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전 한화증권 투자분석 팀장, ‘주식의 시대,투자의 자세’ 저자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전 한화증권 투자분석 팀장, ‘주식의 시대,투자의 자세’ 저자

많은 이가 시장을 좋거나 나쁘게 보고 있을 때 오히려 반대 가능성을 봐야 할 시기가 있다. 올여름이 그렇다. 기술적 반등이나 내심 시스템 내지 금융위기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다면, 필자의 선택은 그 반대다. 

투자는 가치(value)와 가격(price)의 줄다리기다. 한쪽으로 쏠림이 강할 때의 가늠자는 가격이 아닌 가치다. 대다수 사람은 고급 시계처럼 가격이 높을수록 가치는 올라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업 가치는 다르다. 워런 버핏은 “가격은 당신이 지불하는 것이고 가치는 당신이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가치 있는 기업이라도 투자자가 어떤 가격에 주주가 됐는가에 따라 좋은 주식인지 나쁜 주식인지가 결정된다.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시기에 돈이 풀렸고, 무형 자산 재평가 시나리오로 인해 많은 성장 기업 주가가 치솟았다. 가치 대비 가격이 너무 비싸졌다. 하지만 내러티브(이야기)가 넘버(가치)를 압도하는 구간이 지나자 다시 숫자를 주목하는 시기가 됐다. 돈 버는 여부가 중요해졌고, 적자 기업 주가는 팬데믹 이전으로 회귀했다. 물가가 오르자 정책이 바뀌고 금리가 움직이자 주가는 무너졌다. 기업 가치는 할인율이 변하면 재산정될 수밖에 없다. 위험보다 보상(reward)이 큰지 아닌지를 파악해야 할 시기다.

증시는 많은 변수 탓에 불확실성이 많은 세계다. 하지만 ‘불안한 상황’과 ‘불확실성’은 다르다. 오르고 내릴 이유가 반반일 때 불확실성이 제일 크고, 단 1%라도 무게중심이 한 방향으로 쏠리면 불확실성은 감소한다. 



유가, 불확실성 증폭의 근원

현재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는 힘은 유가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영향이 애초 예상보다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야기했고, 여전히 전쟁이 진행되고 있어 광범위한 물가 상승 압력이 유지되고 있다. 선진국의 경우 유가가 물가 상승률의 가장 큰 동인이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나지 않으면 유가가 진정되지 않아서 물가는 폭등할 수밖에 없다. 잡히지 않는 물가를 통제하기 위해 금리를 더 올리면 경기와 기업 실적은 망가질 거란 비관론이 힘을 얻는 배경이다. 

결국 엉킨 실타래를 푸는 첫 단추는 유가 하락 여부다. 6월 30일 열린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 플러스(OPEC+)에서 64만8000bpd(1일당 배럴) 확대를 결정했다. 9월 이후에 대한 논의가 없었으므로 OPEC+ 생산 한도는 올해 말까지 8월 수준을 유지한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증산 여력이 없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6월 27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대화에서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산유량은 이미 한계선에 들어섰음을 언급했다. 걸프 3국(사우디·UAE·쿠웨이트)이 증산을 발표해도 실제 증산으로 나서기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그러나 마크롱의 주장은 자세히 봐야 한다. 여기서 UAE 측은 생산 능력이 아닌, OPEC+ 합의하의 생산 한도 내에서 최대치로 공급하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UAE의 유휴 생산 능력(Capa)은 101만bpd, 걸프 3국의 유휴 생산 능력은 213만5000bpd에 달한다. 이란의 핵합의 탈퇴에 따른 석유 금수 조치로 이란발 공급 차질이 빚어졌던 2018년 6월에서 12월 증산 때와 비교하더라도 증산 여력이 충분하다. 두바이유의 재정 균형 스프레드로 보더라도 2018년에 비해 훨씬 증산하기 유리한 환경이다. 

