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수상경력•전시회 등‘화려한 이력’에 투자하라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유명한 작가는 그 이름만으로 대접을 받는다. 각종 미술대전 수상기록이나 대학 졸업, 개인전 개최 횟수 등과 무관하게 일정 수준의 인지도를 확보하면 나름의 몸값을 인정받는다. 그러나 그런 작가의 작품은 초보 투자자에겐 그림의 떡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언론에 오르내리고 아트페어에서 어느 정도 시장성을 확보한 화가는 이미 몸값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미술 시장이 롤러코스터를 타더라도 억대 미술품은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보증수표나 다름없다. 몸값이 비싼 작품일수록 가격 변동은 있더라도 투자 대상으로서 충분한 가치를 인정받는다. 이런 작품의 소장자들은 주로 재정적 여력이 있어 장기 보유가 가능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호당 20만원 작가 중 선택이 정석

그렇다고 초보 투자자에게 큰 규모의 투자를 권하는 것은 아니다. 적은 비용으로 시간을 갖고 시장구조를 익히면서 무리 없이 접근하는 게 기본자세다. 투자한 만큼 일정한 수익이 보장되면 좋겠지만 미술 투자에서는 수익을 거두는 것보다 손해를 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미술 시장에서 거래되는 작품 중 투자 경계선에서 오르내리는 작품은 대략 200만~300만원(10호 기준) 가격대다. 주로 30대 후반~40대 중반의 중견들로, 가장 열정적인 활동과 경력 관리를 해온 작가들이다. 이들 중에서 어느 날 호당 50만원이 넘는 귀족주로 신분상승 하느냐, 아니면 평생 서민주로 남느냐가 결정된다.

물론 미술 투자의 백미는 무명의 신인 작품 중에서 블루칩을 찾는 것이다. 시장 가격이 형성되지 않은, 대학을 갓 졸업한 작품 중에서 될성부른 떡잎을 고르는 것이 전문 컬렉터의 바람이다. 그러나 이는 엄청난 이익을 남겨주는 반면에 그만한 위험 부담이 뒤따라 초보자가 집중적으로 투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호당 20만원 내외의 작가 중에서 옥석을 고르는 것이 초보 컬렉터에게 적합하다. 이런 작품들은 잘하면 크게 뛸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하더라도 일정기간 구입한 가격대를 유지하기에 적어도 손실을 최소화할 수는 있기 때문이다.

그럼 그 많은 작가들 중에서 어떤 작가를 선택해야 안정적인 투자가 되는 것일까. 가까운 컬렉터 중에 갤러리에서 작품을 보고는 두 말 않고 즉석에서 여러 점을 사들이는 분이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라도 자신의 눈에 ‘이거다’라고 느낌이 오면 결정해버린다. 심미안을 중시하여 ‘훌륭한 작품’이라는 이유로 선택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아마추어에게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시장에서 작품의 가치는 아주 다양한 변수와 뜻밖의 외부 요인에 결정될 때가 많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자신의 미적 감각만으로 시장성까지 장담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초보자는 마음에 드는 그림을 발견하면, 그때부터 다시 그 작가에 대한 검증을 해야 한다. 미술품이 비록 주관적 판단에 의해 결정되는 예술품이라지만 실제는 이런저런 속물적 조건이 꽤 많은 영향력을 미친다.

첫 번째 검증해야 할 사항은 바로 ‘화려한 이력’이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키워드는 ‘학력’과 ‘수상 경력’ 그리고 ‘초대전 경력’이다. 과거에 비해서는 희석되고 있지만 아직도 미술계에는 ‘성골(S대 미대)·진골(H대 미대)’이 엄연히 파워를 발휘한다. 전통과 인맥의 힘이다.

양 대학의 파워게임이 오랜 역사를 갖고 있듯, 선후배간 연결고리가 강해 각종 공모전의 수상자 결정이나, 행정적 배려, 전시 기회, 평론, 심지어 언론에서까지 우호적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유명대 졸업·뉴욕 유학파 ‘성골’

과거에는 프랑스에서 공부를 하고 오면 대단한 이력으로 인정받았지만, 요즘은 프랑스보다 미국을 더 쳐준다. 현대미술은 곧 서구 미술이며, 서구 미술은 미국(뉴욕) 미술과 동일시되기 때문에 젊은 세대일수록 뉴욕에서 미술을 전공한 작가가 정통파로 인정받는다.

또 하나의 성공 키워드는 각종 공모전에서의 수상 경력이다. 입·특선도 중요하지만 대상을 받았다는 것은 실력의 공인을 의미한다. 물론 공신력이 떨어지는 나눠 먹기식 공모전도 많지만 유력 공모전에서의 대상은 성공을 보장하는 장치로 충분한 위력을 발휘한다.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의 대상은 그것만으로도 다른 잣대를 앞지른다. 아무리 국전이 ‘돈모전’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한다 하더라도 대상만큼은 대한민국 미술의 품격을 대신하는 데 무리가 없다. 중앙미술대전, 동아미술제 등 역사가 있는 유력 공모전에서의 대상 작가도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

화가도 자기관리가 철저해야 한다. 그림만 잘 그려서 되는 게 아니라 이미지 관리, 경력 관리를 잘해야 한다. 팸플릿에 전시회 등 활동 기록이 몇 줄 되지 않으면 그것만으로도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

더러 이런 점을 너무 잘 활용하는 화가들 때문에 초보 컬렉터들이 착각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어 주의를 요한다. 온갖 잡다한 전시까지 동원하고, 하찮은 행사도 그럴싸하게 포장해 팸플릿 한 면을 이력으로 가득 채워놓기도 한다.

이 ‘함정’에 걸리지 않으려면 이력 중에서 개인전이 몇 번인지, 개인전이라도 자비가 아닌 초대전이 몇 번인지, 그것도 유력 화랑에서의 초대전이 있는지, ‘알맹이’를 따져봐야 한다. 한 작가의 개인전은 앞서 열었던 개인전 이후에 작업한, 새로운 노력의 결실물을 선보이고 평가받는 자리임에도, 작품을 팔기 위해 아트페어에 개인 부스를 임대하고 기존 물건을 진열해둔 것을 버젓이 개인전 리스트에 포함시키기도 하는 세상이다. 

화려한 이력서가 투자의 성공을 100% 보장한다고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다만, 이력이 화려한 작가는 그만큼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개인과 주변의 힘이 상대적으로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튼실한 이력서는 성공 보장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만큼 실패 확률이 적어 ‘절반의 성공’은 보장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