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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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여진 쿼드자산운용 PEF운용본부 매니저 연세대 경영학,  전 신영증권 제약· 바이오 애널리스트
엄여진 쿼드자산운용 PEF운용본부 매니저 연세대 경영학, 전 신영증권 제약· 바이오 애널리스트

“좋은 기업이라고 투자받는 건 아니더라고요.” 얼마 전 전도유망한 비상장 기업을 소개받는 자리를 마치고 헤어질 무렵에 이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씁쓸하게 말했다. 이 기업보다 매출도 적고 업계 인지도도 낮고 심지어 업력까지 짧은 경쟁사가 막대한 규모의 투자 유치에 연이어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를 지켜보는 ‘좋은 기업’ 입장에서는 당연히 속이 쓰릴 수밖에 없다.

최근 몇 년 사이에 4차 산업과 플랫폼 같은 성장 산업의 대표주자들이 연이어 기업공개(IPO)에 성공했다. 대부분이 막대한 자본력을 기반으로 경쟁 기업을 모두 쓸어버리고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물론 투자자 입장에서는 투자 유치를 위한 노력보다도 좋은 기업부터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말하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기업의 노력이 어쩌면 기업 운명을 가를 만큼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투자 유치를 받기까지 너무 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으며, 투자를 대규모로 받으면 업계 지도를 바꿀 만큼 자본력의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좋은 기업이 투자를 많이 받고 인정받아야 하는 건 당연한 이치이지만 비상장 기업 투자 또한 인플레이션 시대의 구조적 압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코로나19 이후 천문학적인 유동성과 저금리는 금융 시장을 과열시켰고 결국 인플레이션은 재정 정책 긴축을 야기했다. 결국 유동성 경색과 함께 비상장 주식의 자금 조달마저 위축시켰다.

요즘같이 투자 심리가 얼어붙었을 때, 스타트업이 투자받으러 다니면 벤처캐피털(VC)을 비롯한 투자사에서는 “요즘 시장이 안 좋다, 투자 심리가 위축돼서 투자가 어렵다”와 비슷한 피드백을 들을 것이다. 그렇다고 회사 경영진으로서 비상장 주식 투자 열기가 많이 식었다고 해서 투자 유치를 포기하고 손놓고 있을 수만도 없다. 투자 심리가 안 좋을 때도 어떻게 하면 스타트업 경영자가 투자자로부터 성공적으로 투자를 받아낼 수 있을까. 그 묘수를 아래에 소개한다.


1│주식 시장

회사 관점에서 벗어나서 금융 시장 관점에서 언제 누구로부터 어떻게 투자를 받을 것인가에 관한 해법을 고민해보자. 그중에서도 첫째로 주식 시장을 알아야 한다. 흔히 주식 시장을 유통 시장, 비상장 주식 시장을 발행 시장으로 설명한다. 기업 가치를 정확히 알려면 증권 발행 이후 수많은 투자자에 의해 밸류에이션(가치 평가)이 활발하게 정해지는 주식 시장을 잘 알아야 한다.

실제로 비상장 주식 투자 심리는 증시 방향과 매우 밀접하다. 밸류에이션 관점에서 보면 비상장 기업의 가치를 정하는 밸류에이션에는 증시에 이미 상장된 유사 기업의 프리미엄과 할인율이 그대로 적용된다. 상장 주식 운용을 하지 않는 VC가 주식 시장의 투자 심리로부터 직격탄을 맞는 이유다.

과거 금리 인상기를 보면 주가 할인율과 밸류에이션은 뚜렷한 상관관계를 보여왔다. 최근에 바이오와 첨단산업 같은 성장주의 밸류에이션은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상당 부분 되돌아갔다. 특히 무엇보다도 국내 증시 상승과 비상장 주식 투자 열풍 주역이었던 바이오 기업은 과열도 과도했던 만큼 해소되는 데 오랜 기간이 걸리고 있다. 역사적으로 인플레이션은 과열된 시장을 자정하는 역할을 하는데, 인플레이션 이후의 주식 시장을 면밀히 점검하고 예측해서 이를 투자 유치 계획에 반영해야 한다.


