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험, 손해보험, 공제 등 보험업계의 영역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한계에 다다른 보험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울타리를 벗어나 이웃의 땅을 넘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일부 영역(보험상품)은 방카슈랑스, 교차판매 등으로 인해 자유영업구역(Free-Zone)으로 변해버린 상태다. 보험업계의 영역경쟁과 이에 따른 시장변화를 미리 살펴봤다.

 국내 금융산업은 바야흐로 종합금융시대에 접어들었다. 이 같은 변화의 바람은 보험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생명보험·손해보험 양 업계간 교차판매가 현실화됨에 따라 이미 포화상태인 국내 보험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업계간 힘겨루기는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생보·손보사 간 영역경쟁에 이어 은행과 공제 등 타 금융권과의 경쟁도 점차 심화되고 있다. 방카슈랑스로 인해 은행권과의 경쟁은 이미 시작된 상태고 유사보험(공제)과의 영역다툼도 치열하다.



 생보·손보 영역파괴 가속

 손해보험업계와 생명보험업계의 영역파괴가 올해를 기점으로 본격화되고 있다. 그동안 보험업계는 인(人)보험(Life Insurance : 생명보험)과 물(物)보험(Non Life Insurance : 손해보험)으로 구분돼 각자 고유영역을 지켜왔다. 하지만 시장상황은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손보사들의 고유영역이었던 실손보험 시장이 올 8월부터 생보사들에게 허용되기 때문이다. 생보사들은 지난 2003년 8월부터 단체보험에 한해서만 실손보상이 부분 허용됐지만 올 8월부터는 일반 개인보험 상품으로 확대 적용된다.

 실손보상이란 계약자가 보험사고로 실제 입은 손해만큼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생보사들은 그동안 보험사고시 지급할 보험금이 확정돼 있는 정액보상 위주의 상품만을 판매해왔다. 예를 들어 암수술시 한도가 500만원인 실손보상 보험과 정액보험을 비교해보자. 수술비가 200만원이 나왔을 경우 정액보상은 500만원이 전액 지급되지만 실손보상은 200만원만 지급된다. 대신 실제 손해액만을 담보하기 때문에 보험료가 정액상품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실손보상이 본격화되면 손해보험과 생명보험의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는 제3보험 시장을 두고 두 업계간 진검 승부가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제3보험은 상해겵杏큱장기간병 보험상품을 말하는 것으로, 2003년 보험업법이 개정됨에 따라 생보겮擥?구분 없이 상품을 판매할 수 있게 됐다.

 이처럼 생보사들에게 실손보상을 허용하는 대신 손보사들은 세(歲)만기(80세 만기형) 제한 철폐를 요구, 이를 실현시켰다. 지금까지 손보사는 최고 80세까지 보장하는 상품만 판매가 가능했다. 그동안 손보사들은 생보사들과 달리 세만기 제한으로 인해 종신형 상품의 판매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빠른 속도로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국내 사정을 고려해볼 때 세만기 제한은 손보사에게 족쇄를 채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오는 8월부터는 세만기 제한이 풀리게 돼 손보사도 생보사 종신보험과 같은 보장성 보험의 판매가 가능해진다. 이와 함께 운전자보험과 만기환급금이 있는 건강보험 등 장기손해보험의 15년 만기 제한도 없어졌다.

 생보업계와 손보업계의 이 같은 빅딜로 인해 앞으로 생보사는 입원 실비를 보상하고 손보사들은 종신형 보험을 판매하는 교차영업이 현실화될 전망이다.

 하지만 영역파괴가 가시화되고 있다 해서 현실적으로 당장 서로의 영역을 넘보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시장 상황을 지켜볼 때 수익성 여부를 검토해봐야 하기 때문이다. 실손보상과 관련해 일부 대형 생보사를 제외한 중소형사들은 수익성 여부가 불명확해 적극적인 시장진입이 힘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대형사들의 추이를 지켜본 뒤 시장이 활성화되면 뛰어들겠다는 의도다. 실손보상에 적극적인 대형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해 8월 시행을 앞두고 예정대로 연착륙이 이뤄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생보·손보 vs 공제, 보험명칭 공방

 생보·손보의 영역파괴와 함께 공제의 시장 확대도 보험시장 경쟁을 한층 격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공제의 공격적인 시장 확대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기존 보험업계는 보험업법에 근거한 공제사업 감독을 주장하며 방어에 나서고 있다.

