에는 266억달러에 달했다.

 해외 지역별로는 10개 점포가 있는 홍콩 지역 점포들이 선전했다. 2003년 9억원의 적자를 나타냈던 유럽 지역 점포들은 지난해 말 61억원의 당기순익을 기록했다. 또 유럽 지역의 13개 점포도 2003억원의 적자에서 지난해에는 60억원의 순익을 올렸으며, 미국·싱가포르 등지의 점포들도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했다.



 전망 무분별한 해외 투자 막아야



 
융권에선 증권업계가 해외 진출에 가장 소극적이다. M&A에 따른 대형 증권사 출범과 외국계 진출로 국내 시장 경쟁이 과열 양상을 보이면서 해외 진출에는 눈을 돌리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국내 증권사들은 해외 경쟁사들에 비해 자본력과 경험이 부족하고 리테일 부문에서만 그나마 경쟁력을 지녀 현지 교포를 대상으로 한 영업 이상의 해외 시장 공략은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다.

 그나마 해외 진출에 적극적인 곳은 미래에셋이다. 미래에셋은 지난해 홍콩·싱가포르에 자산운용사를 신설하면서 국제적인 자산운용그룹으로 거듭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SK생명 인수에도 뛰어드는 등 한국의 ‘워렌버크셔’를 꿈꾸고 있다. 미래에셋은 올 하반기중 중국과 인도에 자산운용사를 추가로 설립, 동아시아 자산 운용 네트워크를 만든다는 포부다. 또 내년에는 해외 자산 운용 네트워크를 통한 국제 영업에도 본격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이를 위해 상품 개발 및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으며 해외 기업 전담 리서치 부서도 신설, 국제 영업을 지원할 해외 유수 기업에 대한 기업 분석 작업도 준비중이다.

 미래에셋 고위 관계자는 “해외에서도 통하는 종합 자산운용그룹으로 성장키 위해 해외 시장 개척에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며 “중국·인도 등 신흥 시장은 앞으로 거대 시장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초기 시장 선점 및 아시아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조만간 자산운용사를 설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국내 금융기관들의 해외 진출이 잇따르면서 일각에선 외환위기 직후의 버블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과거 금융기관들이 시장성이나 타당성 조사를 철저히 하지 않고 단순히 유행처럼 해외 투자를 진행하면서 대규모 부실로 이어진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또 해외 점포 관리 미숙으로 부실 대출, 자금 세탁 등 금융 사고도 빈번했다. 실제로 지난 2001년 외환은행의 뉴욕 브로드웨이지점은 미국 재무부로부터 자금세탁방지법 위반으로 110만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이 지점은 지난 98년 3월부터 2001년 3월까지 총 3200만달러 규모의 의심스런 거래를 했으나 이를 고의로 지연 보고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이같은 부실 경영과 위법으로 지난 2000년 13개 시중은행 및 국책은행이 개설한 95개 해외 점포 및 현지법인의 부실 여신은 16억3385만4000달러로, 당시 원화로 환산할 경우 2조원대에 육박했다.

 특히 최근 금융기관들이 주력하고 있는 동유럽이나 동남아시아 등 개발도상국은 그만큼 지정학적 또는 경제적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때에 따라 투자 대상국의 경제 상황이 악화될 경우 큰 피해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지난 90년대 중반 신흥 시장으로 각광받던 러시아(옛 소련), 브라질 등의 모라토리엄(대외지불유예) 선언으로 국내 금융기관들이 큰 피해를 입은 바 있다. 실제로 94년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산업은행·한빛은행(현 우리은행)·외환은행 등 국내 은행들은 10억달러를 손해볼 위기에 처했다. 다행히 지난 2004년 3월 지급 보증을 선 우리 정부가 차관을 대신 지불키로 했지만 원금과 이자의 90%만 받게 됐다. 결국 국민의 혈세로 남의 빚잔치를 벌인 셈이다.

 현대증권 심규선 금융담당 연구원은 “해외 진출이 과거처럼 단순 거점 마련이나 형식에 그친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국내 금융기관도 많이 신중해진 데다 이제는 실질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나가는 것인 만큼 과거와 같은 무분별한 투자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내수 시장의 포화 상태로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린다면 문화 자체가 비슷해 접근도가 높은 동남아 시장 공략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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