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2월 26일 ‘가업 상속 및 자본시장 과세 체계 개선 태스크포스’ 첫 회의를 열고 “현행 증권거래세를 5년 동안 매년 20%씩 인하하다가 최종적으로 전면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사진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은 2월 26일 ‘가업 상속 및 자본시장 과세 체계 개선 태스크포스’ 첫 회의를 열고 “현행 증권거래세를 5년 동안 매년 20%씩 인하하다가 최종적으로 전면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사진 연합뉴스

올해 들어 ‘증권거래세 폐지’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현재 국내 주식 투자자는 주식을 거래할 때 매도 가격의 0.3%(비상장 주식은 0.5%)씩을 증권거래세로 내고 있다. 거래 비용을 늘려 투기를 방지하고 장기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주식 투자로 인한 수익이 없거나 손해를 본 투자자까지 세금을 내는 것은 과세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또 주식 양도소득세(양도세) 범위가 확대돼 이중과세되는 사람이 많아지는 문제까지 겹치며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4월부터 주식 양도세를 납부하는 대주주 범위를 주식 보유 금액 기준 25억원에서 15억원, 혹은 지분율 1%(코스피 기준, 코스닥 2%)로 조정한 데 이어 2020년에는 10억원, 2021년에는 3억원으로 단계적으로 낮출 계획이다. 이에 따라 양도세 적용 대상 대주주는 현재 1만 명에서 2021년에는 8만 명으로 대폭 늘어난다.

정부는 증권거래세를 당장 폐지하는 대신 인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2월 2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정책위원회 산하 ‘가업 상속 및 자본시장 과세 체계 개선 태스크포스’ 첫 회의를 열고 “현행 증권거래세를 5년 동안 매년 20%씩 인하하다가 최종적으로 전면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정부가 단계적 인하를 추진하는 배경은 증권거래세로 투자 심리가 줄어들고 거래가 감소해 자본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데 의견이 모였기 때문이다. 한국의 세제가 선진국보다 불리하면 국내 자본시장의 자금이 국외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우려도 영향을 미쳤다.

증권거래세 폐지 논의는 금융투자 업계의 오랜 화두였다. 하지만 세수 공백에 대한 부담, 양도세 등 과세 체계 전반에 대한 개편이 동시에 고려돼야 하는 점 때문에 진행이 지지부진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2017년 증권 거래를 통해 거둬들인 세수는 약 7조700억원에 달한다. 국세의 2.7%에 해당한다.

정부가 증권거래세 인하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 그동안 폐지를 원해온 금융투자 업계는 일단 반기는 분위기다. 세금이 줄면 주식 거래가 늘어 자본시장이 활성화할 것이라는 기대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증권거래세를 0.1%포인트 낮추면 2조원가량(2017년 기준)의 세금이 덜 걷혀 정부 세수 운용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이라면서도 “이 돈이 민간으로 흘러 투자나 고용이 늘어나면 전체 경제가 활성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한국보다 앞서 증권거래세를 폐지하고 양도세로 전환한 국가들의 사례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임동원 부연구위원은 “증권거래세는 증권시장 변동성을 완화하는 효과가 뚜렷하지 않아 1990년대를 전후해 여러 국가가 폐지한 상황”이라며 “증권거래세 단계적 폐지와 양도세 도입에 성공한 국가들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투기 막겠다’는 초기 목적 상실

미국은 증권거래세가 주식 거래를 복잡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1965년 폐지했다. 일본의 경우 1989년 양도세를 도입하면서 증권거래세율을 0.55%에서 0.3%로 낮추고, 1996년 0.21%, 1998년 0.1%로 단계적으로 낮췄으며, 1999년에는 아예 폐지했다. 증권거래세율이 낮아지면서 초반에는 증권거래세만 걷던 1988년보다 상장 주식 관련 전체 세수가 감소했으나, 주식시장이 활성화하고 주식 가치가 상승하면서 2005년부터 기존 세수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일본은 10년간 점진적으로 증권거래세를 폐지하면서 양도세를 도입해 자본시장 충격을 완화했다. 양도세는 분리과세 방식으로 도입했다. 주식에서 얻은 이득을 다른 소득과 합산해 종합과세할 경우 세 부담이 큰 누진세율이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여러 계좌의 증권 거래 이익을 일일이 신고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2003년 이후에는 특정 계좌에 보관한 상장 주식도 분리과세가 가능하도록 했다.

스웨덴이 증권거래세를 올렸다가 자본시장이 위축되자 폐지한 대표적 사례다. 스웨덴은 1984년 거래소 내 주식 취득과 양도에 대해 0.5%의 세율로 과세하는 증권거래세를 도입했다. 당시 스웨덴 정부는 연평균 15억크로나의 세수가 걷힐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5000만크로나에 그쳤다. 예상보다 세수가 적어 1986년 세율을 두 배 인상했다. 이후 스웨덴 주식시장 거래 물량의 30%가 런던거래소로 이동했고 1990년에는 전체 물량의 50%가 런던으로 이동했다. 결국 스웨덴은 1991년 말 증권거래세를 폐지했다.

여러 차례 양도세로의 전환을 시도했으나 실패한 대만의 사례도 눈여겨봐야 한다. 대만은 주식시장이 과열되자 1989년 기존 증권거래세에 더해 최대 50% 세율의 양도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과세안 발표 직후 한 달 동안 대만증권거래소(TWSE) 지수는 8789에서 5615로, 일일 거래 금액은 17억5000만달러에서 3억7000만달러로 급감했다. 이에 정부는 증권거래세율을 0.3%에서 0.15%로 낮추고 양도세 면세 한도를 인상해 주식시장을 다시 활성화했지만 주식투자자 상당수가 차명계좌 등으로 양도세를 회피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결국 정부는 1990년 양도세를 철회하고 증권거래세율을 0.6%로 인상했다. 2013년 다시 양도세 과세법안을 통과시켰으나 2018년까지 시행을 유예하다가 투자자 반발로 또 양도세를 철회했다. 2017년 증권거래세율을 0.3%에서 0.15% 인하해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오문성 한국조세정책학회장은 “일본이 10년간 증권거래세를 점진적으로 폐지하면서 양도세를 전면 도입한 방식과 대만이 양도세 전환에 반복적으로 실패한 원인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며 “자본시장의 충격을 최소화하고 안정적인 세수 확보로 이어질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주식 거래에 증권거래세와 양도세를 모두 부과하는 나라는 한국과 영국·프랑스·이탈리아 정도다. 일본·미국·스웨덴·독일은 각각 증권거래세를 폐지하고 양도세만 부과하고 있다. 반대로 중국·홍콩·대만·싱가포르는 증권거래세만 부과하고 있다.


Plus Point

“증시 유동성은 거시경제가 좌우, 거래세 영향 적을 것”

금융투자 업계가 증권거래세 폐지로 주식 거래가 활성화하리라 전망한 것과 달리 직접적인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이미 많은 개인 투자자가 증권거래세 부담에도 돈을 벌기 위해 주식 투자를 해왔기 때문에 증권거래세가 폐지된다고 해도 투자가 늘어나는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예상이다. 한 증권 업계 관계자는 “거래세 인하로 주식 거래가 늘 것으로 보이지만 증시 유동성을 좌우하는 더 큰 요인은 거시경제의 흐름”이라며 “당분간 큰 변화가 나타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거래세 폐지의 적기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국내 한 공공경제 분야 연구원은 “과세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소득 파악이 어려운 경우 과세할 수 있는 수단이 거래세”라며 “현 시스템에서 거래세만 인하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효율적인 과세 체계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