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우려는 ‘시기상조’… 유가동향 살피며 투자 나서야

6월11일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2.0%로 동결한다고 밝혔다.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통화정책으로 생산 활동이 상당부분 개선된 데다 내수 부진도 완화됐기 때문에 추가 인하를 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였다. 그러면서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경기 하강세가 거의 끝났다”고 말했다. 이 총재의 이 말은 금융시장에 금리 인하 기조가 끝났으며 이제 오를 일만 남았다는 것으로 읽혔다.

먼저 반응한 것은 채권시장이었다. 3.5%에서 4% 사이의 박스권에서 움직이던 3년물 국공채 금리가 4%대를 돌파한 것이다. 향후 금리 인상을 선반영한 결과다. 시중에 풀린 과잉 유동성으로 인플레이션(이하 인플레)이 시작될 것이라는 우려였다. 사실 채권 금리는 금융통화위원회의 발표 며칠 전부터 상승세였다. 지난 6월8일 4%를 뚫은 후 6월12일엔 4.3%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6월13일부터는 내리막세로 돌아섰다. 금리 인상과 인플레 우려가 과도했다는 반응이 나오면서 금리가 되돌려지고 있는 것이다.

달러 약세로 국제 유가 급등 우려

금융 전문가들은 인플레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 상태로선 미래의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일단 실물경기가 회복되려면 앞으로도 한참의 시간을 인내해야 하는 상황이다. 인플레가 현실화되려면 수요가 커지면서 소비시장이 활성화되어야 하므로 지금은 인플레를 걱정할 시기가 아니라는 얘기다. 현재는 경기 하강세가 멈췄거나 줄었다고 할 수 있을 뿐이지 경기가 살아나는 국면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경기 회복 조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경우 고용지표, 제조업 경기를 짐작할 수 있는 필라델피아 연준지수, 경기선행지수가 모두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본의 경우도 제조업 생산지수가 상승하면서 정부가 ‘경기가 바닥을 쳤다’고 선언했다. 우리나라도 한국은행이 밝힌 대로 최악의 상황은 지났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금리를 인상해야 할 정도로 경기가 살아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인플레를 우려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물론 수요 없이 물가가 오를 수도 있다. 국제 유가 등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서 생산자 물가가 오르고 이것이 소비자 물가에 반영되는 시나리오다. 이는 실제로 지난해 우리나라가 경험한 것이기도 하다. 게다가 최근 들어 국제 유가가 크게 올랐기 때문에 인플레 우려가 제기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지난 1월2일 42.88달러였던 두바이유는 6월19일 현재 71.01달러까지 치솟은 상태다.

하지만 이 역시 인플레를 우려할 정도의 악재는 아니다. 지난해에 비해서는 여전히 낮은 수준의 가격대이기 때문이다. 물가 상승률의 기준은 전년 동기이기 때문에 실제로 인플레가 발생하려면 이보다 훨씬 가격이 높아야 한다. 조윤남 대신증권 투자전략부장은 “지난해 9월 유가는 100달러 수준이었으므로 현 유가는 전년 대비 여전히 싸다”며 “최소한 3분기까지는 인플레를 걱정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인플레 우려를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G8(선진 8개국) 재무장관들이 국제통화기금(IMF)에 출구전략을 연구할 것을 요청한 것도 인플레 우려 탓이다. 아직은 경기 회복에 무게를 둬야 할 때지만 장기적으로 인플레 우려에 대해서는 준비를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이다.

단기적으로 인플레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낮더라도 일시적인 인플레가 발생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뇌관은 유가다. 세계 경제, 특히 미국의 경제 회복이 늦어지면서 주가가 하락세로 돌아설 경우 미국 주식시장의 자금이 대거 이탈해 석유 시장으로 옮겨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그 여파로 인플레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물경제의 회복 없이 단지 유동성의 힘으로 발생한 인플레가 지속될 수는 없으므로 이 경우에도 큰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결국 인플레 걱정은 경기가 어느 정도 회복된 후에 해도 늦지 않다는 얘기다. 

주식과 상품이 최선의 투자 대상

현재로선 인플레에 베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가까운 미래에 현실화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최근 인플레 우려로 자산주 가격이 급등하기도 했지만 오래 가기 힘든 테마라는 진단도 힘을 얻고 있다. 실제로 인플레가 온다 해도 ‘인플레엔 자산주의 가치가 오른다’는 패러다임은 이미 상당히 훼손당한 상태라는 설명도 있다. 지난 몇 년간의 주가 상승기에도 자산주의 상승률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상품 투자는 유망해 보인다. 일반적으로 인플레 시기에 상품의 가치가 오르지만 상품을 권하는 것은 인플레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미국 경제의 회복 지연과 약 달러에 베팅한다고 하는 게 정확하다. 미국 경제의 회복이 더뎌지고 그 결과 주식시장도 지지부진할 경우 미국 주식시장의 자금이 대거 상품 시장으로 몰려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상품 가격은 단기간에 폭등할 수도 있다. 약 달러이기 때문에 이럴 가능성은 더욱 높다. 국제 상품 가격은 달러화를 기준으로 거래되기 때문이다.

채권은 크게 매력을 상실할 것으로 전망된다. 금리 인하 기조가 끝났다는 것이 최대 악재다. 금리가 떨어지지 않으면 채권 가격이 오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9% 가까이 올랐던 채권 수익률(국공채 3년물 기준)을 올해는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가능성이 낮다지만 인플레 우려가 채권 투자엔 부정적이며 금리 인상도 마찬가지다. 이래저래 채권을 택해야 하는 이유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SK증권의 양진모 채권 애널리스트는 “지난해의 경우 채권 가격이 변동하면서 수익을 낼 수 있었는데 올해는 ‘평안한’ 국면이 이어지고 있어 큰 기대를 하기 힘들다”며 “하지만 채권 가격은 이미 조정을 거쳤기 때문에 확실한 투자 대안이 없다면 서둘러 채권형 펀드를 해약할 필요는 없다”고 진단했다. 이어 양 애널리스트는 “공격적인 성향이라면 회사채 시장에서 기회를 엿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투자 전문가들은 현 상황에서 최적의 투자 대상은 주식과 상품이라고 입을 모은다. 부동산이나 채권 등은 탄력을 잃었기 때문에 주식을 대신할 투자 대상은 없다는 것이다. 인플레가 온다 해도, 만약 그것이 수요에 기반을 둔 인플레라면 더욱이 주식을 택해야 한다. 경기가 좋을 때 주가 상승률은 물가 상승률을 크게 앞지르기 때문이다.