 현재 공제의 대표 격인 농협공제의 지난 2004년 한 해 수임보험료는 5조7000억원, 자산규모는 21조원으로 삼성, 대한, 교보 등 이른바 생보 빅3에 이어 업계 4위에 해당하는 거대규모로 성장했다. 농림부 관할인 농협은 현재 금융감독 당국의 감독을 받지 않고 있다. 별도의 감독을 받지 않다 보니 저렴한 보험료를 앞세워 생보 시장은 물론 손보 시장마저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 보험업계의 주장이다. 

 특히 단체보험에 있어서 농협공제는 독보적인 존재다. 농협이 공무원 단체보험시장을 싹쓸이하면서 시장독점 논란마저 일고 있는 상황이다. 농협이 이처럼 공무원 단체보험시장에서 대규모 실적을 거두고 있는 것은 보험료가 저렴한 데다 공무원들의 주거래 은행이나 금고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 입장에선 인근에 지점이 있고 이용이 편리하면서 보험료가 저렴한 농협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농협의 판매방식이 은행에서 보험을 파는 방카슈랑스를 이미 40년 전부터 실시해온 터라 국내 방카슈랑스의 원조 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실제 농협의 경우 별도의 설계조직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업비를 저렴하게 책정할 수 있다. 보험상품은 설계사들의 수당으로 책정되는 사업비를 20~30% 책정하는 데 비해 농협은 이 수당만큼 사업비를 낮출 수 있어 보험료가 그만큼 저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보험업계는 공제가 가격 덤핑으로 시장 질서를 문란케 하는 주범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일반 민영보험사가 낼 수 있는 보험요율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보험료를 책정, 민영보험사들과 사실상 경쟁을 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소비자들은 가격만을 기준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서비스나 재무건전성 등의 요인도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영보험사들의 경우 금융감독 당국의 철저한 감독을 받기 때문에 재무건전성 면에서 농협보다 훨씬 투명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보험사들은 보험요율 산정시 오랜 경험 통계를 바탕으로 보험개발원과 금감원의 검증과정을 거치지만 그렇지 않은 농협의 보험료 산출은 가격덤핑으로밖에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검증되지 않은 요율은 결국 손해율 악화로 이어져 재무건전성에 적신호가 켜질 경우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농협은 단체보험시장뿐만 아니라 손해보험 시장도 상당부분 잠식해가고 있다. 특수건물의 경우 손해보험사가 영위하는 신체손해배상특약부화재보험에 의무가입 해야 하는데(화재보험법 제5조), 보험업법상 손해보험사로 규정되지 않은 농협공제나 기타 유사보험에서 판매하는 특약부 화재보험에 가입한 계약자의 경우 보험 미가입으로 처리된다. ‘화재로 인한 재해보상과 보험가입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의무적으로 보험에 가입해야 하는 특수건물은 1만9000건에 달하지만 1300여건이 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600건에 달하는 건물이 농협공제 화재특약부공제보험에 가입돼 있다.

 금융당국은 보험가입 의무자가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을 경우 관계행정기관에 가입의무자에 대한 과태료 부과, 인곀昇?취소, 영업 정지, 건물사용의 제한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청할 수 있다. 현재 공제에 가입한 계약자들을 대상으로 이 같은 조치를 내릴 경우 과태료만 65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농협측은 농림부가 주무부처인 데다 농협법에 근거, 계약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공제와 보험업계가 첨예한 대립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현재 농협과 보험업계는 보험명칭 사용여부를 두고 소송을 진행중이다. 농협이 최근 공제라는 명칭 대신 농협생명, 농협화재 등 직접적인 보험명칭을 사용해 영업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민영보험사들은 농협이 공제임에도 보험명칭을 사용한 것에 대해 반발하며 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생명·화재 등의 용어 사용이 민영보험사의 영업이나 부정경쟁행위에 참여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농협측 손을 들어줬다. 민영보험사들은 이에 반발해 본안조정을 신청, 현재 선고만 남은 상태다.