탄소 중립 탓에 증산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걸프 3국의 탄소 집약도는 세계 평균보다 낮은 수준이다. 더욱이 온갖 제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우랄유의 시장 유입을 막을 수도 없다. 중국의 러시아 우랄유 수입 비중은 원유 수입에서 16% 정도고, 인도의 러시아산 수입도 줄지 않고 있다. 8월 3일 OPEC+ 회의에서 걸프 3국의 변화 가능성은 크다. 2022년 여름 이후 유가는 배럴당 150달러를 향해 추가 급등하기보다 점차 80달러로 하향 안정화하리라 전망한다. 



하향 안정화할 유가, 긍정적 선순환 계기

유가 하락은 기대 인플레이션 둔화로 이어지고, 이는 긴축 부담을 줄여 줄 수 있다. 이는 달러 강세 기조를 누그러뜨릴 수 있는 변화다.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넘어선 시기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 위기, 닷컴 버블 붕괴 그리고 2008년 금융 위기로 단 세 차례에 불과하다. 팬데믹 기간은 1300원 근처에 도달했을 뿐 넘어서지는 못했다. 현 상황은 그만큼 이례적이다. 경제 상황 자체보다 달러 강세 요인이 여러 부문에서 힘을 보태다 보니 필자 역시 원·달러 환율 상단을 1350원까지 열어둔 상태다. 하지만 길게 보면 다르지 않다. 원·달러 1300원 이상에서 주식 비중을 늘리고, 1100원 전후에서 줄이면 된다. 달러 강세가 빨라질 거란 전망이 많지만, 이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빨라지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유가가 잡히면 물가 상승 속도가 주춤해지고, 금리 상승 속도도 진정될 수 있다. 

유가 하락은 긍정적 선순환의 계기가 된다. 지난 6월 수출 증가율이 이전치를 크게 하회하는 5.4%를 기록했다. 더 큰 문제는 수입이 19.4% 증가하면서 무역수지는 3개월 연속 적자를 보였다는 데 있다. 유가 상승이 수입에 영향을 줘서 무역수지가 악화한 것이다. 무역수지는 국내 기업 이익률과 연동된다. 무역수지 악화 원인이 유가고, 무역수지 악화는 외국인의 한국 주식 대규모 매도와 깊게 연관된다. 당장 배럴당 100달러 전후의 유가는 국내 기업 이익률에 부담이 된다. 하지만 이제 유가가 정점을 찍은 뒤를 시나리오에 포함해야 한다. 시차를 두고 기업의 이익률이 개선되고 이를 반영해 외국인이 다시 한국 시장에 돌아올 거란 긍정적 변화다. 

불확실성이 확실성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국면은 금리와 유가 등 외부 변수를 반영한 밸류에이션(평가 가치) 재평가 과정과 함께한다. 과거 밸류에이션 평균에 비해 현재 가격은 가치 대비 매력적인 수준에 이미 도달해 있다. 일부에서는 이제 실적 하향 조정이 시작됐다고 강조한다. 우려대로 7월 실적 시즌은 이익 하향 조정이 급격하게 진행될 것이다. 하지만 이익 하향 조정이 추가 주가 급락을 예고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 이익 대하락 마무리 국면에서 주가는 먼저 돌아섰다. 더욱이 주가순자산배율(Trailing PBR) 0.9배까지 근접한 코스피는 자기자본이익률(ROE) 9%를 반영한 수치다. 현재 코스피 순이익 컨센서스에서 20% 넘게 하향 조정돼야 가능한 수준이다. 앞으로 줄어들 이익이 주가에 이미 충분히 반영됐다. 

지금 투자자는 비관의 늪에 빠져 있다. 그러나 유가만 진정돼도 긴축 부담은 하반기 후반부터 내려올 수 있다. 이는 곧 유동성 지표에 매우 민감한 한국 증시의 밸류에이션 상승 모멘텀이다. 이미 코스피는 다양한 우려를 상당 폭 반영해 왔다. 가치에 비해 가격도 매력적이다. 리턴은 위험에 비례한다. 위험을 선택한다면 모든 것이 확인된 뒤가 아닌 바로 지금이 적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