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청에서 열린 2019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지원사업 통합모집 행사에 참가한 어르신들이 취업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1월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청에서 열린 2019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지원사업 통합모집 행사에 참가한 어르신들이 취업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중견기업에 다니다 지난해 퇴직한 박모(63)씨는 퇴직연금으로 매달 50만원씩 받고 있다. 박씨는 앞으로 10년간 퇴직연금을 받지만 이 돈과 국민연금으로는 생활이 되지 않아 지금은 아파트 관리 일을 하고 있다.

박씨는 “퇴직연금은 퇴직금을 한 번에 주는 대신 쪼개서 주기 때문에 다 써버릴 일이 없어 좋지만, 장기간에 나눠 받기 때문에 아주 고액 연봉자가 아닌 이상 은퇴 후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퇴직연금은 기업이 노동자에게 줘야 할 퇴직금을 미리 떼어 금융회사에 맡겨 운용하도록 하고 노동자가 퇴직한 후에 이를 매달 연금 형태로 돌려받게 한 제도다. 금융사에 맡긴 퇴직연금은 이미 167조원(2017년 기준)까지 적립 규모가 커졌지만 평균 수익률은 1.88%(2017년 기준)에 그친다. 지난해에는 수익률이 더 떨어져 0%대의 수익률을 기록한 금융회사(부산은행 0.88%·2018년 기준)도 나왔다. 물가상승률(1.5%)과 수수료(0.3~0.8%)를 제하면 사실상 수익률이 마이너스다. 국민연금(7.26%), 공무원 연금(8.8%), 사학연금(9.2%)보다 수익률이 낮은 것은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퇴직연금 평균 수익률 6.6%에도 크게 못 미친다. 정부는 보다 못해 별도의 수탁 법인인 ‘기금’을 만들어 퇴직연금을 관리하는 ‘기금형 퇴직연금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법이 통과돼 시행되려면 2020년은 돼야 한다.

덩치는 커졌지만 수익을 제대로 내지 못하는 퇴직연금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알아봤다.


1│회사도, 노동자도 관심 없는 수익률

퇴직연금 수익률이 낮은 상태에 머무는 것은 퇴직연금을 맡긴 회사나 퇴직할 때 이를 받아쓰는 노동자 모두 퇴직연금이 어떻게 투자·운용되는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금융사에 퇴직연금을 맡긴 회사 10곳 중 9곳(90.1%·2017년 기준)은 퇴직연금을 어떤 금융 상품에 얼마나 투자해달라는 운용 지시를 전혀 하지 않았다. 이런 방치 속에서 은행 등 금융사들은 전체 운용 금액의 83.3%를 정기예금 등 원금보장 상품에 넣어두면서 수수료만 받아갔다.

돈을 맡겨놓고 수익률에 관심이 없는 이유는 퇴직연금의 구조와 관련이 있다. 퇴직연금은 크게 확정급여(DB·Defined Benefit)형과 확정기여(DC·Defined Contribution)형 두 가지로 나뉜다.

DB형은 회사가 퇴직연금 운용 주체(금융사)를 선정하는 대신 퇴직연금 지급액을 보장하고 운용에 따른 수익이나 손실은 회사가 책임진다. DC형은 회사가 퇴직금(월급여의 8.33%)을 금융사에 적립해주면 노동자가 직접 금융사에 운용 지시를 하고 수익률에 대한 책임을 지는 방식이다.

문제는 국내에서 퇴직연금에 가입한 회사의 다수인 66.4%가 DB형으로 계약을 체결했다는 것이다. DB형은 퇴직연금이 손실이 나도 이 손실을 회사의 이익에서 메워준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수익률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는 셈이다. 회사에서 퇴직연금 업무를 담당하는 재무팀 직원들도 퇴직연금 수익률이 낮아진다고 책임지거나 수익률이 높아진다고 보상받지 않는다. 퇴직연금이 노동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금액보다 적으면 회삿돈을 추가로 집어넣으면 된다.

