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찮은 기대수익… 영남권 작가 ‘약진’

지난 7월 한 달간 대구의 동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주노아트’라는 갤러리에 컬렉터들의 발길이 몰려들었다. 그곳 지명을 딴 전시회, ‘시지에 그림꽃 피다’ 기획전에 작품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대구에서도 한적한 이곳에 인파가 몰린 것은 행사의 부제가 말해주듯 ‘그림 한 점 30만원 전’ 때문이었다. 26명의 출품 작가의 작품이 균일가 30만원에 걸려 있었다.

작품 크기가 4호에서 10호에 그치는 소품 위주라 해도 30만원은 미술 시장에서 거래되는 작품 가격으로는 최저 수준이다. 일부 화랑에서 미술 시장의 대중화를 위해 저렴한 가격대의 기획전을 열기는 하지만 그래도 30만원 전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렇다고 작품의 수준이 30만원밖에 되지 않는 작가들인가 하면 그도 아니다. 많은 작가들이 수차례 개인전을 열고, 아트페어에도 출품한 작가들이다. 출품 작가 한은영의 작품은 지난해 대구서 개최된 아트페어 ‘아트대구’에서 <바다>(20호)가 800만원에 팔렸다. 작가 임은희의 <나쁜 꽃밭>(30호)은 ‘서울국제현대미술축제’에서 450만원에 거래됐다.

유명작가 작품이 30만원 대

정태경의 <무자년>(4호)은 M옥션에서 140만원에, 한명희의 <도시의 꿈>(10호)은 ‘국민일보전’에서 150만원에 팔리며 나름대로 상업적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는 작가들이다. 호당 15만~30만원에 거래되는 작가들이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때 이를 애도하며 가로 세로 각각 2m의 대형 작품 석 점을 그려 화제가 된 김혜련은 이미 독일 화랑에 전속돼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작가다. 서울대 독문과 출신으로 베를린종합예술대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베를린공대에서 예술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00호짜리 그의 작품 <Moon 가든>은 지난해 아트페어에서 1500만원에 팔렸다. 하지만 ‘시지에 그림꽃 피다’ 전에서 그의 인물화(8호)는 고작 30만원에 판매됐다.

이런 작가들의 그림이 ‘골라잡아’ 30만원이라는 것은 파격적인 가격이다. 물론, 이번 행사는 갤러리 대표가 ‘작품의 대중화’를 위해 작가들을 설득한 일시적 결과물이기는 하다. 그러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작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너무도 고마운 기회임에 틀림없다.

‘시지에 그림꽃 피다’는 단순히 작품을 ‘싸게’ 구입하는데 그 의미가 있는 게 아니다.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이날 거래된 작가들의 ‘가능성’은 미래에 더 큰 수익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를 낳게 했다.

행사에 참여한 작가 대부분이 영남권 출신이다. 여러 차례 가진 개인전도 대구권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를테면 지역작가들로 일부 중앙무대에서 거래는 되지만 지명도가 아주 높은 작가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지역작가라는 약점이 오히려 투자자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영남권 출신 작가들의 활동이 크게 주목받고 있는 추세여서 성공 가능성은 매우 높다.

학맥으로 볼 때 미술계엔 여전히 서울대와 홍대 출신의 영향력이 막강하지만, 지역화단으로는 영남대, 계명대, 대구예술대가 주축이 된 영남권의 약진도 두드러진다.

현재 대구에서 매년 2개의 국제아트페어가 열리며 30여 개의 화랑이 몰려있는 봉산문화의 거리는 제2의 인사동 거리를 표방하며 활기를 띠고 있다. 대구 지역에서 매년 배출되는 미대 졸업생만도 2000명이 넘는다. 최근 들어 중앙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는 젊은 작가 윤병락, 도성욱, 김영대, 김성호 등이 영남 출신이다.

지역엔 유력인사나 문화단체가 주도하여 지역화가를 키우는 경우도 있어 이를 잘 지켜보는 것도 투자 노하우의 하나다. 대구에 ‘고금미술연구회’라는 유명한 단체가 있다. 미술을 사랑하고 아끼는 지역의 실업인, 법조인, 의사, 금융인, 공무원 등이 모여 1977년에 설립한 단체다.

20년 전부터는 매년 자체 공모전을 마련, 지역에서 활동하는 신진 유망작가를 발굴·후원하고 있는데 공모전 선정이 곧 ‘성공 보증수표’라는 말까지 나돌 정도다. 유망작가로 선정되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기 때문이다.

후견 단체가 밀어주면 ‘보증수표’

부상으로 적지 않은 창작비가 지원되며, 선정 작가 초대전도 무상으로 열어준다. 대구 지역 굴지의 기업인 (주)금복주 김동구 사장과 (주)대구백화점 구정모 사장, 동일철강의 오유인 사장 등 막강한 후견인 45명이 ‘전국구 화가’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도와준다. 앞서 언급한 윤병락, 도성욱, 김영대, 김성호도 모두 이곳을 거쳐 유명해졌다.

이밖에 지금까지 선정된 유망작가로는 이일남, 조홍근, 안창표, 김승룡, 이구일, 김준용, 장기영, 박성열, 박한홍, 강주영, 김대섭, 김대연, 홍창진, 정재용와 김성진 등이 있다. 이중에서도 미술과 삶에 대한 소박한 태도를 때로는 솔직하게 때로는 강한 색의 대비로 표현하는 홍창진과 형태보다는 색채로 대상을 표현하는 강주영 등 몇몇 작가는 중앙무대에서 막 인정받기 시작하면서도 아직은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 투자 대상으로 꽤 매력적이다.

대상을 실물과 똑같이 그리는 하이퍼 리얼리즘 기법을 구사하는 장기영과 2006년 대한민국청년비엔날레에서 청년작가상을 받은 정재용, 포도그림으로 유명한 김대연 등도 30대 작가 중 유망주로 손꼽힌다.

지난 7월12일 서울옥션이 대도시 순회 경매의 첫 장소로 대구를 선택했다. 이때 개최한 경매에 지역 유망 작가들의 작품이 대거 초대되어 대작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장기영의 <향기-반영>(변형 30호)이 580만원, 강주영의 <꽃과 나비> (20호)는 240만원에 낙찰되었으며, 정재용의 <Blossom>(20호)은 140만원, 김대연의 <포도송이>(30호)는 400만원 그리고 박성열의 <나팔수>(30호)는 310만원에 팔렸다.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어 있으면서도 성장 가능성이 높은 이들 작품이 특별 기획전에 몇 십만원에 나온다면 그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하겠다. ‘시지에 그림꽃 피다’에 고금미술연구회가 2007년도에 유망작가로 선정한 홍창진의 6호 짜리 그림 넉 점이 나란히 30만원에 걸려 있었다. 30호 크기의 그의 작품 <햇살 좋은 날>은 지난해 아트대구에서 350만원에 팔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