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여진 쿼드자산운용 PEF운용본부 매니저 연세대 경영학, 전 신영증권 제약·바이오 애널리스트
엄여진 쿼드자산운용 PEF운용본부 매니저
연세대 경영학, 전 신영증권 제약·바이오 애널리스트

5월 3일 코스피200지수와 코스닥150지수의 구성 종목인 중대형주에 한해 공매도(空賣渡)가 재개됐다. 공매도란 주가 하락이 예상될 때 주식을 빌려 판 뒤 나중에 주가가 떨어지면 싸게 사서 되갚아 차익을 얻는 투자 기법이다. 국내에서 공매도 재개는 2020년 3월 금융 당국이 공매도를 금지한 이후 14개월 만이다.

그동안 금융 당국은 개인 투자자의 거센 반발 여론과 각종 정치적 이벤트에 밀려 공매도 금지 규제의 한시적 연장을 지속해 왔다. 그러나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파이낸셜타임스스톡익스체인지(FTSE) 등 글로벌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자금 추정치만 280조원 이상인 상황에서 공매도 금지를 이어 가는 게 더는 무리라는 것이 당국 입장이다.

공매도 재개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각도 많다. 공매도가 금지되기 전 국내에서는 불법 블록딜에 연루되거나 불법 무차입 공매도가 적발되는 일이 빈번했다. 공매도 관련 감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불신과 회의감이 만연했고,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에게만 지나치게 유리하다는 의미의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표현도 나왔다.

이에 당국은 시장 기대치에는 못 미치나 제도 개선을 위한 움직임을 미약하게나마 보이기 시작했다. 가령 무차입 공매도 등 불법적인 공매도를 했을 경우 그동안은 처벌이 과태료 부과에 그쳤으나, 4월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이제는 과징금과 형사 처벌까지 가능해졌다. 또 당국은 대차거래를 전산화 시스템으로 진행하고, 거래 내용을 5년간 보관하도록 강제했다. 투자자는 금융 당국이 요구할 시 거래 내용을 무조건 제출해야 한다.

개인 투자자들은 공매도 재개와 함께 당국이 개인의 공매도 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한 조치를 시행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국내 증시는 무차입 공매도가 금지되기에 공매도를 위해서는 그만큼의 주식을 빌려야 하는데, 이는 대차거래와 대주거래로 나뉜다. ‘대차거래’는 증권사나 한국예탁결제원, 한국증권금융 등에서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에게 주식을 빌려주는 것을 말한다. 대차거래는 공매도 외에도 전환사채(CB)에 대한 헤지(위험 회피) 등 여러 용도로 활용된다.

‘대주거래’는 개별 증권사가 개인에게 주식을 빌려주는 것이다. 기존에도 개인 투자자의 대주거래는 가능했으나 높은 이자율과 대주 물량 부족, 짧은 상환 기간 등으로 인해 개인은 주식을 빌리기도 어렵고 대주 조건도 불리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2019년 기준 대차 시장은 연간 평균 잔액이 67조원인 데 반해 대주 시장 규모는 230억원에 불과할 만큼 활성화되지 못했다.

금융 당국은 대주 서비스 활성화를 위해 시스템을 개선하기로 했다. 대주 서비스를 제공하는 증권사가 6개에서 28개로 늘어나며, 코스피200·코스닥150 구성 종목에 대해 2조~3조원 규모의 대주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개인 투자자는 사전교육과 모의거래를 이수한 뒤 투자 경험에 따라 차등화된 투자 한도(3000만원·7000만원·무제한) 내에서 공매도 거래를 할 수 있다.


공매도에 불리한 시장 환경

상대적 약자인 개인은 공매도가 주식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사실 코스피에서는 공매도 재개 전부터 지수 선물의 롱(매수)과 쇼트(매도) 거래가 상시로 일어난다. 공매도가 재개된다고 해도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종목별로는 공매도에 노출되는 정도가 천차만별이다. 즉 지수 선물이 존재하지 않고 시가 총액과 거래 대금이 적은 종목은 현물인 주식의 쇼트가 그대로 주가에 반영될 것이다. 당국이 지수 선물이 존재하거나 거래가 비교적 많은 코스피200과 코스닥150 종목부터 부분적으로 공매도를 재개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만약 자신이 보유한 종목의 공매도 현황을 수시로 파악하고 싶다면, 한국거래소 홈페이지에서 공매도 잔고 통계 자료를 보거나 금융투자협회 홈페이지에서 대차거래 잔고를 확인하면 된다.

관심 있는 종목의 대차잔고가 높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주가 하락에 베팅한 물량이 많다고 해석해 주식을 미리 매도하는 것이 맞을까. 주의해야 할 점은 대차잔고가 곧 주식 하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대차잔고가 모두 공매도로 귀결되지는 않으며, 대차거래는 펀드 운용상의 여러 방법 중 하나로 활용된다. 차라리 해당 종목이 앞서 전환사채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했는지, 차익 거래 목적이 아닌지 등을 살펴보는 편이 낫다.

물론 이런 자료로 수급을 예측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데이터를 꾸준히 스크린하면 기관 투자자의 공매도 물량이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 ‘내가 모르는 뭔가 나쁜 게 있나 보다’라는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이는 걸 어느 정도는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대차잔고가 늘어난다고 해서 단순히 주가가 하락하는 게 아니며, 공매도가 주가 하락을 가속할 뿐 주가의 방향성을 바꿔 하락시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부정적인 심리 요인을 극복할 수 있다.

만약 자신이 보유한 종목이 실적주라면 기업 실적이 실제로는 시장 컨센서스(다수 전망)보다 낮을 거라는 예상이 공매도 양상에 반영됐는지 살펴보고 미리 대비할 수도 있다. 실제로 기업 실적이 컨센서스보다 낮고 공매도가 이뤄지면,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클 것이다. 시장 기대치가 높은 만큼 공매도를 통해 실현되는 수익이 커질 수밖에 없어서다.

또 밸류에이션이 높은 종목이나 최근 주가가 많이 오른 종목도 공매도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반대로 최근 주가 하락이 과도했거나 저평가된 종목이 있다면, 대차잔고가 늘어나도 영향을 받지 않을 가능성이 크니 해당 종목의 매수를 고려하는 것도 현명한 투자의 전략이 될 수 있다.

공매도 재개를 맞이한 개인 투자자는 공매도에 관한 부분적인 통계 자료와 자극적인 뉴스에 휘둘려 성급하게 판단하거나 막연한 두려움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기업의 펀더멘털(기초체력) 분석에 집중하는 것이 시장을 이기는 가장 현명한 대비책이다.

공매도가 재개된 종목은 코스피200지수와 코스닥150지수의 구성 종목에 해당하는 350개다. 공매도 금지 전 이 종목이 공매도 거래 대금에서 차지했던 비중이 90%에 달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공매도 재개 효과를 부분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중대형주 공매도가 재개됐더라도 기존처럼 공매도가 무차별적으로 이뤄지기는 힘들 수 있다. 현재 시장에 유동성이 넘치고, 많은 기업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충격에서 벗어나 실적 개선 국면에 있는 등 시장 환경이 공매도에 유리하지 않아서다. 공매도를 너무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자신감을 갖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