여성철 고용노동부 퇴직연금복지과장은 “적립금액은 쌓여만 가는데 돈을 맡긴 회사도 관심을 두지 않고 퇴직연금을 운용해야 할 금융사도 정기예금 등 자사의 초저금리 상품에 돈을 묶어놓은 채 운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문제는 이런 방치 상태가 계속되면 회사 재정이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김은혜 NH투자증권 책임연구원은 “안전자산에만 투자하는 현재의 퇴직연금 운용으로는 수익률이 나올 수 없고 장기간 이런 상태가 유지되면 결국 회사가 퇴직 시에 노동자들과 약속한 금액을 주기 위해 막대한 손실을 봐야 하는 상태가 된다”며 “규모가 작은 회사의 경우 퇴직금 때문에 재정적으로 위기가 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2│은퇴 후 IRP 수익률 높은 금융사 찾아야

DB형 퇴직연금일 경우 현직에 근무할 때까지는 퇴직연금의 수익이 나지 않아도 회사가 모두 이를 보전해준다. 보통 회사는 퇴직 직전 3개월간의 월평균 급여를 계산해서 근속연수를 곱해 퇴직금을 주는데, 금융사에 적립한 퇴직연금이 손실이 발생해도 회사가 손실 발생분을 지급해주는 것이다. 퇴직 전 3개월간 평균 500만원의 급여를 받은 15년 근속 노동자의 경우 퇴직 시 받는 총액 7500만원에는 변동이 없다. 퇴직하면 회사는 적립돼 있던 퇴직연금을 빼서 노동자의 개인형 퇴직연금(IRP) 계좌로 넣어준다. 이때부터 IRP를 관리하는 금융사는 받은 돈을 10년 또는 20년간 월별로 쪼개서 지급한다.

회사가 손실을 보전해주던 퇴직금이 일단 IRP로 옮겨지면 IRP를 운용하는 금융사가 얼마만큼의 수익률을 올리느냐에 따라 연금 수령액이 늘어나거나 줄 수 있다. 조금이라도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금융사를 선택해 IRP 계좌를 만드는 게 유리한 셈이다.

지난해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IRP 평균 수익률은 -0.1%로 원금 손실이 발생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 동안 IRP 수익률은 은행뿐 아니라 증권사와 보험사가 연평균 1~2% 수준에 머물고 있다. 5년 동안 평균 수익률이 0%(한화손해보험)인 곳도 있다. 고용노동부는 홈페이지를 통해 IRP 수익률을 금융회사별로 공시하고 있다.


3│연금으로 받아야 소득세 30% 감면

만약 은퇴할 때 퇴직연금을 받지 않고 목돈인 퇴직금으로 한 번에 받으면 세금을 더 내야 하므로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퇴직금은 금액에 따라 6~42%의 세율을 적용받아 퇴직소득세가 정해진다. 한 번에 퇴직금 형태로 다 받으면 세금 전액이 원천징수된다. 반면에 10년 이상 퇴직연금 형태로 받을 때는 세금 총액의 30%가 감면된다.

예를 들어 퇴직금으로 3억원을 받은 사람이 10%의 세율을 적용받아 3000만원으로 퇴직소득세가 정해진 경우에 3억원을 일시에 받으면 금융사는 세금을 제하고 2억7000만원만 준다. 반면 10년간 연금으로 받는다고 하면 매달 받는 연금 250만원의 10%인 25만원을 세금으로 떼는 것이 아니라 7%인 17만5000원만 떼간다. 3억원에 대한 총세금은 일시에 받을 때(3000만원)보다 900만원이 줄어든다.

정원준 한화생명 세무사는 “연금으로 받으면 세금을 30% 감면해서 노후 생활을 좀 더 안정적으로 보낼 수 있도록 제도화하고 있다”면서 “이런 세제 혜택과 은퇴자 본인의 자금 운용 계획을 감안해서 연금 수령을 선택할지 일시금 형태로 받을지를 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