 보험업계가 보험명칭 사용금지 소송을 진행중이긴 하지만 사실상 공제의 보험명칭 사용은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소송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현재 농협의 보험명칭 사용을 방지할 법적 근거가 없는 데다 시일이 길어질 경우 저렴한 농협공제 상품에 보험사라는 이미지가 소비자들에게 인식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농협공제에 대한 보험사들의 반발이 심해지자 최근 농협은 금감위·농림부 관계자들과 함께 농협법에 근거한 공제사업감독기준 기초안을 마련, 7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공제사업기준에 대한 제정근거를 마련한다는 취지지만 상품감독에 대해 민영보험사와 동일한 수준의 감독을 받는다는 것이 핵심내용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공제상품 관련 기초서류 작성기준, 공제상품 인가제도 실시, 표준율제도 도입, 경영개선조치 제도 등 상품과 재무건정성에 대한 감독기준을 일반 민영보험사와 동일한 수준으로 설정했다. 농협은 이와 함께 금융감독 당국의 감독을 언제든지 받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다만 먼저 농협공제를 보험사로 인정해줄 것을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이에 대해 보험업계에서는 농협의 이 같은 행보가 변액보험과 통합보험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주장한다. 현재 변액보험과 통합보험은 보험업법에서 규정한 민영보험사들만이 판매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새로운 돌파구 ‘100조 퇴직연금’

 갈수로 심해져가는 경쟁 속에서 보험업계의 더욱 큰 고민거리는 보험시장 전망이 앞으로도 그리 밝지 않다는 점이다. 향후에도 저금리, 저성장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금융겸업화 추세에 따른 타 금융권과의 경쟁도 힘에 겨운 실정이다.

 현재 보험업계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것이다. 국내 보험산업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보험개발원 조사에 의하면 현재 국내 가구당 보험가입률이 90%를 넘는다. 10가구당 9가구 이상이 보험에 가입해 있다는 이야기다. 보험업계는 이 같은 시장상황 속에서 올 연말 시행될 예정인 퇴직연금보험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퇴직연금제도가 5명 미만의 전사업장으로 확대될 경우 시장규모가 1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돼 이미 퇴직연금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전초전에 돌입한 상태다. 기존 퇴직보험 시장에서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생보업계는 이번 퇴직연금 시장에서도 상당한 자신감을 보이며 각 사별로 마케팅 전략 수립에 분주하다.

 배정충 삼성생명 사장은 사내 경영전략회의 자리에서 “퇴직연금시장에 대비해 10년을 준비한 생보업계가 타 금융권에 시장을 빼앗긴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자신감을 피력했다. 삼성생명은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 연금전문가들을 영입, 퇴직연금 교육체계를 전문성 기준으로 분류하고 지난 4월부터 교육을 실시해오고 있다. 오는 8월까지 총 4단계의 교육과정 중 3단계까지 교육을 끝마칠 예정이다. 대한생명 역시 퇴직보험 전담팀을 구성, 본격적인 시장공략 준비에 한창이다. 지난해 말에는 기업의 퇴직금 담당자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기도 했다. 교보생명도 지난 4월 운영관리 시스템 개발을 시작해 오는 12월에는 오픈한다는 방침이다.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보험이 은행에 비해 퇴직연금 준비작업이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시장 경쟁에서 결코 뒤지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며 “특히 고객의 니즈가 있는 장기상품을 일찌감치 운용하고 있어 초반 고객선점에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손보사들의 경우 시장선점을 위한 전략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손보사들은 업무영역 확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변액보험의 허용 및 신탁업무의 실마리를 퇴직연금 시장에서 찾고 있다. 특히 꾸준히 감독당국에 요구하고 있는 변액보험의 도입이 퇴직연금에 한해 부분 허용될 것으로 보여 이를 기점으로 단계적 확대를 기대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변액보험 상품이 생보사의 상품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면서도 “퇴직연금의 실적배당형 상품은 변액으로 보기 어려워 손보사들에게도 판매를 허용해야 된다”고 말해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김주형 서울금융신문 보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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