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일 오후 서울시 중구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인터넷 전문은행 규제 혁신 현장 방문 행사에 참석했다. 문 대통령이 스마트폰을 이용한 케이뱅크 계좌 개설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일 오후 서울시 중구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인터넷 전문은행 규제 혁신 현장 방문 행사에 참석했다. 문 대통령이 스마트폰을 이용한 케이뱅크 계좌 개설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은산분리를 한다고 해서 경제가 살아나고 하는 그런 문제하고는 연관이 없습니다. 일자리하고도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이것(은산분리)은 해당 기업들의 민원입니다. 은산분리를 터놓으면 사실상 지금 재벌 3, 4세들이 할 일이 없지 않습니까? 또 이쪽으로 침투할 것입니다” 

7월 24일 박영선 의원(더불어민주당)은 TBS TV와 인터뷰에서 은산분리 규제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20여 일 후인 8월 12일 박 의원은 은산분리 완화를 골자로 한 법안을 발의했다. 박 의원이 은산분리에 대한 입장을 갑자기 바꾼 것은 그만큼 여당 내부에서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기류가 강하게 형성됐기 때문이다. 

은산분리 규제는 금융회사가 아닌 일반 기업(산업자본)이 은행 등 금융사 지분을 4% 이상 소유하지 못하도록 한 규제인데, KT나 카카오 등 IT기업들이 케이뱅크,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은행의 대주주가 되는 것을 막아 인터넷은행의 성장에 걸림돌이 돼왔다.

박 의원을 비롯한 여야 의원들(정재호·더불어민주당, 김용태·자유한국당, 김관영·바른미래당)이 은산분리 완화를 위한 다수의 법안을  제출한 상태여서 정부와 국회가 기업의 금융사 지분율을 현행 4%에서  25~50%까지 높이는 작업을 곧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7일 인터넷은행 규제 혁신 현장 방문 행사에서 은산분리 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힘을 보탰다. 

인터넷은행 등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핀테크 기업들이 성장하기 위해선 기업들의 투자를 막아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하지만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한다고 해서 인터넷은행이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인터넷은행이 자체적 산업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규제가 완화돼도 기업(산업자본)이 적극적인 투자를 꺼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은행이 해외처럼 고객에게 혁신적 가치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국내 인터넷은행들은 고객 가치를 새롭게 창출하는 금융 서비스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영업하고 있는 인터넷은행은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 단 두 곳뿐이다. 이들이 판매하고 있는 금융상품은 예‧적금과 신용대출이 전부다. 은행 영업시간에 맞춰 방문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등 편의성이 다소 높아졌지만 금리 등에 의존하는 수익구조는 기존 은행과 다른 게 없다. 또 주택담보대출이나 기업대출 등 비교적 규모가 큰 대출을 취급하지 않는 점은 인터넷은행의 한계로 꼽힌다. 

이런 문제 때문에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는 현재 적자구조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양사가 공시한 경영 실적에 따르면 케이뱅크는 올해 1분기 188억원, 카카오뱅크는 53억원의 순손실을 각각 기록했다. 지난해는 케이뱅크는 838억원, 카카오뱅크는 1045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었다.


인터넷은행, 플랫폼 강화가 핵심

전문가들은 인터넷은행의 자체 경쟁력 확보를 위해선 해외 인터넷은행처럼 고객의 금융 플랫폼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지급 결제와 송금 등 금융 서비스뿐 아니라 이런 서비스의 원인이 되는 쇼핑이나 문화 콘텐츠 등을 하나의 플랫폼에서 가능하도록 해야만 고객을 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스페인의 카이샤(Caixa)은행의 모바일 전용 자회사인 이매진뱅크(Imagine Bank)는 고객이 자주 사용하는 플랫폼인 페이스북 메신저에서 은행 잔고나 결제 내역을 확인하고, 쇼핑 정보와 레저 활동 할인 서비스 등을 안내한다. 가장 친숙한 플랫폼을 활용해 고객 접점을 찾아간 서비스다.

독일의 피도르(Fidor)은행도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으로 영업하며 고객이 질문을 올리거나 제안한 아이디어가 금융 상품으로 만들어지면 일정액의 상금을 지급한다. 이메일 주소나 휴대전화 번호, 페이스북‧트위터 계정으로 자금을 이체할 수 있고, 고객이 계좌에서 금 등 귀금속이나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를 거래할 수 있으며, 예금이자로 통신요금을 내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차별화한 서비스를 토대로 영업해 온 이 은행은 2014년 기준 140만유로가량의 당기순이익을 거두며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

이대기 금융연구원 은행·보험연구실장은 “카카오는 카카오뱅크뿐 아니라 카카오 페이, 카카오 스탁(주식거래), 카카오 드라이버(대리기사 연계), 멜론(음악) 등 고객의 생활, 문화, 투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뤄지는 활동을 하나의 카카오 플랫폼에서 모두 해결할 수 있도록 하고, 이런 서비스들을 통해 집적된 정보로 고객별 맞춤형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며 “인터넷은행이 이렇게 플랫폼을 촘촘하게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이렇듯 주식 거래, 음악 콘텐츠 구입, 대리기사와의 금융 거래 등 고객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행하는 구매, 소비, 투자 활동을 플랫폼으로 연결해 고객이 더 만족하고 오래 머물도록 해야 인터넷은행이 성공한다는 얘기다.


Plus Point

민주당, 왜 은산분리 완화로 입장 바꿨나?

박영선 의원은 은산분리 완화를 격렬하게 반대해왔다. 기업이 은행 등 금융회사의 지분을 쉽게 확보할 수 있게 되면 재벌이 이를 이용해 금융사를 지배하고 기업 총수의 ‘사금고’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게 반대의 주요 이유였다. 

하지만 지난해 케이뱅크(4월)와 카카오뱅크(7월)가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인터넷은행의 육성을 위해 인터넷은행에 한해서만이라도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었다. 주요 몇 개 은행들이 독과점 상태를 유지하며 예대마진으로 쉽게 돈을 버는 구조를 깨고 금융 소비자에게 더 많은 혜택을 돌려주기 위해선 인터넷은행이 발전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기업의 투자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아직 정의당(추혜선 의원 등)과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은산분리 완화에 반대하는 의견을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대형 은행들의 ‘땅 짚고 하는 금리 장사’를 그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더 강해 정부와 여당이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것은 거의 확실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