2│IPO 추세

IPO 추세에도 주목해야 한다. 증시가 하락장을 이어 가자 지난 5월에만 상장 철회한 기업이 6개에 이른다. 그 이유는 기업 희망 공모가 밴드보다 낮은 수준에서 공모가가 정해졌던 탓이다. 증시가 안 좋아서 원하는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기술 특례 상장 제도’까지 오는 8월 대대적으로 바뀔 것으로 예정돼 있는데, 이로 인해 기술 특례 상장을 하려던 기업의 상장 가능성까지 점치기 어려워졌다. 어떻게 심사 기준이 바뀔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시장은 일단 제도 윤곽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보자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IPO 시장은 더 얼어붙었다. 

이런 IPO 움직임은 내년이나 내후년 상장을 추진하는 기업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기업 입장에서는 기업 가치를 크게 높였다가 후기 투자 라운드나 공모가 산정에 부담을 느낄 바에야 성장 단계에 맞게 기업 가치를 산정하는 게 낫다고 판단해 투자 밸류에이션을 대폭 낮추고 있다.

즉, 증시 추이가 IPO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다시 비상장 주식의 밸류에이션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회사는 자체적인 재무 상태에만 의존해서 투자 유치 계획을 짜지 말고 경제 사이클을 판단하며 투자 유치 시기를 정해야 한다. 그저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투자받는다면 회사의 밸류에이션은 늘 회사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불리하게 산정될 수밖에 없다.

 

3│비상장 주식 시장

반대로 비상장 주식 시장이 증시와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은 투자자가 한정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비상장 주식 시장의 비효율성으로, 피투자 기업이 투자사의 자금 흐름을 정확히 파악해야 함을 의미한다. 투자사는 회사 문화에 따라 투자 기준이 다르고 펀드 출자자별로 성격이 다르다. 또 투자 담당 심사역 생각까지 다르기 때문에 투자 방향은 상이할 수 있다. 그래서 각 스타트업은 자신의 회사에 투자할 수 있는 펀드가 있는 투자사를 정확히 찾는 노력이 중요하다.

투자사 수는 많아도 초기 기업일수록 투자가 가능한 투자사는 일부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VC 투자 유치를 고려하는 초기 기업이라면, VC 펀드 속성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한다. 투자 규모와 집행 가능 투자 금액, 기대수익률, 펀드 운용 기간, 심사역, 투자심의위원회 방식 등을 상세하게 알고 있어야 현실적인 투자 유치 방안을 체계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결국 비상장 주식 시장 흐름을 알려면 투자 운용 주체를 잘 파악해야 하는데, 특히 초기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의 경우 투자 가능한 업종은 이미 펀드가 만들어질 때부터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투자사라고 좋은 기업에 무조건 투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한정적인 산업 후보군 중에 선별해서 투자가 이뤄지기 때문에 투자 유치는 이미 정해져 있는 후보군 안에서의 암묵적인 경쟁이라고 볼 수 있다.

비상장 기업 경영진이 가진 가장 큰 환상은 회사가 투자 유치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전까지 투자자가 보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수준까지 회사 성장을 끌어올린 다음, 투자 유치를 눈앞에 두고서야 투자자로부터 인정받으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투자자는 투자받으려는 기업이 현재 시점에서는 완벽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제한다. 투자자의 투자 눈높이가 그리 높지 않다는 얘기다. 따라서 투자를 둘러싼 금융 시장에 관해 좀 더 폭넓은 시각을 갖추고 투자 집행 결정 과정을 이해한다면 현실적으로 어떻게 투자를 받으면 좋을지에 대응할 수 있다.

또한 생각보다 투자자별로 투자 집행 목적도 다양하다. 예를 들면 증권사가 투자하는 경우에 투자 수익 그 자체보다, 투자 기간 내 IPO 가능성이 크다고 기대하고 상장 주관사로 선정되기 위해 선제적으로 관계를 맺는 의도가 있는 경우도 있다. 투자자의 투자 목적이 모두가 동일하지만은 않다.

흔히 투자를 결혼에 빗대고는 한다. 여러 공통점이 있겠지만 연애를 하듯이 투자자를 늘 가까이하되, 회사의 현재 모습을 공개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연애를 잘하려면 우선 연애를 많이 해야 한다. 회사도 시험대에 오르지만 말고 투자자를 다각도로 검증해나가며 회사를 함께 키워나갈 동반자를 골라 나가야 한다. 스타트업 경영자들이 마음의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