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토요일마다 경매… 20만원대 낙찰 수두룩

한국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진도를 방문해야 한다. 그곳 ‘운림산방’에서 매주 토요일이면 한국화 미술품 경매가 열리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시중가보다 싸게 판매하지만, 특히 지난 8월8일과 15일, 22일, 피서객이 몰리는 시기에 ‘파격가’로 그림을 경매에 올려 애호가들을 환호케 했다.

이곳에서는 매주 토요일마다 평균 30점의 작품이 거래된다. 필자가 찾은 8월15일엔 유명 인사들이 기탁한 별도의 작품까지 가세해 35점이 경매에 올랐다. 경매 시작가는 대부분 20만원 내외. 아직까지는 꾼(?)들이 많이 몰려들지 않아 경쟁이 심하지 않다. 대부분 시작가가 곧 낙찰가다. 미술품에 원가 개념이 있다면 ‘20만원’은 정말 밑지고 파는 가격이다.

재테크 여부는 접어두고,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 작품 한 점 집에 걸어두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다. 명작을 카피한 모사본이나 포스터도 20만원은 줘야 하는데, 작가가 직접 그린 작품을 20만원에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나 다름없다.

거래되는 작품은 모두 전라남도가 운영하는 ‘남도예술은행’에서 엄선한 작품들이다. 지역 출신 작가로 한정되어 있지만, 탄탄한 화력을 자랑하는 ‘전국구 화가’들이 적잖다. 작품의 신뢰성을 위해 최소한 전국 규모 미술 공모전에서 3회 이상 입상했거나 개인전 1회 이상 개최 실적이 있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경매 대상을 제한했다.

문인화·서예 작품 더욱 저렴

전통수묵화법과 서양화법을 적절하게 조화시킨 이정래(48)는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여러 차례 특선을 하였으며, 전국무등미술대전과 전남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작가다. 그의 작품 <아침> (68cm×28cm)이 이날 경매에서 27만원에 낙찰되었다. 홍익대 미대를 나와 서울에서 활동하다 몇 년 전에 목포로 작업실을 옮긴 박득규(44)의 <하조도의 여심>(71×38)과 남도의 풍광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한 박병락(47)의 <어느 날>(65×57) 은 각각 32만원에 팔렸다.

또 한국화공모대전과 전남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양홍길(37)의 <인간과 자연>(39×31)은 24만원, 국전 특선 4회에 서울 등지에서 2002년부터 매년 7차례 개인전을 열며 왕성한 활동을 벌이는 오창록(38)의 <누드 드로잉>(35×18)은 25만원에 나왔다. 서울과 광주 등지에서 개인전을 12차례나 가진 이지호의 작품은 각종 아트페어에도 선보인 바 있다. 그의 작품 <월출-파라다이스>(50×60)는 35만원이다.

문인화나 서예 작품은 이보다 더 싸게 구입할 수 있다. 액자가 된 작품이 10만원대다. 김계수의 <소나무>(60×70)가 18만원, 김송호의 <석류>(53×43)는 11만원이다. 저가의 작품일수록 액자 유무가 중요하다. 자칫 배접만 된 작품을 싸다고 샀다가 추후에 액자 값이 더 비싸게 먹힐 때도 있기 때문이다. 앞서 두 작품은 모두 그림과 잘 어울리는 액자가 된 작품이다. 10호짜리가 그것도 액자가 된 작품이 11만원이라는 것은 작가 입장에서는 팔리고도 언짢을 일이다.

서예작품은 이보다 더 저렴해 대한민국한글서예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정광섭(47)의 <가족>(67×33)과 대한민국서예대전 특선 및 전남미술대전 대상을 받은 전종구(41)의 <님 그리운 마음>(46×37)이 각각 5만원이다.

경매장에서 거래되는 작품 가격은 ‘남도예술은행’이 인터넷을 통해 판매하는 가격의 30~70% 선이다. 홈페이지(nartbank.co.kr)에 들어가면 작품을 인터넷으로도 구입할 수 있는데, 이곳에서의 가격은 이정래의 <아침>이 45만원, 박득규의 <하조도의 아침> 80만원, 박병락의 <어느 날>이 80만원이다. 경매 낙찰가 5만원인 서예작품 전종구의 <님 그리운 마음>은 40만원이다.

인터넷 참고해 입찰계획 수립 ‘필수’

현장 경매는 행사기간이 아닌 평소에도 인터넷 판매가보다 30~50% 정도 낮게 책정된다. 멀리서 찾아오는 교통비를 감안한 셈이다. 미술품 투자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뜻 맞는 사람 서너 명이 조를 짜서 한번 내려가 보는 것도 좋겠다.

경매일 2~3일 전에 인터넷을 통해 경매 예정 작품이 올라오기 때문에 사전에 작가에 대한 연구를 하고 가는 것은 기본이다. 전국적 지명도를 가진 이력이 화려한 작가를 찾는 것은 투자자의 필수 요건이다. 시중가격도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작품을 얼마까지 입찰하겠다는 ‘입찰 계획서’는 반드시 작성해서 가자.

미술품 가격이 이처럼 시중가보다 싸게 거래되는 것은 한국화의 대중화와 지역 작가들의 창작 활동을 돕기 위해 전라남도가 전략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기 때문. 전라남도는 매년 적잖은 예산을 들여 작품을 사들여서는 구매가보다 싸게 작품을 판매하고 있다. 미술품 판매 수입이 목표가 아니라 예술 지원이 우선되는 까닭이다.

전라남도는 2006년 8월12일 첫 경매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5억여원을 들여 1500여 점을 사들였다. 내년에는 운림산방 주변에 300여억원을 들여 남도예술은행 전용 전시장과 경매장을 지어 한국화 대중화에 더욱 힘을 쏟을 계획이다. ‘운림산방’은 조선시대 남종화의 대가인 소치 허련 선생이 머물던 곳으로 유명하다. 전통 남종화의 예술적 분위기에 현대적 마케팅 기법을 접목, 그 맥을 이어오고 있는 셈이다.

한국화를 싸게 구입할 수 있는 곳 중 또 하나는 A옥션의 인터넷 경매(a-auction.co.kr)다. 서양화도 다루지만 다른 옥션에 비해 동양화 비중이 높은 이곳에서는 작품 가격도 다른 옥션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지난 7월 거래된 작품들은 대부분 100만원 이내였다. 유산 민경갑의 <연과 원앙>(46×38)이 105만원, 남농 허건의 <군방도>(116.5×31)는 60만원에 낙찰됐다. 묵로 이용우의 <고사 인물도>(58×18)는 60만원, 청초 이석우의 <귀로>(4×265)는 30만원이었다.

한두 해 전 미술 시장의 활황에 힘입어 외국 아트페어에 작품을 내놓았던 한 서양화가는 돌아오자마자 한동안 붓을 놓고 말았다. 자신의 작품이 무수한 아류 중 하나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서양화는 그만큼 세계 시장에서 차별성을 가지기 힘들다.

반면에 한국화는 태생적으로 유리하다. 앞으로 세계 미술 시장이 다시 기력을 회복할 때, 더불어 한국 미술 시장이 세계 화상들의 관심사가 될 때 투자 기준은 역시 가장 한국적인 것이 될 것이다. 지금은 평가절하되고 있는 한국화가 그런 면에서 투자 매력이 매우 높다. 요즘의 한국화는 색감도 다양하고, 액자도 세련되어 젊은 세대들이 걸어두고 감상하기에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