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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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인 A(61)씨는 최근 주택연금 가입 상담을 받으려다가 깜짝 놀랐다. 대기 인원이 많아 상담받으려면 한 달을 기다려야 한다는 안내를 받았기 때문이다. A씨는 “집값이 더 떨어지기 전에 주택연금에 가입하려고 전화했는데, 관심 있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고 했다.

부동산 시장 침체가 시작되면서 주택연금 가입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주택연금은 만 55세 이상 주택 소유자가 소유 주택을 담보로 맡기고 계속 거주하면서 평생 또는 일정 기간 매월 정해진 금액을 지급받는 제도다. 가입 시점을 기준으로 가입자의 연령과 주택 가격(공시가격, 시가표준액, 시세 등), 주택담 보대출 유무에 따라 월 지급금이 달라진다.

대출자가 사망할 경우 금융기관이 주택을 팔아 대출금과 이자를 상환받으면서 연금 지급이 종료된다. 단, 배우자가 있다면 감액 없이 배우자에게 같은 금액이 지급된다. 그간 받은 지급액이 주택 가격을 초과하더라도 비용이 추가로 청구되지 않으며, 지급액이 더 적을 경우 상속인에게 상속된다.

한국주택금융공사(HF)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주택연금 신규 가입 건수는 1만719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7546건)보다 42% 급증한 것이다. 3분기 말 기준으로는 주택연금이 출시된 2007년 이후 역대 최대치다. 가입 건수가 늘면서 올해 연간 신규 가입자 수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HF 관계자는 “신청자와 상담 요청자가 모두 느는 추세”라면서 “온 가족이 함께 방문해 문의 사항을 한꺼번에 질의하는 경우가 많아 시간이 꽤 소요되기 때문에 상담이 몰리는 일부 지사에서는 대기 인원도 생겨나는 상황”이라고 했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사진 뉴스1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사진 뉴스1

집값 고점 찍을 때 가입하면 연금액 커져

연금 가입자가 증가하는 가장 큰 이유로는 집값이 고점을 찍고 하락세로 접어든 것이 꼽힌다. HF는 주택금융운영위원회를 통해 매년 집값 상승률과 금리 추이, 기대수명 등 주요 변수를 재산정해 월 지급금을 산정하는데, 집값이 비쌀 때 가입해야 연금액이 커진다.

예를 들어 만 72세 1가구 1주택자가 6억원짜리 아파트를 담보로 주택연금에 가입하고 월 일정 금액을 종신 지급 방식으로 수령할 경우, 월 지급금은 200만8000원이다. 그런데 이 아파트가 10억원으로 오른다면 월 지급금은 283만1000원이 된다. 종전보다 연금이 41% 증가하는 것이다.

주택연금은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이목을 끌지 못했다. 제도가 시행된 2007년에는 가입 건수가 515건에 불과했고, 지난 6년간은 연간 1만여 건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집값이 폭등한 2020~2021년은 중도 해지 건수도 증가했다. 주택연금을 해지할 경우 지원받은 자금을 돌려줘야 한다. 그런데도 집을 담보로 연금을 받기보다는 차라리 시세 차익을 노리는 게 더 이득이라고 판단한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집값이 하락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연금 수령액이 가장 높을 때 가입하려는 ‘막차 수요’가 몰렸기 때문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1월 넷째 주(28일 기준) 서울 아파트값은 전주 대비 0.56% 내리며 27주 연속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12년 5월 첫째 주 이후 낙폭이 가장 컸다. 전국 아파트값도 전주 대비 0.56% 하락하며 역대 최대 낙폭을 기록했으며, 30주째 하락세를 이어 갔다. 

평균 주택 가격도 떨어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집계한 주택(아파트, 다세대, 단독, 다가구) 평균 매매 가격은 올해 1월까지 상승하다가 하락세로 돌아섰다. 서울 평균 매매 가격은 올해 1월 8억8278만원에서 10월 8억6667만원으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수도권의 평균 매매 가격은 6억2713만원에서 6억1010만원으로, 전국은 4억2765만원에서 4억1694만원으로 각각 1700여 만원, 1000여 만원씩 하락했다. 

 

주택연금 가입 문턱 내려가 

HF는 주택연금의 가입 문턱을 낮추며 가입자 증가를 유도하고 있다. HF는 고령층의 노후 생활 보장을 위해 애초 만 65세 이상, 보유 주택 시가 9억원 이하였던 가입 기준을 만 55세 이상, 공시가격 기준 9억원 이하로 완화했다. 9억원 초과 주택을 보유한 2주택자도 3년 이내 주택 한 채를 처분한다고 약속하면 가입 가능하다. 2020년에는 가입 대상에서 제외됐던 주거용 오피스텔도 포함시켰다.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우대형 주택연금’ 가입 기준도 낮췄다. 애초 부부 중 한 명이 기초연금 수급자이면서 1억5000만원 미만의 1주택 소유자만 가입 가능했지만, 지난 9월부터는 주택 가격 기준을 2억원 미만으로 상향했다. 

정부와 국회도 HF의 기조에 발맞추고 있다. 정부는 지난 2월 공시가격을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확대하는 안을 내놓으면서 가입 기준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5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는 주택 가격 대비 연금 대출 한도를 기존 5억원에서 상향할 계획을 밝힌 바 있어 앞으로도 가입자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에서는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주택금융공사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주택연금 가입 기준 완화 시동을 걸었다. 해당 발의안은 공시가격이 9억원을 넘어서는 주택을 소유한 노년층도 주택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공시지가 현실화와 주택 가격 상승 등으로 9억원 초과 주택 비중이 급증한 것을 감안해 가입 기준을 조정하자는 게 입법 취지다.

다만 반론도 있다. 재원이 한정적인 만큼 주택연금 관련 혜택을 점진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0월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한 자료를 통해 주택연금 가입 기준 완화에 동의하면서도 “소득 자산이 부족한 고령자의 생활비 보조라는 주택연금의 도입 취지 및 한정된 재원을 고려할 때 급격한 가입 기준 완화보다는 점진적으로 가입 요건을 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속도 조절 필요성을 언급했다.

 

세제 지원 강화 목소리도

일각에서는 세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민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 등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의 경우 주택연금을 통해 노후 소득 보장이 가능하므로, 세제 혜택을 강화해 노년층의 빈곤율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전병목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연금액 100원당 조세 지원액은 개인 연금의 경우 11~16원이지만 주택연금은 1.6~2.2원에 불과하다”며 지원 확대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현재는 주택연금 가입 주택에 대한 재산세 25% 감면, 주택담보등기 등록면허세 75% 경감 등의 지원이 제공되는데, 이를 확대하자는 의견이다.

전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고령층은 높은 빈곤율과 함께 높은 주택 보유율을 보여 주택연금으로 인한 노후 빈곤 완화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면서 “주택연금에 대한 지원 강화를 통해 형평에 맞고 비용 대비 효과적인 고령층 빈곤 완화를 달성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